"200만원도 못 버는데, 수천억이요?" 20년 용접공이 물었다
"회사 손배소는 노조를 깨려는 목적..
공권력 투입? 때리면 맞는 수밖에 없죠"
동료 조합원 "그래도 사람은 살려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제1도크, 그곳에서 건조중인 원유운반선의 제일 밑바닥, 그 한가운데 놓인 1㎥ 철제구조물 안에 30일째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 20년차 용접공 유최안(41)씨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인 그는 180㎝의 큰 체구를 구겨넣은 채, 하청노동자의 임금인상과 하청노조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30일째 눕지도 일어서지도 못했다. “온 몸이 다 아프죠. 여기서 안 아픈게 이상한 거기 때문에 (이게) 정상이다 여기고 있습니다.” 구조물 밖으로 나온 그의 팔다리가 유난히 비쩍 마른 느낌이다.
21일 <한겨레>가 유 부지회장을 만난 날 오전 조선하청지회와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협의회’ 교섭 상황은 그의 건강 만큼이나 좋지 않았다. 교섭 6일째 였던 20일 조선하청지회는 29일째 도크를 점거해가며 요구해온 30% 임금인상 요구를 스스로 철회했지만, 하청업체 대표들은 원청 대우조선해양이 예고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별도로 민·형사 소송을 언급하며 노조를 압박했다. 협상은 타결되는 듯했지만, 결국 밤 늦게 무산됐다.
유 부지회장은 매일 아침 동료조합원에게 교섭 상황을 전달받고 있다. “손배소요? (회사가) 돈 받을 생각이 있습니까?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버는 사람한테? 돈 받을 생각이 있는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고 봐야죠. 노조를 깨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 부지회장은 회사가 노조를 압박하고 위축하기 위해 손배소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하청지회의 제 1도크 점거로 선박 진수(공정이 끝난 배를 도크에서 안벽으로 옮기는 작업)가 늦어져 7천억원의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예고한 바 있다.
조선하청지회는 2017년 만들어졌지만, 조합원이 많이 늘어난 것은 최근 1~2년 사이다. 지난 2016년 이후 일상적인 저임금과 협력업체의 잦은 폐업에 따른 고용불안, 임금체불, 사업주의 사회보험 회사부담금 체납 등이 누적되자, 견디다 못한 하청노동자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원청이든 하청이든 사용자들이 곱게 볼 리가 없었다. 조선소에 사람이 없다고 난리지만, 하청업체들 사이의 노조 조합원 ‘블랙리스트’와 이에 따른 채용거부는 이미 공공연한 얘기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손배소를 걸고, 임금을 가압류하는 것은 조합원들의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회사가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조선업은 내년에도 힘들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유 부지회장은 “지금도 조선소 인력유출이 심각하다. 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여기(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많이 기대를 하고 있다”며 “회사가 제시한 인상률(4.5%)은 안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 이상 사람들이 조선업에 대한 기대를 가지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유 부지회장은 담담했다. “처음부터 쉽게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일주일 이내로 안 끝나면 두 달은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때리면 맞아야죠.” 공권력 투입을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에 대해선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소는 일반적인 노동환경과는 차이가 너무 큽니다. 20년 동안 조선소에서 용접을 했는데 끊임없이 사람을 구하고, 구한 사람은 적응 못하고 나가죠. 조선소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그런 부분 어려움·고통을 모릅니다. (투쟁을 통해)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도 그게(노동자들의 요구 수용이) 안된다면, 국민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유 부지회장을 만나기 전, 이날 도크에서는 현장을 지키고 있는 100여명의 조합원들이 약식집회를 열었다. 회사쪽과 교섭을 맡고 있는 노조 교섭위원인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홍 부위원장은 “이후 교섭에서 마지막으로 우리 입장 밝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더 이상의) 협상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그동안 거듭 양보하며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회사 쪽을 비판했다. 공권력 투입 움직임에 대해서도 “공권력 투입하면 금속노조는 전면 총파업을 준비하겠다. 저항하고 버티고 사수하자”고 했다.
도크 농성장에서 만난 도장공 ㄱ(53)씨는 동료 조합원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사람을 살려야 할 것 아닙니까. 저위에 있는 사람들 다 내 도장공 동생들인데, 내가 저들만큼 용기는 없어도 최소한 이 사람들은 지켜줘야 안되겠습니까.”
조선하청지회는 손배소 면책요구와 폐업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보장이 받아들여진다면 협상을 타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임금 30% 인상”이라는 최초 요구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거제/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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