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대법원에 칼 갈았다, 두 기관 권한 다툼 더 치열해질 것"

김정환 기자 2022. 7. 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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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해석 기준 제시하는 건 사법독립 침해"
헌재 "재판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살피는 건 당연"
법조계 "국회가 헌법재판소법 개정해 해결해야"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30일에 1997년 12월 이후 24년 6개월 만의 두 번째 ‘법원 판결 취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21일에도 법원의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3주 만에 세 번째 ‘판결 취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법원 안팎에선 “‘김명수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떨어진 이 시점이 헌재가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재판 취소’ 결정을 이런 식으로 몰아붙인다”는 반응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대법원에 칼을 갈았다”며 “두 기관의 권한 다툼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일각에선 “결국 국회가 헌법재판소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법에 한정 위헌 결정이란 규정이 전혀 없는데도, 법 조항의 특정한 내용만 한정해 위헌으로 결정하는 것은 재판에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법관의 고유 권한이자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라며 “법원의 이 같은 권한을 헌재가 다른 법률 해석 기준을 제시해 간섭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 침해”라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 헌법 제27조와 사법권의 독립과 심급제도를 규정한 헌법 제101조에 합치하는 해석”이라고 했다.

한 부장판사는 “전 세계에서 대법원이 헌법 재판을 하지 않는 곳은 독일, 오스트리아, 한국이 전부다”고 했다. 그는 “유신 체제 때 사법부도 신뢰가 떨어져 개헌 후 대법원의 헌법 재판 기능을 떼서 1988년 헌재가 생겼다”며 “지금의 우리나라는 정상적인 민주 국가다. 오히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헌법 재판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연방대법원, 일본은 최고재판소가 대법원과 헌재의 역할을 함께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두 기관의 권한 다툼이 없다.

반면 헌재는 “국민이 재판 결과로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가 있다”며 “이를 외면해선 안 되니 헌재가 재판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헌재는 2013년 국회에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는 헌재법 68조를 개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4심제 도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가 연방대법원의 상위 기관”이라며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도 인정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독일 헌재도 법 조항 전부를 위헌이라고 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헌이라고 하는 한정 위헌 결정을 내리는데, 그 이유는 입법부의 입법 취지, 입법권을 존중하는 차원이 있다”며 “독일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은 우리와 달리 독일 재판에서 기속력도 있다. 우리 법원도 헌재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공개 변론에 입장하고 있다./뉴시스

법원 내부에선 유남석 헌재소장에 대한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법조인은 “유 소장은 과거 법원 재직 시절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이 법원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를 만들었던 분”이라고 했다.

실제 유 소장은 성남지원 판사 시절인 지난 2001년 법률신문 논단에 쓴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와 한정 위헌 결정’이라는 글에서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는 법률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한정 위헌 결정을 선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헌법재판소법 제정 즈음 골격은 오스트리아 제도를 따랐다는 점이 종종 잊혀지고 있다”며 “오스트리아는 민·형사최고법원, 행정법원, 헌법재판소를 3개 최고 법원으로 둔다”고 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헌재가 위헌 법률 심판의 결정 주문에서 법률의 특정 해석이나 적용에 한정해 위헌·합헌이라고 선언한 사례는 없다”며 “(오스트리아의 경우) 법원은 상급심의 파기 환송 판결에 기속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독립해서 법령을 해석·재판하는 것이므로, 법원은 고유 권한인 재판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헌재가 위헌 법률 심판에서의 합헌 결정이나 행정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에서의 인용 결정의 이유에서 제시한 합헌적 법률 해석에 법적으로 기속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유 소장이 헌재 소속이 된 뒤로는 헌재의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 법조인은 “대법원으로선 이런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까지 법원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경우 자칫 우리나라 헌재가 독일처럼 대법원의 상위 기관이 될까 봐 우려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황정근 변호사는 “결국 국회 입법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 대법원과 헌재의 권한 다툼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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