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도시에 소리내며 굴러가는 종..나는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이한나 2022. 7. 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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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뜨는 여성 작가2인 국내 첫 개인전
네빈 알라닥 국내 첫 개인전
소리로 구현하는 공간 추상 작업
24일까지 바라캇컨템포러리
알렉스 베르하스트 개인전
빅데이터로 성향분석 게임 구현
31일까지 바라캇서울
네빈 알라닥 <사진제공=바라캇, 사진촬영 Trevor GGood_VillaStuck>
"내 존재를 알아줘."

가구 같기도 하고 종합 악기 같기도 한 거대한 존재가 세 개 전시장에 서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터키 출신 작가 네빈 알라닥(51)의 '공명기'연작이다. 한명이 손을 뻗어 조각 가장 높이 달려 있는 큰 북을 둥둥둥 크게 울려대면서 사운드 퍼포먼스의 절정에 도달하는 장면은 작가가 세상을 향해 크게 외치는 것만 같다. 알라닥의 국내 첫 개인전 '모션 라인'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24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일상의 사물과 언어, 건축양식, 풍경 등에서 작업의 소재를 찾고 이를 설치, 조각,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실험하면서 소리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현악기와 타악기 등을 직선과 대각선, 원 등 기하학적 형태로 결합한 공명기 연작은 다양한 장인들과 협업한 산물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악기가 혼성된 작품은 소리의 역사를 공유한다. 다양한 건축양식이나 전통 문양을 다양한 재료로 결합해 만든 콜라주 작품들과 일맥상통한다.

네빈 알라닥 개인전 전경 <사진제공=바라캇컨템포러리>
입구 왼쪽의 거대한 벽면에는 '터키 행진곡'으로 불리우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1번 A장조(K.331)의 마지막 장이 구현됐다. 바젤 역사박물관에 소장된 19세기 포탄들을 본따서 녹슨 철로 주조해 음표처럼 박아둔 것이다. 서구의 정치 문화적 패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이 작품은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내려보면서 전시의 주제의식을 이끄는 서막같다.

전시장 안쪽에 펼쳐진 3채널 영상도 소리에 집중해서 감상할 만하다. '세션'(2013)은 이민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종이나 탬버린 등 전통 악기들이 바다를 건너거나 모래사막 위를 굴러다니는 모습을, '흔적'(2015)은 독일 슈튜트가르트의 공원 놀이터에서 어린아이처럼 연주되는 바이올린과 탬버린, 노란 풍선에 매달린 피리 등이 떠오르는 장면으로 일상 공간을 추상화했다.

네빈 알라닥의 3채널 영상 작품 '세션'이 전시된 전경 <사진제공=바라캇컨템포러리>
전시 제목 '모션 라인'은 애니메이션에서 인물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선으로 표현해 이들의 소리, 감정, 움직임을 나타내거나, 전후 동작의 흐름을 연결하는 효과를 뜻한다. 작가는 "모션(동작)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진행 상태를, 라인(선)은 어떤 한계를 정의하거나 새로운 패턴과 장소를 만든다"며 "모션 라인은 음악, 형태, 움직임이 모두 결합된 생생한 이미지를 묘사한다"고 밝혔다. 국경을 가르는 경계나 인종, 국가,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해체하고 예술적으로 재구성해 변화하는 인식을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 한다고 전했다. 그는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도큐멘타 14(독일 카셀, 그리스 아테네), 독일 슈투트가르트 현대미술관,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등에서 전시했다.
바라캇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알렉스 베르하스트 작가(이한나 기자)
삼청동 초입에 위치한 자매 갤러리 바라캇에서는 벨기에 출신 미디어아티스트 알렉스 베르하스트(37)의 아시아 첫 개인전 '이루지 못한 미래의 아카이브'가 7월 31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권위있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골든 니카(우승)에 뽑힌데 이어 올해도 영예상을 받아 화제다.

어두운 전시장에 들어서면 공상과학(SF)이나 초현실주의 영화 같은 영상이 가득 하다. 얼굴 표정이 지워진 흑백 사진 속 인물들은 시대나 장소를 특정하기 힘들다. 낯설게 하면서도 인간의 보편성을 끌어내려는 작가의 장치다. 작은 모니터 15개가 4개의 면에 배치된 영상 작업 '아키비스트'다.

알렉스 베르하스트의 비디오게임 작품 '애드 호미넴' <사진제공=바라캇>
이 작품은 주인공 '변화(change)'가 오아시스(공동체주의), 캡슐(고립주의), 바자(쾌락주의), 허브(미래주의)로 구분되는 4종류의 유토피아에서 여행하며 보내온 편지들을 읽어주는 것을 담았다. 작가는 철학자 소피 베라스트가 유토피아 유형이 서양 문학과 건축, 영화 등에 출현한다는 논문에서 출발했다. 그는 3년간 무려 670억권의 서적과 위키피디아, 뉴욕도서관 등 공공도메인 텍스트를 인공지능(AI)프로그램 'GPT-3'을 활용해 머신러닝 방식으로 이미지를 찾고 극본을 짰다. 각각의 유토피아는 공동체주의가 구름, 고립주의가 마스크, 쾌락주의가 폭발하는 빛, 미래주의가 망원경 등 상징으로 드러낸다.
알렉스베르하스트 '아키비스트_허브(2022) <사진제공=바라캇>
지하로 내려가 실제 시연해보는 비디오게임 작품 '애드 호미넴'은 관람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파악하도록 돕는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열풍이 일고 있는 MBTI(성격유형검사)처럼 본인의 성향을 분석할 수 있다. 여기서도 관람객이 선택한 1인칭 주인공은 '변화'다. 고향으로 돌아가 다양한 유토피아를 대변하는 옛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본인만의 여정을 이어간다. 게임을 일단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선택을 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다양한 유토피아 유형이 이 게임 속에서는 다른 색깔로 구분된다. 독특한 색감과 캐릭터가 등장하고 작가의 모국어인 플라망어로 표현되니 이색적이다.

어릴때부터 르네상스 회화와 닌텐도 게임을 함께 좋아했다는 작가는 "예술가는 주변의 것을 수집하는 일종의 민감한 안테나 같다. 과거 역사를 기반으로 시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작업한다"고 밝혔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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