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장부·곱셈표..수천년전 점토판에 남은 메소포타미아인의 삶(종합)

김예나 2022. 7. 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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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국내 첫 상설 전시
사자 표현한 벽돌판 등 60여 점 공개.."인류 역사의 큰 걸음 한눈에"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2022.7.21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히구누(보리) 낱알 200ℓ, 맥아 300ℓ, 곡식 251ℓ… 이것은 양조업자인 '쿠심'의 소유다."

기원전 약 3100∼2900년의 어느 때. 우룩(Uruk)의 행정을 담당했던 신전은 맥주를 만드는 업자에게 맥아와 보리를 빌려주고 그 양을 기록했다.

가로 6.85㎝, 세로 4.5㎝ 크기의 점토판은 이들에게 경제활동을 정리한 장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유의 문자가 등장하자 자그마한 점토판은 다양하게 쓰였다. 곱셈을 익히기 위한 학습용 판이나 처방전이 되기도 했고, 가정사의 내밀한 부분을 담은 법률 문서로도 기능했다.

인류 문명사에 있어 큰 획을 그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조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 전시관 3층에 '메소포타미아실'을 새로 설치하고 22일부터 2024년 1월 28일까지 약 1년 6개월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를 선보인다고 21일 밝혔다.

국내에서 메소포타미아 문화유산을 다룬 상설 전시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 박물관으로서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주제로 한 첫 기획 전시라 더욱 의미가 크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쐐기문자 점토판, 인장(도장), 종교적 물품, 초상 등 총 66점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 설명회에서 참석자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2022.7.21 mjkang@yna.co.kr

두 강 사이를 뜻하는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거대한 도시를 만든 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생소하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날 언론 공개회에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최초로 문자를 사용해 그 영향을 현대에까지 미쳤으나 다른 고대 문명과 달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는 크게 '문화 혁신', '예술과 정체성', '제국의 시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마치 흰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꾸민 1부 전시는 쐐기문자가 쓰인 점토판 문서 13점 등을 보면서 도시의 탄생과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양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설명하면서 '최초'라는 단어를 딱 두 번만 써야 한다면 바로 도시와 문자"라며 다양한 기록을 남긴 고대인의 삶에 주목할 것을 권했다.

기원전 547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토판 내용은 일상 한 부분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에서 관람하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2022.7.21 mjkang@yna.co.kr

수도 '바빌리'(바빌론)에서 출토된 이 유물에는 재혼한 아내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양자로 삼아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아버지는 이를 거부하면서 부자간 대화를 '법적' 기록으로 남겼다.

높이가 2∼3㎝에 불과한 작은 원통형 모양의 인장(도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대나 거주 지역에 따라 각기 달랐던 도장은 점토판에 놓고 굴리는 방식으로 모양을 새겼다. 크기도 작은 데다 조각하는 모양이 반대로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만만찮을 작업이었다고 한다.

인장은 실을 꿰어 목걸이로 쓰거나 옷핀으로 옷에 달아 가까이 두고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데아'(Gudea·기원전 2150∼2125년 재위) 조각상은 당시 예술이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냈는지 보여준다.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앉은 구데아는 다부진 눈매와 크고 동그란 머리가 돋보인다.

양 학예연구사는 "검은 돌로 만들어진 구데아 왕의 모습을 보면 오른쪽 근육이 튼실하고 오른쪽 어깨를 노출했는데, 오른팔이 튼튼하다는 사실은 왕이 될 자질을 가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사자 벽돌 패널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 설명회에서 참석자가 '사자 벽돌 패널'을 살펴보고 있다. 2022.7.21 mjkang@yna.co.kr

강력한 통치력과 정복 전쟁, 왕성한 예술 활동으로 이름을 남긴 두 제국의 유물도 볼 수 있다.

'신-앗슈르'(신-아시리아·기원전 약 911∼612년) 당시 유물인 '조공 행렬에 선 외국인 마부'는 말을 끄는 외국인의 턱수염과 머리, 말의 장식을 화려하게 꾸며 정교한 조각 기술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기원전 약 626∼539년에 이르는 '신-바빌리'(신-바빌로니아)의 대표적 벽돌 건축물인 '이쉬타르'(이슈타르) 성문과 행렬을 장식했던 사자 두 마리('사자 벽돌 패널)는 관람객의 좌우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박물관 측은 관람객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더욱 쉽게 이해하도록 볼거리도 준비했다.

전시를 소개하는 영상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인장을 어떻게 썼는지 설명하고, 이번 전시를 함께한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고대근동미술부의 킴 벤젤 부장이 바라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4m 높이의 미디어큐브는 메소포타미아를 상징하는 땅과 강, 쐐기문자 등을 영상으로 표현하며 수천 년 전 역사의 한 장면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이번 전시는 한국고대근동학회와 협력해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보편적인 공용어로 쓰인 '악카드어'(아카드어) 원어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각종 지명과 인명을 표기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직접 보기 어려운 메소포타미아 문화유산을 통해 인류 역사에 큰 걸음이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적 혁신과 뛰어난 기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말하는 윤성용 관장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신설된 메소포타미아실 앞에서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2.7.21 mj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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