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평택항 배후부지 비밀계약서에 등장한 '현대家 정일선'
분양사업 본계약 직전 개인매매 비밀계약
계약서에 성함, 직인 찍힌 현대가 정일선
법인 대상 공공성 짙은 부지를 '개인' 매입
C구역에서는 SKC 박장석 전 고문도 등장
땅 투기 가담 재벌가들..막대한 시세차익
당사자 측 "오래 전 일, 절차에 따랐을 뿐"
전문가 "부지사용 전 개인 이전은 땅 투기"
시민단체 "감독 부실, 관료 유착 조사해야"
▶ 글 싣는 순서 |
①'나라 땅도 내 땅'…항만배후부지 손에 넣은 재벌가 ②'350억 쓰고 1억5천만원 돌려받아'…민간에 다 퍼준 항만 개발 ③'평택항 특혜'의 핵심 키워드…규제 뚫은 '부대사업' ④'과실? 묵인?' 알짜 배후부지 '개인소유권' 내준 평택시 ⑤주차장·공터…평택항 배후부지엔 항만이 없다? ⑥'투기세력 먹잇감' 된 평택항 배후부지…'비밀계약' 파문 ⑦평택항 배후부지 비밀계약서에 등장한 '현대家 정일선' (계속) |
항만 관련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평택·당진항 동부두 배후부지 분양사업'에서 재벌가 기업인이 사적으로 토지 매입을 위한 사전 '비밀계약'을 맺은 사실이 CBS 노컷뉴스 보도를 통해 드러나면서 사회적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또 항만 활성화를 위한 공공재 성격이 강한 항만 배후부지가 '땅 투기용'으로 전락하는 데 재벌가가 앞장선 것 아니냐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사전계약 서명란에 '정일선'…"오래전 일, 절차 준수"
이 같은 사실은 CBS 노컷뉴스가 단독 입수한 '평택·당진항 배후단지 부지분양권 매매를 위한 협약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밀협약은 동부두 운영사인 평택아이포트와 영진공사 간 매매계약에 9일 앞선 2006년 11월 20일 체결됐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분양사업의 본계약을 체결하기도 전에 땅을 '지분 쪼개기'로 개인들에게 넘기겠다는 사전밀약부터 한 셈이다.
당시 계약자 중 주목되는 인물은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다. 협약서에 따르면 영진공사가 낙찰 받은 A구역 부지의 매수인 중 한 명으로 정 사장의 신상정보와 직인이 찍혀 있다. 그는 범현대가(家) 3세로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현대머티리얼㈜ 대표이사를 지냈다. 분양대행을 맡아 이번 배후부지 사업을 주도한 HDC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의 조카다.
실제 정 사장은 해당 배후부지 조성공사가 완료된 직후 계약 지분만큼 땅을 사들였다. 부동산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정 사장은 배후부지 준공시점인 2010년 4월 이후 한 달여 만에 A구역 내 한 필지의 소유주로 올라 있다. 매입 면적은 축구장 3개와 맞먹는 1만 8299㎡로 A구역 전체 지분 중 가장 큰 비중(35.8%)을 차지한다. 최초 낙찰법인인 영진공사 지분 1만 6679㎡보다 많이 확보한 것도 이례적이다.
이 같은 정 사장의 토지 매입은 항만 배후부지 분양사업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 사업의 '매각입찰안내서'에는 입찰 자격이 '개별법인 또는 2개 이상 법인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으로 명시돼 있다. 특히 항만·물류로 국한된 부지용도에 적합한 업종의 기업이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그러나 지침과 달리 비밀계약에 따라 배후부지의 땅이 법인이 아닌 정 사장 등 개인들 손에 넘어감으로써, 공공성이 강항 항만 배후부지 관련 사업이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전계약서 제6조의 "매도인은 매수인의 신상 정보를 누설하여서는 안 된다"는 '비밀유지' 조항도 개인들의 토지거래 사실을 감추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분양가격으로 매도한다'는 계약 조건 덕분에 정 사장은 그 시기 공시지가보다 40% 저렴한 ㎡당 16만 원에 땅을 살 수 있었다. 이 조건에 따른 총 매입액은 29억 3천만 원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시지가만 적용하더라도 해당 필지 가격은 68억 9천만 원에 이른다.
