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韓반도체..尹정부 '초강대국' 전략으로 도약할까
반도체, 경제안보 핵심품목 부상…"기업-정부 연합 간 경쟁의 시대"
업계 '긍정 평가'…수도권 중심 인재 양성 방안은 거센 반발 부딪쳐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한 윤석열 정부가 출범 73일 만에 투자 지원과 인력, 기술, 소부장 등을 아우르는 반도체 육성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 2위, 메모리 반도체 1위라는 외형적 수치 아래 가려진 '위기론'을 딛고, 전 세계적인 반도체 패권전쟁 속에서 전반적인 산업 생태계를 강화해 선도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메모리 1위' 흔들…"기업-인력-기술-소부장 등 반도체 생태계 취약"
정부가 21일 발표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은 우선 '위기론'에서 시작된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은 20%의 점유율로 미국(50%)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일본(9%)이나 대만(8%)에 비하면 2배 이상이었다.
특히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체 시장의 59%를 점유하고 있다. D램의 경우 점유율이 무려 71%에 달했고, 낸드 역시 과반에 가까운 47%를 우리 기업이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우리 총수출의 19.9%를 차지했다. 벌써 9년 연속 수출 1위 품목이다. 정부는 이런 외형적 성과에도 기업, 인력, 기술,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 전반이 취약해 위기론이 대두됐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경제안보 핵심품목 부상…"기업-정부 연합 간 경쟁의 시대"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반도체 패권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미국은 반도체 시설과 연구개발(R&D) 투자 등에 5년간 520억달러(약 68조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EU는 2030년까지 공공·민간 투자에 430억유로(약 56조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첨단기업 지원을 위해 올해 이미 7740억엔(약 7조4천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을 긴급 편성했다.
미국이 반도체 장비·핵심 기술의 대중 유출을 통제하며 화웨이와 SMIC(中芯國際·중신궈지) 제재에 나선 것도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첨단기술경쟁이라는 분석이다.
주요국이 이처럼 반도체를 경제안보의 핵심품목으로 인식해 총력 지원에 나선 배경에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반도체 부족 현상 등이 있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지난해 세계 자동차산업 매출이 2100억달러, 생산량이 770만대 각각 감소했다.
여기에 디지털·그린 전환 가속화로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처리할 수 있는 고지능·고성능·고전력 반도체 수요가 커지면서 반도체는 미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산업으로 떠올랐다.
세계 반도체 산업 규모는 지난해 약 6천억달러(약 787조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4.2%의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세계 경제 내 비중도 크게 증가하면서 반도체 산업은 이제 기업간의 경쟁을 넘어, 기업-정부 연합 간 경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 4요소 '기업·인력·기술·소부장' 모두 취약"
정부는 우선 경쟁국에 못 미치는 지원과 기업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가 투자 면에서 위기론의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경쟁국의 대규모 투자 인센티브에 비해 보조금이나 세제 지원이 부족해 반도체를 국내에서 제조하는 데 따른 비용상 이점이 역전될 위기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대만 TSMC의 구마모토현 공장에 총 투자비(11조원)의 약 40%에 해당하는 4조5천억원을 지원했고, 독일 정부는 인텔의 마그데부르크 공장에 투자비(22조원)의 40% 수준인 8조9천억원을 지원했다.
또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으로 기업의 설비 투자 비용 부담은 5년 전에 비해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자치단체의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와 과도한 규제로 인해 투자 지연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총 120조원이 투자되는 SK하이닉스의 경기 용인클러스터는 범정부적인 지원에도 지자체간 이견 및 주민민원과 보상 문제로 인허가가 지연됐다. 결국 2017년 12월에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4년6개월이 지난 최근에서야 착공에 들어갔다.
인력난은 반도체 업계의 오랜 숙원이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약 15만명 이상의 반도체 전문인력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원)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 축소로 반도체 전문인력 공급은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술 측면에서는 메모리 초격차 지위가 흔들리고 있고,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는 팹리스-파운드리-후공정으로 이어지는 전(全) 주기에서 선도국가와의 기술 격차가 여전하다.
팹리스(설계) 분야의 경우 설계 인력 부족에다 파운드리 확보 어려움 등으로 성장이 정체된 상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는 삼성전자의 도전에도 TSMC가 5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독주하고 있다. 후공정(패키징) 역시 TSMC의 생태계를 바탕으로 대만이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소부장 생태계도 경쟁력이 부족하고, 핵심 품목에 대한 특정국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리스크가 상존하는 분야다. 반도체 생산에는 300종의 소재 및 50종 이상의 장비, 최대 1400단계의 제조공정이 필요한데 현재 소재와 장비의 국산화율은 각각 50%와 20%로 추정된다.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국내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4%에 불과하다. 강제징용 판결을 둘러싸고 우리와 경제 갈등을 빚은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 이상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여전하고, 미중 갈등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요인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는 반도체 초강대국 도약을 위해 △기업 투자 총력 지원 △민관이 합심해 인력 양성 △시스템반도체 선도기술 확보 △견고한 소부장 생태계 구축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디스플레이, 배터리, 미래모빌리티, 로봇·인공지능(AI), 바이오 등 반도체 수요를 견인해 파급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신산업인 '반도체 플러스(plus) 산업'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산업현장이 계속 진화하듯 이번 정책발표가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의 완결은 결코 아니다"라며 "미래수요를 견인할 유망 신산업을 '반도체 플러스 산업'으로 묶고 경쟁력 강화 방안을 순차적으로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긍정 평가'…수도권 중심 인재 양성 방안은 거센 반발 부딪쳐
반도체 업계는 정부가 발표한 용적률 규제완화화 세제지원 등 반도체 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 평가했다. 다만 이번 발표가 기존 정책과 큰 차이가 없고, 인재 양성 방안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요구한 용적률 규제나 세제지원 등의 조치가 반영된 것은 진일보한 정책"이라면서도 "전반적인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과연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얼마나 이행할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국회 입법과 맞물린 과제들이 많다 보니 향후 실행 과정에서 그 결과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특히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에는 지역 교육계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균형발전을 촉구하는 호남·영남·충청·강원·제주 시민사회단체는 전날 합동 성명을 내고 "정부의 반도체 인재 양성방안은 수도권 대학 정원을 골자로 한, 비수도권과 지방대학을 다 죽이는 정책"이라며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수도권 대학의 정원 증원을 허용하면 비수도권 청년들의 수도권 유입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라며 "학령인구 급감으로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는 비수도권 지방대학을 위기로 몰아 종국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모두 공멸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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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종관 기자 panic@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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