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판결 취소'는 국세청이 해결, 기관 싸움에 재판 당사자만 지친다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판결에 대해 취소 결정을 내린 적은 두 차례 있었다. 헌재와 대법원이 ‘판결 취소’ ‘법령 해석권’을 두고 첨예하게 맞붙었고, 헌재의 판결 취소 결정에 대해 대법원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재판 당사자 불편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1997년 이길범 전 의원의 소득세 부과 사건 관련 처음으로 ‘판결 취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이 전 의원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부과한 과세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 동작구에 살던 이 전 의원은 1987년에 샀던 서울 관악구 9917㎡ 임야를 팔아 10억4000만원가량 차익을 봤다. 그러자 동작세무서는 이 전 의원에게 1992년 해당 임야의 실거래가를 적용해 8억8000여만원의 세금을 매겼다. 이 전 의원은 이에 불복해 법원에 과세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당시 소득세법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매기되, 공시지가를 적용했을 때 세금액이 실거래가를 적용한 세금보다 더 적을 땐 실거래가를 적용한다는 예외 조항이 있었다. 이 전 의원 임야는 공시지가를 적용하면 세금이 거의 나오지 않아 동작세무서는 실거래가를 적용했다고 한다.
법원은 1995년 7월 이 전 의원의 청구를 기각했고, 사건은 대법원으로 갔다. 이 와중에 헌재는 이 전 의원 사건과 다른 사건에서 실거래가로 과세하는 소득세법 조항은 납세자에게 불리하다며 한정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1996년 4월 당시 소득세법의 해당 조항에 대한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과 무관하게 이 전 의원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면서 “헌재의 견해는 법원이 가진 법령 해석·적용 권한에 대한 기속력이 없다”고 했다. 이때 헌재에선 “한정 위헌 결정도 위헌 결정과 같은 효력을 가지므로 법원도 따라야 한다”고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이 전 의원은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재판’을 제외한 헌재법 68조1항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1997년 12월 이 조항에 대해 한정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이 전 의원 패소 판결을 취소했다. 헌재는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은 단순한 법률 해석이 아니라 위헌 결정의 일종이며 이는 법원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한다”고 했다.
그래도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 2월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고 “헌재가 한정 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거나, 판결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인정한 결정을 변경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헌재가 사법부의 정점에 있는 독일과 달리 헌재 결정을 법원에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사태는 결국 소송 당사자인 국세청이 2001년 이 전 의원의 소득세를 다시 매기고 일부 세금을 돌려주면서 일단락됐다.
이후 24년 6개월 만에 두 기관은 ‘재판 취소’를 두고 또 한 번 충돌했다. 헌재는 지난달 30일 A씨가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 민간위원을 지내면서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공무원’으로 보고 처벌한 법원 판결을 취소했다. A씨는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 민간위원을 공무원에 포함하는 형법 조항은 위헌이라며 헌재에 위헌 소원을 냈고, 헌재는 이 조항에 대해 한정 위헌 결정을 했다. A씨는 이를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광주고법·대법원에서 기각됐다.
이에 A씨는 헌재가 한정 위헌으로 결정한 법 조항을 적용한 법원 재판일지라도 헌법소원을 할 수 없다고 해석되는 헌재법 68조 1 항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제68조 제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 가운데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은 위헌”이라며 “A씨 재판은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6일 “헌재는 법원 판결을 취소할 권한이 없다”며 반박 입장문을 냈다.
다만 헌재는 21일 GS칼텍스 등 회사 3곳의 세금 부과 소송 관련 3건의 재판 취소 결정은 내렸지만, 세 회사에 대해 과세 처분에 대해서는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 이전에 확정된 법원의 판결 및 법원의 재판을 거쳐 확정된 행정 처분인 청구인에 대한 과세 처분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아 부적법하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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