지목과 용도가 동일한 사업구역 내 인접 부지(A구역의 만호리 662-2 필지)가 지난해 9월 ㎡당 78만 원에 만호폴리머㈜에 팔렸던 것을 감안하면, 정 사장이 소유한 필지의 현재 가격은 142억 7천여만 원으로 추산된다. 최초 매입금액 대비 110억 원 넘는(수익률 387%) 차익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또 이 부지에는 정 사장 명의로 2층짜리 창고건물이 들어서 있어, 자산가치는 더 높아진다.
이처럼 기업인이 공공성 짙은 항만 배후부지를 부동산 투기의 먹잇감으로 삼았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비앤지스틸 관계자는 "정 사장 본인 입장을 확인해 보니 10년도 넘은 일이라 상세하게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며 "다만 절차에 따라 매입했고, 현재도 목적에 맞게 물류센터를 운영 중이라고 얘기했다. 물류센터는 (우리 회사와 별개로) 사장 개인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타이어 관련 제3자 물류시설"이라고 말했다.
낙찰법인은 SKC…땅 소유권은 당시 사장 '개인' 명의
재벌가 기업이 분양 받은 평택·당진항 배후부지를 개인 명의로 매입한 사례는 또 있다.
인근 C구역은 최초 SKC㈜ 등 기업 3곳이 분양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SKC는 회사 명의로 낙찰 받은 배후부지를 박장석 전 SKC 상근고문(전 부회장) 개인에게 넘긴다. 박 전 고문은 최신원 전 SKC 회장의 매제이기도 하다. 박 전 고문은 배후부지 분양과 매수가 이뤄진 시기(2006~2010년)에는 SKC 사장이었다.
박 전 고문은 2010년 6월 7603.1㎡를 일대 공시지가(㎡당 26만 5천 원)보다 저렴한 기존 SKC의 낙찰 분양가격 그대로 ㎡당 16만 1486원에 매입했다. 토지 매입에 들인 총 금액은 12억 2천여만 원이다.
최근 인근 부지 시세인 ㎡당 78만 원을 기준으로 12년이 지난 현재 땅값은 59억 5천여만 원으로 추산된다. 최초 매입비 대비 수익률이 400%대에 달한다. 현재 공시지가인 ㎡당 38만 원을 적용해도 땅값이 28억 9천여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현재까지도 박 전 고문이 소유하고 있는 이 땅에는 화물운송 중개·창고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천막 형태 가건물이 조성돼 있다. 박 전 고문은 이 업체로부터 월세(지대)를 받고 있어 매입에 따른 수익률은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전 고문은 당초 자신이 대표로 있던 SKC 명의로 분양 받은 토지를 이후 개인 명의로 바꿔 매입했다는 점에서 투기 의혹을 사고 있다. 또 이는 법인만을 대상으로 한 분양사업 지침에도 명백히 어긋나는 일이다.
최초 분양권 낙찰 법인인 SKC 입장에서는 지가 상승 등으로 큰 수익 창출이 예상되는 회사 주요 자산을 대표 개인에게로 넘겼다는 측면에서,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는 의견도 항만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SKC 측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SKC 관계자는 "상황 파악을 위해 관련부서를 찾아 확인하려 했으나 문서 보존연한 경과로 명확한 답변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공공성 저버린 명백한 투기, 철저한 조사 필요"
전문가들은 공공성이 기본 전제돼야 할 항만 배후부지 개발에서 법인이 아닌, 항만·물류와는 연관성 없는 개인들이 토지거래를 한 것 자체를 투기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바다도 국토의 연장이어서 공유수면을 매립한 것이면 정부의 토지를 매입한 게 된다"며 "항만부지는 민간이 개발했더라도 공공성을 지니므로 '공유수면매립법'이 적용되는데, 사용하기 전에 제3자에게 이전한 것은 투기로 봐야 된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항만 배후부지 개발사업이 개인들의 투기수단으로 전락한 의혹에 대해 해수부 등 관계 기관들의 관리·감독 부실 탓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김기홍 민주노총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은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이 발생한 곳에서 부두 배후부지 조성 과정에 개인 이윤만 확대한 구조가 드러나 개탄스럽다"며 "해수부, 평택지방해양수산청, 평택시가 국가부두를 민간을 통해 개발하는 데만 신경 쓰고 관리를 소홀히 한 게 원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관료들이 유착된 건 아닌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도 "사업자가 당초 제안한 대로 사업이 추진되는지 당국이 감시를 했어야 됐다"며 "나눠 먹기로 시세차익을 보게 방치해서는 안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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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pc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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