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산책로에서 만난 무료 생수 한 병 "말 그대로 오아시스!"
산책로·하천변에 '힐링냉장고' 16대 설치, 매일 300㎖짜리 6만7천개 공급
[서울&] [커버스토리]
“목마를 때 시원하게 마시고, 분리수거함에 버려주세요”
자원봉사자 120명, 일 2~4시간 활동
무라벨 생수병, 100% 재활용할 계획
성동·중랑 등 지난해 이어 올해 시행
지난 14일 오전 노원구 상계동 당현천 바닥분수 인근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초록색 그늘막 옆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하나씩 꺼내갔다. 냉장고엔 ‘힐링냉장고, 노원구민을 위한 오아시스’라고 적혀 있다. 힐링냉장고 옆에서 ‘자율방재단’이라고 적힌 파란색 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 김미례(65)씨가 “한 병씩 갖고 가세요. 정식 운영은 모레 토요일부터예요”라고 안내했다.
중계1동 주민 이원해(64)씨는 거의 매일 당현천 산책로에서 2시간씩 걷기를 한다. 마들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도 하곤 한다. 이씨는 “여름이면 집에서 챙겨 나온 물이 금세 미지근해지는데, 힐링냉장고가 생기면서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어 너무 좋다”며 “다른 구에 사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한다”고 했다.
힐링냉장고는 노원구가 2020년부터 혹서기에 시행하는 무료 생수 나눔 사업이다. 주민의 발걸음이 잦은 산책로나 강가에서 야외무더위쉼터 기능을 한다. 전국에서 처음시작한 폭염 대책의 하나다. 냉장고를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300㎖짜리 생수를 한 병씩 가져갈 수 있다.
이 사업은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지난해 폭염 때 구민 반응이 뜨거웠다. 하루 4만 개 예상했는데 6만 개 이상 나갔다. 42일 동안 260여만 개가 소진됐다. 주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말 그대로 오아시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물! 일사병예방에 효과 짱!’ ‘누가 낸 아이디어인지 모르겠는데 정말 좋다’ 등의 칭찬 글을 잇달아 올렸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문의가 이어졌다. 서울에선 성동·중랑·도봉·서초·성북·중구 등이 시행에 나섰다.
힐링냉장고 아이디어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나왔다. 폭염 대책 회의를 하던 중 당시 재난안전팀의 송재혁 팀장이 야외에 냉장고를 설치해 생수를 나눠주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길거리에 웬 냉장고?’라는 반응도 있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실행할 수 있게 지원하는 문화를 강조해온 터라 빛을 보게 됐다.
올해 노원구 힐링냉장고는 7월16일부터 8월31일까지 운영된다. 설치 장소는 지난해와 같은 산책로·하천변 13곳(영축산, 경춘선, 나비정원, 불빛정원, 중랑천, 당현천, 우이천, 목동천 등)이다. 선별진료소가 빠지면서 3대를 월계1동 영축산 등에 나눠 배치했다. 하천변 가운데 집중호우를 대비해 안전한 지대로 위치를 조금 옮긴 곳도 있다. 8월1일쯤 최근 개통된 수락산 무장애 숲길 초입에 한 대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이혜영 재난안전팀장은 “여름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고 주민 반응이 너무 좋아 30일로 시작했던 운영 기간이 지난해는 42일, 올해는 47일로 늘었다”고 전했다. 올해는 6월부터 폭염이 기승을 부려서인지 힐링냉장고 운영시기를 문의하는 전화도 꽤 많았다고 한다.
운영시간은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다. 생수 공급은 하루에 8번 이뤄지고, 한 번에 400개씩 채워진다. 생수 소비가 많은 곳엔 하루 최대 13회까지도 공급한다. 생수 공급은 민간수탁업체가 2인1조, 모두 10개 조를 꾸려 진행한다. 소요예산은 구비와 일부 재난관리기금으로 마련했다.
힐링냉장고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자원봉사자로 올해는 지역자율방재단 120명이 참여한다. 지난해엔 재난도우미 112명이 활동했다. 봉사자들은 냉장고 관리, 생수 공급 수량 확인, 주변 환경 정리와 분리수거안내, 코로나19 방역 관리 등의 역할을 한다. 구는 지난 5일 이들을 대상으로 온열질환 예방 등 사전교육을 했다. 김하람 재난안전팀 주무관은 “봉사자의 만족도가 높아 지난해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올해도 활동한다”고 전했다.
