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음악가 발굴·창작음악 산실 '여우락 아카데미'
박우재·이아람·리마이더스 창작멘토 참여
"음악 배움 갈증 해소..오아시스 같은 존재"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피리(이정빈)가 노래를 시작하면 가야금(박상아)이 이어 연주하고, 그 위로 대금(박예은)이 소리를 얹는다. ‘여우락 아카데미’ 멘토인 대금 연주자 이아람(블랙스트링, 나무)은 학생들의 연주를 가만히 듣고 방향성을 일러준다.
“전체가 다 같이 한다고 개인의 개성이 없어지면 음악적 매력이 사라져요. 각자의 개성을 지키며, 디렉션을 잘 따르는 것이 오늘의 큰 목적이에요.” (이아람)
국립극장의 여름음악 축제인 ‘2022 여우락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여우락 아카데미’가 8기 수강생을 맞았다. 지난 11일 시작, 5일간 이어진 아카데미에선 지금 우리 음악을 이끌고 있는 박우재(무토), 이아람을 비롯해 가야금 거문고 듀오 리마이더스가 창작 멘토로 참가자들을 만났다.
국악작곡을 전공, 음악그룹 연줄로 활동 중인 8기 양승범(24·중앙대)은 “유튜브로만 보던 연예인 같은 분을 멘토로 만나는 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벅찬 경험”이라고 말했다.
2013년 시작한 ‘여우락 아카데미’는 차세대 음악가를 발굴하는 인큐베이터이자, 창작음악의 산실이다. 그간 재능있는 음악인도 다수 배출했다. 리마이더스를 비롯해 이날치의 신유진, 상자루의 조성윤, 이드 김경식(피리). 김문고의 김주현. 헤이스트링의 오지현, 경기민요 김주현, 작곡가 이아로가 ‘여우락 아카데미’ 이후 결실을 맺은 음악가들이다. 리마이더스는 2015년 3기 출신으로, ‘여우락 아카데미’로 다시 돌아와 멘토가 됐다. 리마이더스 박지현은 “해마다 여우락 시즌이 되면 기억 속에 ‘여우락 아카데미’가 살아났고, 그 때의 짜릿한 경험을 원동력 삼아 지금도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함께 하게 돼 너무나 기뻤다”며 “여우락 이후 지금까지 활동의 생생한 경험과 배움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여우락 아카데미’는 전통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물론 프로로 데뷔한 음악인들에게도 인기 프로그램이다. ‘전통의 울타리’인 “학교 교육 안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가장 왕성히 활동 중인 선배 음악가들에게 배울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으로 인생 전환이 커서 추천을 많이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만큼 경쟁률도 치열하다. 올해에는 총 41명이 지원, 면접 등을 거쳐 14명이 선발됐다.
‘차세대 음악가’들은 뚜렷하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이곳의 문을 두드린다.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출생, 소위 Z세대로 분류되는 이들은 고민의 방향도 달라졌다. 2015년부터 멘토로 활약 중인 이아람은 “리마이더스가 배출된 3기 때만 해도 국악계 크로스오버의 다양성이 넓지 않았던 반면, 지금은 눈치를 보지 않고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선택권이 많아졌다는 것은 ‘자기만의 길’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아람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을 때까지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들은 그런 부분에서 갈증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리마이더스 김민영도 학생들을 만나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발전시켜나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안은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다.
“음악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양승범), “학교에서 배운 음악을 넘어 나의 음악 스타일과 색채를 찾고 싶은 마음”(김희원, 이승준)은 8기 참가자들이 아카데미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다. 8기 김희원(21·중앙대)은 “주입식 교육으로 배워 악보대로만 해야하는 음악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얹는 아티스트로의 음악을 하기 위한 고민이 많았다”며 “아카데미에선 그간 해온 음악 세계관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같은 고민을 안은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과 음악적 교류는 이들의 음악활동에 큰 힘이자,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리마이더스 역시 여우락 아카데미에서의 만남이 인연이 돼 같은 길을 걷게 됐다. 김민영은 “여우락 아카데미를 통해 즉흥음악을 접하게 됐고, 이후에도 몇 명이 모여 음악활동을 이어왔다”며 “그러다 박지현과 리마이더스로 데뷔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보며 후배들도 가능성을 발견한다. 김희원은 “팀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 그룹을 만들었는데 의견이 달라지면서 해산한 경험이 있다”며 “이곳엔 같은 뜻을 가진 분들이 많아 새로운 팀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준(22·한양대 대학원)도 “같은 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어 재밌는 작업이 되고 있다”고 했다. 든든한 동료 음악가가 생기는 것은 물론 멘토들과도 선후배로 끈이 이어진다. 이아람은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며 “사람을 만나 동료를 만들고, 아카데미 이후에도 연결돼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라고 했다. 이아람과 만난 ‘아카데미 참가자’들은 그에게 수시로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8기 참가자들은 닷새 간의 수업을 통해 아티스트 멘토링, 창작실습은 물론 공연기획과 홍보, 저작권 교육, 아트 필름 촬영까지 진행했다. 공동창작 수업은 멘토 이아람이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수업 방식이다.
