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공급량 40%→30%'..푸틴, 서방에 '에너지戰' 선전포고

최서윤 기자 2022. 7. 2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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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석유 금수 발표하자..러, 가스 공급 중단으로 '반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볼샤야 페레메나 전국 학생 대회 출전자들과 화상으로 만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러시아가 유럽으로 보내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여러 구실로 줄였다 늘리며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까지 소비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해온 유럽 경제는 러시아가 휘두르는 지휘봉을 따라 휘청이는 모습이다.

바야흐로 유럽에 또 다른 전쟁, '에너지 전쟁'이 본격화한 것으로 관측된다.

◇푸틴, 가스통 들었다...다른 손엔 '라이터'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클라우스 뮐러 독일 연방네트워크청장은 ZDF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가스프롬이 하루 약 530기가와트시(GWh)로 가스 공급이 재개될 것이라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약 30% 수준"이라며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계약상으로 합의된 부분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송유관 노드(노르트)스트림1은 최근 공급량이 절반 이상 줄었고, 노드스트림2는 완공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노드스트림1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 송유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 매년 550입방미터(㎥)의 러산 가스를 공급했다. 지난 11일부터 연례 유지보수에 들어가면서 열흘간 공급이 중단됐고, 유럽 시간으로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공급이 재개되는 것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해온 '유지보수 후 공급 재개'이지만 올해는 다르다. 이번 연례 유지보수에 들어가기 앞서 가스프롬은 지난달 노드스트림1 가스수송량을 기존의 절반 이상인 40%로 줄였다. 지멘스에너지가 터빈을 캐나다에서 정비 중이었는데, 제재로 장비 반환이 막혔다는 핑계를 들었다. 그러나 해당 터빈은 9월부터 사용하기로 한 대체 부품으로, '구실'에 불과했다는 평가다.

이에 이번 유지보수 이후 공급 중단이 계속되거나 공급량이 대폭 감소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는데, 적중한 것이다. 한 달 전 감소치보다 딱 10%포인트(p) 줄었다.

이탈리아도 지난주부터 가스 공급량이 3분의 1 줄었다. 프랑스24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유사 에니는 지난 11일부터 일일 약 2100만 입방미터의 가스만 가스프롬으로부터 받고 있다고 밝혔다. 직전까지 이탈리아가 들여온 러산 가스 공급량은 일일 3200만 입방미터다.

이 밖에도 러시아는 이미 프랑스와 폴란드, 불가리아,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에도 가스 공급을 중단한 상황이다.

강력한 공격을 받은 유럽은 비상이 걸렸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전날(20일) 27개 회원국에 가스 소비를 15% 줄이는 조치를 당장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17일 벨기에 브뤼셀 본부에서 우크라이나에 EU 가입 후보국 지위 부여를 권고한다고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우크라이나 국기 색을 상징하는 노란색 블레이저에 파란색 셔츠 차림을 해 화제가 됐다. 2022. 6. 17. © 로이터=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사실 에너지 전쟁만 놓고 보면 그 시작은 EU가 먼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6차 제재로 지난달 초 확정한 석유 금수 조치가 발단이다. EU 에너지 소비 스펙트럼 중 석유가 34.5%로 가장 비중이 높고, 가스가 23.7%로 뒤를 잇는다. 반면 이들 자원의 대러시아 의존도는 가스가 약 40%로 더 높고 석유가 30% 수준.

즉, EU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석유 수입 금지로 러시아 경제를 압박하려 했는데, 오히려 러시아가 먼저 가스 공급을 끊겠다며 반격해온 것이다.

◇단기전은 푸틴이 유리…장기전으로 가면 '글쎄'

러시아가 적게나마 노드스트림1 공급량을 유지하기로 한 건 유럽을 상대로 한 에너지 전쟁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첫 에너지 특사를 역임한 데이비드 골드윈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노드스트림1에서 가스 흐름을 일부 유지하는 한 그는 소득과 레버리지를 모두 누릴 수 있지만, 한번 공급을 끊으면 두 가지를 모두 잃고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경제학 교수는 "노드스트림의 가스 흐름을 낮게 유지하면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질 경우 유럽의 결의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유럽의 대러 에너지 의존을 유지하고 천연가스 공급 관련 불확실성을 쌓으면 가격을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데이터제공업체 ICIS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상반기 가스관을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는 사이 하루 약 1억 유로(약 1339억 원)의 가스 판매 수익을 올렸다.

무엇보다 프라사드 교수는 "유럽 경제의 미래를 어느정도 좌우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유럽은 '추운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겨울을 무사히 나려면 여름에도 가스 공급을 계속 받아 11월 초까지는 가스 저장 탱크를 용량의 80%까지 채워야 하는데, 현재 저장 수준이 65%인 상황에서 목표 달성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공급 부족이 이어져 가스 공급 경보를 최고 단계인 '비상'으로 상향하고 가스 배급제를 실시하면 우선 배분이 가정과 의료시설 등으로 이뤄져 산업계는 공장 중단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경제 초토화 시나리오다.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 위치한 화학기업 바스프(BASF) 본사 공장.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높은 가스 가격과 변동성 증가, 공급 불안으로 EU가 기존에 목표해온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화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해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 고리를 더 빨리 끊어낼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아울러 투자자문사 번스타인에 따르면 올해 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지는 사이 약 1500억 입방미터의 액화천연가스(LNG) 공급계약이 새로 체결됐다. 2024년부터는 LNG 공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 판매는 현재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수익원이다. 그런 러시아의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구매해온 고객은 유럽 국가들이다. 에너지 전쟁 심화가 장기적으로는 러시아에도 득이 될 게 없는 이유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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