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피해자 술취해 '준강간'..인하대 구속영장 법적용 왜 [에그스토리]

최재훈 기자 2022. 7. 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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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심신상실 상태 성폭행은 준강간으로 처벌
피해자 책임성 인정하는 것 아닌가 반발도
법조계 "미필적 고의·부작위 살인도 가능" #에그스토리

인천 인하대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이 가해 남학생 A(20)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적용한 혐의는 ‘준강간치사’ 혐의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지난 17일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그를 구속 후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피해자 B(20)씨는 성폭행을 당한 뒤 건물에서 떨어져 숨졌는데, 범인 A씨에게는 왜 강간이 아닌 ‘준강간’이, 살인이 아닌 ‘치사’ 혐의가 적용됐을까. 법조계에서는 “기소 단계에서 혐의가 바뀔 수도, 추가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인하대 캠퍼스에서 또래 여대생을 성폭행한 뒤 건물에서 추락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가해자 A씨가 17일 오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오고 있는 모습. 그는 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 /뉴스1

사건 개요는 이렇다. 지난 14일 계절학기 기말시험을 치기 위해 등교했던 B씨는 시험 후 A씨 등과 술을 마셨고, 이튿날 새벽 한 단과대학 건물 안에서 A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건물 3층 창문에서 추락했고, 새벽 3시50분쯤 옷이 벗겨진 채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B씨는 그날 오전 7시쯤 끝내 숨졌다. 경찰은 B씨가 추락한 후 행인에게 발견되기까지 상당한 시간 쓰러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간 살인과 강간 치사

형법(제301조 2항)은 강간 범행 후 피해자를 살해하면 ‘강간살인’, 살해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목숨을 잃으면 ‘강간치사’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강간살인의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 강간치사는 무기 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단순 살인죄의 형량(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보다 훨씬 무겁다.

살인과 치사의 결정적 차이는 ‘고의성’ 여부다. 만약 피해자가 강간에 대한 수치심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경우엔 살인이 아닌 치사로 처벌한다. A씨의 경우 성폭행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B씨의 사망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선 A씨가 고의로 B씨를 밀어 추락 사망하도록 했는지를 못밝힌 것이다. 이런 경우 일단 경찰은, 살인이 아닌 ‘치사’로 영장을 청구해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찰은 A씨 구속 후 살인 혐의에 대해 계속 수사 중이다.

#강간과 준강간

성폭력은 형법상 강간과 유사강간, 강제추행으로 구분되고, 셋 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위협한 상황에서 저지르는 범죄다. 강간은 직접적인 성관계를, 유사강간은 손이나 도구 등으로 성적 가혹행위를 말하고, 추행은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는 신체 접촉을 말한다. 형량은 강간이 3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장 무겁고, 유사강간은 2년 이상의 징역, 강제추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법은 이들 성범죄와 똑같은 무게로 처벌하는 준(準) 범죄를 규정하고 있다. 준강간과 준유사강간, 준강제추행 등이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이 혐의들을 적용한다. 흔히 만취하거나 잠들어 있는 사람, 마취돼 있는 환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범행을 말한다. A씨도 술에 취한 B씨를 부축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고, 건물 안에서 성폭행한 사실을 자백했다.

일반적 법 감정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준강간’이라는 단어가 ‘강간’보다 경미한 사건처럼 보이게 하는데다, 피해자의 음주상태를 감안하는 것이 ‘피해자 책임론’을 묻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성폭행을 당한 뒤 학교 건물에서 추락해 숨진 피해 여대생을 추모하기 위해 인하대 캠퍼스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학생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미필적 고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

A씨에 대한 살인의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에게 살인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A씨가 직접 밀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강간 범행 직후 3층 건물에서 추락한 피해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데 119신고나 구조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미필적 고의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곡살인 사건의 이은해도 수사 초기엔 물에 빠진 남편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은 점만 봐서 부작위 살인 혐의를 적용하려고 했지만, 수사결과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치밀한 계획 하에 저지른 범죄로 판단해 작위 살인으로 기소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작위범에 대해 법은 위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위험 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사람이 위험을 막지 않았을 때는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A씨의 경우, 강간이라는 원인 제공 후 피해자의 추락사고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이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또 B씨가 추락 후 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했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도 된다는 것이다.

#불법 촬영과 증거인멸

지금까지 드러난 A씨의 범행 과정을 보면 준강간치사 외에 또다른 범죄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A씨의 휴대폰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을 진행 중이다. 범행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나 녹음파일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피해자 B씨의 신체나 범행 장면을 찍은 파일이 나올 경우 A씨에게는 성폭력특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이 법은 카메라 등으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벗겨진 B씨의 옷가지 일부가 사건 현장에서 다소 떨어진 학교 내 다른 장소에서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A씨가 성폭행 과정에서 벗긴 B씨 옷을 다른 장소에 버린 뒤 자취방으로 달아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한 관계자는 “피해자의 옷을 버린 행위는 자기 범죄에 대한 증거인멸이어서 처벌할 수는 없지만, 살인의 고의성 등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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