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리스크에 빠진 한국경제.. 국가전략 '큰 그림' 절실

기자 2022. 7. 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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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의 Deep Read - 경제난국 대처법

美 금리인상에 동조하면 경기위축, 안 하면 자본유출·외환위기… 소비·투자·재정·수출 등 불리한 여건

‘생산성 개선+혁신동력 복원’으로 신산업에 길 터주고 경쟁력 높여야… 선순환경제 위한 구조개혁 시급

현재 우리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 대응해야 하는 한편, 성장동력을 회복시켜 잠재성장률을 되살리기 위한 구조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단기적 문제와 장기구조적 문제가 중층적으로 놓여 있고 각각의 해결책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그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중층적 문제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 충격과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비롯된 고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0년 말 0.9%에서 2021년 말 3.6%로 그리고 다시 지난 6월 6.0%로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근원 물가상승률도 같은 기간 1.1→2.7→4.4%로 상승했으며 이는 2010년대 들어 가장 높은 수치다.

이에 한국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해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금리 인상이 경기 위축을 초래할 위험이 있지만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고 더 나아가 환율 안정을 위해서라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과 공조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최근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이 9.1%를 기록한 상황에서 Fed는 7월 회의에서 75bp 이상의 금리 인상에 무게를 두고 있고 이 경우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양국 간 인플레이션 격차가 더 벌어지고 Fed가 계속 금리를 인상할 경우 한은은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과 동조해 국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린다면 가계부채 리스크를 키울 뿐 아니라 국내 경기를 뜻하지 않게 더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총량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었다. 가계부채가 대부분 부동산담보대출과 관련이 있어 부채 해소가 어렵고 따라서 이자상환 부담이 늘어나면 소비는 위축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 금리 인상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환율 급등과 자본 유출 위험이 있고 이는 다시 추가적인 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 리스크를 초래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글로벌 공급망 충격이 종결되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어서 당분간은 소비 둔화, 투자 위축, 부채 상환 리스크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총체적 난국

소비, 투자에 더해 정부지출의 기여도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정부의 확대재정 기조로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불과 4년 만에 2017년 36%에서 2021년까지 47%로 증가했다. 2019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통합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섰으며 코로나19 사태로 적자 폭은 더 커졌다. 향후 고령화의 진전으로 의무복지지출이 증가할 것을 감안해 적자재정을 개선하고 국가부채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복원해야 하므로 현재 재정지출 여력은 적은 상황이다.

최근 환율 상승이 수출에 다소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중국 경기 둔화가 현실화되고 있고 미·중 간 무역 갈등으로 비롯된 국제무역질서의 재편으로 수출에서 큰 개선은 불확실하다. 또한 환율 상승이 계속되면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 성과의 격차가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고임금 수출기업과 저임금 내수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 간 임금 격차 확대를 초래해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처럼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수출 등 GDP를 구성하는 모든 세부요소 면에서 매우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사용돼 온 단기 미시금융 및 재정 지원은 취약계층과 서민이 받는 충격을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선순환 경제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대응과 함께 국가경쟁력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을 시급히 진전시켜 선순환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생산성 개선과 혁신 동력을 복원해야만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이 궁극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공급측 비용 충격을 생산성 개선으로 완화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고 생산성 기반 성장으로 투자와 수출을 늘려 더 많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지면 재정 여력도 높아져 재정수지 개선에 기여할 것이다. 국민경제의 생산성으로 볼 수 있는 취업자 1인당 실질 GDP 증가율은 2000년대 연평균 2.7%에서 2010년대에 들어 1.6%로 둔화했다. 법인 전수자료에 기초한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에 의하면 부가가치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54%에서 2020년 60%로 증가했다. 노동절약적 생산기술이 도입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이는 임금 상승이 생산성 증가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결국 기업경쟁력 하락 징후로 보인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우선적인 과제는 신산업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최근 기술 변화로 산업 간·업종 간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 정부는 과거의 낡은 규제의 틀을 유지해 오고 있다. 신산업 출현을 유도하는 관점에서 규제와 간섭체계를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개혁에 유인 부합하는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정부업무평가의 최우선순위를 규제개혁에 두고 각 부처 성과를 민간과 기업들이 평가해 성과 보상에 반영하는 제도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부는 기존 방식의 지원을 확대하기보다는 혁신유도형 기업환경 정착에 노력해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비로소 더 많은 창의적인 개인과 기업이 시장에 출현하고 생산성 기반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국가전략의 그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추락하는 대학 경쟁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생산성 개선의 핵심은 인재의 역량에 있다. 아쉽게도 현재 우리 대학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에 비해 매우 낮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대학 교육에 대한 정부 투자와 대학 재정이 열악한 데 있다. 정부의 학생 1인당 고등교육지원은 2018년 OECD 평균의 66%에 불과하고 전체 38개국 중 26위로 하위권이다. 우리나라 대학 공교육비 투자지출은 GDP의 0.6%로, OECD 평균 0.9%에 크게 못 미친다. 우리 경제가 처해 있는 난국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민과의 진솔한 소통이 필요하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우선순위를 갖고 단기적인 충격에 어떻게 대처하며 장기적인 구조개혁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 국가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박정수 초빙 저널리스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전 한국응용경제학회장

■ 용어 설명

‘근원 물가상승률’은 주변 환경에 민감하지 않은 물품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인플레이션. 계절적 요인에 영향받는 농산물이나 일시적 충격으로 가격이 오르내리는 석유류 따위를 제외하고 측정함.

‘bp’는 ‘basis point’의 약자로 ‘1bp=1/100%포인트=0.01%포인트’임. 예컨대 미국 Fed가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해 금리를 ‘75bp’ 올렸다고 한다면 이는 금리를 ‘0.75%포인트’ 올렸다는 뜻임.

■ 세줄요약

중층적 문제들 : 우리 경제의 시급한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서 비롯된 고인플레이션 대응. 미국에 동조해 기준금리를 올리면 국내 경기가 위축되고, 동조를 안 하면 자본 유출과 외환위기 리스크를 부를 수도.

선순환 경제 : 당분간 소비 둔화, 투자 위축, 정부지출 제약, 수출 부진 등 리스크 심화 가능성.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려면 단기적 대응과 함께 국가경쟁력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으로 선순환 경제를 구축해야 함.

국가전략 필요 : 생산성 개선과 혁신동력 복원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을 해소하고, 규제개혁으로 신산업에 길을 열어주며, 대학 경쟁력을 회복해야 할 과제. 하지만 이런 국가전략의 구체적 그림이 보이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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