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안전판 '피마 레포'..아직 안 꺼내든 이유는
"외화 유동성 안정적..필요시 유동성 공급 실행 여력"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강도 높은 미국의 긴축 행보에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로 전 세계 뭉칫돈이 빠르게 몰리고 있다. '강달러' 공포에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외환시장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다만 이미 구축해 놓은 또 다른 안전판인 '피마 레포 제도'(FIMA Repo Facility) 역시 아직까지 단 한번도 활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외환당국이 "과거 위기 때와 달리 외화 유동성 상황은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배경이다. 앞으로도 강달러 현상이 지속될 수 있는 만큼 한·미 양국은 "필요시 유동성 공급 장치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통화스와프 재개 논의의 물꼬를 터놓은 상황이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사시 국내 달러를 공급하기 위한 거래한도 600억달러(약 79조원)의 '피마 레포 제도'는 지난해 12월 도입된 이래 현재까지 한 번도 활용되지 않았다. 피마 레포 제도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른 나라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 국채를 환매 조건부로 매입하는 제도다.
한은이 갖고 있던 미 국채를 연준에 담보처럼 맡기는 대신 거래 한도 내에서 미국 기준금리 상단(현행 1.75%) 수준의 낮은 금리에 달러를 끌어다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 달러가 바닥나 외화유동성이 부족할 경우 우리나라가 쓸 수 있는 '긴급 카드'인 셈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피마 제도를 통해 달러를 시장에 '수혈'할 정도로 크게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의미다.
물론 미국의 고강도 긴축 행보에 안전 자산인 달러 몸값이 치솟으면서 달러·원 환율은 1300원대로 뛴 상태다. 일각에선 미국의 물가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1400원 선마저 돌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나 유로와 엔화가 약세를 나타내면서 강달러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지난 19일 블룸버그 종가 기준 106.68로 2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전년말(95.67)에 비하면 11.5% 올랐다.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국가비상금인 외환보유고도 빠르게 줄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달러(약 575조원)로 전월말 대비 94억3000만달러(약 12조원) 감소했다. 특히나 지난달 감소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11월 이후 13년7개월 만에 가장 컸다.
앞서 외환보유고는 2018년말 4036억9000만달러(약 530조원) → 2019년말 4088억2000만달러(약 536조원) → 2020년말 4431억달러(약 581조원) → 2021년말 4631억2000만달러(약 607조원)로 계속 증가 추이를 나타냈으나 올해 들어선 불과 6개월 만에 248억4000만달러 감소했다.
외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만료된 한·미 통화스와프를 재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는 배경이다.
현재 운용되는 피마 레포 제도와 한·미 통화스와프 모두 외환시장 안전판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운용 방식과 효과에 있어선 차이가 있다. 피마 레포 제도는 어디까지나 미 국채를 넘기는 방식이라 미국 국채 시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지만, 한·미 통화스와프는 원화를 달러와 직접 맞바꾸는 방식이라 채권 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준은 이러한 두 제도가 서로 '보완적'이라는 시각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가 '달러 가뭄' 속에서 피마 레포 제도를 통해 갖고 있던 미 국채를 완전히 소진하길 기다렸다가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재체결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재무장관 회의를 열고 외환시장 관련 협력 강화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양국 장관은 "대외 요인에 의해 최근 원·달러 환율 변동이 증가했으나, 외환 건전성 제도 등에 힘입어 한국 내 외화 유동성 상황은 과거 위기 때와 달리 여전히 양호하고 안정적"이라고 진단했다. 기재부는 두 장관이 "필요시 유동성 공급 장치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se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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