김미례씨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여한 봉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동주민센터에서 봉사 권유를 받았다. 너무 힘들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동장의 설명을 듣고 봉사에 나섰다. 김씨는 “‘감사하다’ ‘수고한다’는 말을 평생 들은 것보다 더 많이 들었다”며 “매일 피로회복제 하나씩 먹으며 버텼는데 보람이 커 올해도 참여했다”고 했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인기고, 이들이 생수를 마시고 시원해하는 모습을 보면 더없이 뿌듯하단다. 그는 “목마를 때 시원하게 마시고 (생수병은) 분리수거함에 잘 버려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자원봉사자 덕에 이용하기 편하다는 반응이 많다. 봉사자 없이 운영할 때는 (생수를)꺼내 먹어도 되는지 우물쭈물하는 주민도 있었고 여러 개를 갖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당현천, 중랑천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자주 하는 신지훈(44)씨는 “봉사자들이 친절하고, 운영체계가 잘 잡혀 있어 편리해 좋다”고 했다.
그는 “시원한 생수 덕분에 아이가 운동하러 가자고 먼저 나서기도 한다”고 했다. ‘왜 세금 들여 이런 걸 하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이혜영 팀장은 “올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좋아요’ ‘싫어요’ 스티커 붙이기를 해 평가를 받아볼 계획이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결과보고회 때 나왔던 보완사항도 반영해 추진한다. 봉사자들의 건강을 위해 최대한 2시간씩 교대할 수 있게 하고, 휴대용 대신 공업용 선풍기를 제공한다. 투명페트병 재활용률을 높이도록 무라벨 생수로 바꾸고 생수 공급업체에서 일괄 수거해 재활용할 예정이다. 김하람 주무관은 “올해도 봉사자 등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결과보고회를 열어 부족한 부분을 계속 보완해나갈 계획이다”라고 했다.
한편, 성동구는 올해 무료 생수 나눔 사업(성동 샘물창고)을 일찍이 시작했다. 구는 7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62일 동안 운영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운영이다.
올해 설치 장소는 하천변 산책로, 체육공원 등 9곳(살곶이·응봉체육공원, 금호·옥수·성수 한신아파트 나들목, 용답역 인근, 송정 제방길, 무지개 텃밭, 구청 앞)이다. 선별진료소 대신 ‘무지개텃밭(행당동)’으로 일부 설치 장소를 옮기고 나들목 출입구 등 구민이 많이 이용할 수 있는 장소에 중점적으로 배치했다. 민간 수탁업체가 냉장고마다 500㎖ 생수 200병을 매일 3차례씩, 5400개를 공급한다. 문신환 생활안전팀장은 “지난해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서 5명 중 4명 이상이 만족한다고 답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구는 구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동주민센터 자율방재단을 별도의 관리자로 지정했다. 이들은 1시간 정도 활동하며 생수를 여러 병 가져가거나 개인 물품 등을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일을 한다. 환경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무라벨 생수에 분리배출 수거함을 두고 매일 모아 재활용도 한다.
문 팀장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커지면서 실내보다 야외 무더위 쉼터 이용자가 늘고 있다”며 “다리 밑이나 정자, 공원 등에서 폭염 취약계층이 시원한 물을 마시며 더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가끔 여러 개 들고 가는 사람이 있어 1인 1병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중랑구는 ‘중랑 옹달샘’을 7월25일부터 8월23일까지 29일 동안 운영한다. 지난해 하루 평균 약 2만9500병의 생수를 주민들이 이용할 정도로 호응도가 높았다. 구청 블로그 게시판이나 전화로 ‘더울 때 물 한 모금이 간절했는데 옹달샘을 통해서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이름을 잘 지었다’는 등의 칭찬을 전하기도 했다.
올해도 구릉산, 봉화산, 용마산, 중랑천변 등 공원 산책로·중랑천변에 13대의 ‘옹달샘’을 설치한다. 냉장고마다 500㎖ 생수를 하루 6회, 1회당 300개씩 공급한다. 70명의 자원봉사자 ‘샘지기’도 활동한다. 윤재원 도시안전과 주무관은 “올해는 얼음물 무라벨 생수로 공급하고, 소진되는 것을 봐서 공급량을 유동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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