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전세대란'설 파도일까 침수일까
‘8월 전세대란’은 현실화될까. 올해 초부터 몇몇 경제지와 부동산 전문가들은 8월 수도권 부동산시장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8월은 이른바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지 딱 2년이 되는 때다.
임대차 3법은 임차인(세입자)의 안정적 거주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법의 골자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다. 2년 거주한 임차인은 2년 더 거주하도록 임대인(집주인)에게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다(계약갱신청구권제). 이 경우 임대료 상승폭은 5%를 넘지 못한다(전월세상한제). 즉, 임대차 3법은 2년마다 임대료를 크게 올려주거나 새 집을 구해야 하는 임차인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임차인 보호와 ‘대란’ 사이에는 서사가 있다. 임대차 3법은 현장에서 예기치 않은 역효과를 낳았다. ‘이중 가격’이다. 임대차 3법이 막 시행된 2020년 8월이라고 가정해보자. 2018년 8월에 3억원 전세계약을 맺고 살아온 임차인 A는, 임대차 3법의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같은 금액(3억원)으로 계약을 2년 더 연장한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층에 새로 이사 온 신규 임차인 B는 5억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임대인들은 향후 2년이 아니라 4년을 내다보고 가격을 정했다. 임대인들은 ‘2년 후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청구해도 문제없는 금액’을 5억원으로 여기고 신규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한 세입자 A가 새 집을 구해야 하는 시점이 오는 8월이다. 새 집을 구해야 하는 A는 주택 시세가 너무 올라 이사할 만한 곳이 없다. 2년 전 5억원에 전세를 구한 B도 임대인이 ‘실거주’ 핑계를 대면 새로 집을 알아봐야 한다. 임대차 3법은 집주인 본인과 가족이 실거주할 예정인 때에는 전세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다.
정리하자면, 8월은 임대차 3법으로 보호받던 세입자들이 급등한 시장가격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시점이다. 임대주택 공급이 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시세는 더 오르고, 그 결과 ‘전세 난민’을 낳는다는 게 8월 전세대란설의 얼개다.
그런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6월29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폭발적 (전세)대란 가능성은 적다”라고 말했다. 결정적 요인은 금리다. 금리가 오르자 전세 대출을 꺼리게 되어 수요가 줄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란설이 무색하게, 전세 매물은 유의미하게 늘어났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7월6일 서울 전세 매물은 2만9365건으로 지난해(1만9852건) 대비 50%가량 늘었다. 관악구(178.4%), 용산구(160.4%), 서대문구(159.2%) 매물 증가율이 특히 높았다. 강남구(4.3%), 서초구(26.6%), 송파구(29.2%)도 늘었다. 가격도 하락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지난 1월31일 이후 5개월 연속 하락 혹은 보합세다. 올해 누적(1월3일부터 6월27일) 기준 0.32% 하락이다.
이 추세가 8월이면 뒤집혀 대란이 시작되리라고 믿는 전문가는 드물다. 다만 ‘8월1일’이 되자마자 밀려오는 파도가 아니라 서서히 진행될 ‘침수’를 우려하며, 이것도 대란이라 불러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사실 정확한 예측은 어렵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특정 시점의 부동산 가격이 통계적으로 급등하는 것만 대란은 아니다”라고 했다. 서 회장은 ‘통계의 왜곡’을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전세가 하락 통계는 시장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다중 가격(이중 가격) 때문이다. 갱신계약 건은 임대차 3법으로 제약해뒀으니 가격이 ‘안정’되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규 계약은 엄청나게 오른다. 이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혼란 상황인 거고, 대란의 일종이다.” 서 회장은 최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상생임대인 제도’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리라고 본다. 임대인이 임대료를 이전 계약의 5% 이내로 인상하면 양도세 비과세 등 혜택을 주는 제도다. 서 회장은 이 혜택이 임대료 인상의 이득을 넘어설 수 없으며, 임대차 3법을 폐지해 시장의 가격 혼란이라도 없애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도시공학과)는 임대차 3법이 작은 증가 추세를 더 ‘증폭’시킨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전세가가 안 오를 때는 괜찮은데, 오르는 국면에서 전월세상한제로 묶여 있으면 흐름을 증폭하는 효과가 난다. 실제로 (임대차 3법 시행을 앞둔) 2020년 6~7월부터 상승률이 확연히 뛰어올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가 올라 전세가가 떨어진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고 했다. “전세 대출이 어려워지자 월세 전환이 늘었다. 지금은 월세화 문제를 걱정하지만 이제 월세 급등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갱신청구권 제도를 둘러싼 질문도 던졌다. “현실을 보면 이 제도를 지속하기 위해선 ‘2년 뒤 부담을 4년 뒤 한꺼번에 지는 게 바람직한지’ 물어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의 박동수 대표는 생각이 좀 다르다. 2019년 출범한 이 단체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 현행 임대차 3법의 핵심 조항을 지지해왔다. 윤석열 정부가 임대차 3법 폐지·축소를 공언하자 이 단체는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임대차 3법은 전세가 상승률을 잡는 데 공헌하고 있으며, 폐지할 게 아니라 임차인 보호를 위한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동수 대표는 임대차 3법 이후 생겨난 문제가, 이 법 자체의 폐해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임대차 3법과 병행할 공적 조치가 불충분했다”라고 주장한다. 공공 공급을 더 늘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택지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늘리고, 소득분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임대료를 받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정부가 없는 돈을 들여서 무조건 싸게 집을 달라는 게 아니다. 건설사와 토지주, 다주택자에게 돌아갈 인센티브를 국가가 챙긴 뒤 공급을 안정적으로 책임지라는 것이다. 개인은 무한한 수익만 추구한다. 민간에게 맡기면 ‘빨리 내보내고 한탕 해야겠다’는 생각만 한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다.”
6월29일 ‘8월 전세대란’ 가능성을 일축한 원희룡 장관은, 같은 날 “임대차 3법은 이대로 갈 수는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2개는 폐지하고 전혀 다른 방식의 주거권 보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전세대란설과 임대차 3법을 둘러싼 생각이 서로 다른 부동산 전문가들은 기이하게도 취재 말미 비슷한 한탄을 했다. “사실 정확한 예측은 어렵다. 매번 예기치 못한 편법과 부작용이 등장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하나가 새로 생겨왔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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