이아람은 “길지 않은 시간인 만큼 즉흥음악을 하면서 공동창작의 경험을 해보고, 자신에게 잘 맞는 길인지 아닌지 찾아갈 수 있도록 ‘창작의 맛’을 보여주는 수업을 2015년 처음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아람이 멘토로 참여했던 2015년엔 리마이더스, 이날치 신유진, 상자루 조성윤이 배출됐다.
수업에선 팀을 나눠 함께 음악을 만들어간다. 이아람의 철칙은 친분이 있거나 함께 음악활동을 해온 경험이 있는 참가자는 “무조건 결별”이다. 그는 “한 팀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아카데미에서도 함께 작업하면 자신들에게 익숙한 것을 하게 된다”며 “각자 독립된 섬에 가두면 다른 음악적 어법이 나오니 무조건 찢어둔다. 그 안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관계 안에서 음악적 합을 맞춰 서로의 이야기를 쌓으면 이전엔 몰랐던 공동창작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날 것의 연주와 작업을 통해 가장 나다운 모습을 만난 시간”(김희원)이라고 한다. 창작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련 수업도 배우니 “음악을 전공하면서 음악 이외에도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박지현)는 것도 큰 의미다.
짧은 수업이지만, 여우락 아카데미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김희원은 “여우락 아카데미를 통해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 시간에서 자유로운 호흡을 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승준은 이 만남을 통해 “시선의 확장을 경험했다”며 “학교를 더 다녀야 기회의 장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 학교 밖에서 연주자에 맞는 곡을 쓰는 법을 발견하고 악기의 매력과 나의 스타일을 찾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양승범은 “이아람 선생님이 쓰는 음악적 소재들이 하나하나 모여 곡이 완성되는데, 그 과정에 참여하고 관찰하며 체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음악계 안에서 새로운 시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미래의 음악가’들은 배움을 향한 목마름이 크다. ‘여우락 아카데미’는 이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김민영)였고, “한 명의 자립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자리”(이아람)였다. 음악에 대한 갈증과 열망은 어느 곳에나 있다.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해주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많지만, 활동 이후 3~4년차 아티스트를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국악 음악팀 중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살아남는 팀은 100팀 중 한두 팀 정도인데, 3~4년차는 늘 팀의 과도기거든요. 그 과정 역시 세상에서 눈 여겨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민영)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임신중 열일하는 손예진...이민정 "얼마 받았니?"
- 배우 이병헌, 아들과 미국 여행…나란히 손잡고 놀이공원 ‘뒤태도 닮은듯’
- “출연료 ‘수억원’ 김종국 나타났더니” 300억원 ‘잭팟’ 터졌다
- 이무진 ‘신호등’ 日밴드 표절 논란에…“허위사실 유포 강경대응”
- [영상] “수술한 멤버도 있는데 팔 번쩍”…BTS 위촉식에 뿔난 아미들
- 교사가 남학생 성추행한 학교…교감도 女직원 성추행으로 체포 ‘촌극’
- “나 기억하냐?” 고교생 64차례 찌른 20대男, 대체 무슨 일이
- “빵집 월매출 5800만, 건물 7억 차익” 노홍철, 집값 날려봤다더니 ‘역전’
- [영상]상가복도에 소변본 초등생…부모에 연락하니 "미친X" 적반하장
- ‘학폭 의혹’ 김가람, 하이브와 전속계약 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