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이씨' 시조는 베트남 첫 왕조 마지막 왕자..769년만에 찾은 역사 [짜오! 베트남]

정재호 2022. 7. 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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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한-베트남 숨겨진 역사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14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인근에 위치한 박닌성의 덴도 사원 내 정자 앞으로 한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덴도 사원은 베트남 리 왕조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박닌=정재호 특파원
"리(Ly) 왕조의 8대 왕 혜종이 죽었다. 리씨 가문의 왕족과 종친들은 속히 입궐하라."

1226년 베트남 북부의 권력을 모두 장악한 쩐(Tran)씨 가문의 명령은 추상같았다. 일 년 전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왕권까지 쩐씨 가문에 넘긴 전대 리 왕족은 입궐 명령을 거부할 힘이 없었다. 그저 화를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 의복을 차려입고 궁을 향할 뿐이었다.

장례식이 열린다는 궁은 조용했다. 뭔가 수상한 낌새가 가득했지만, 서슬 퍼런 쩐씨 가문 사병들의 눈초리 속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학살. 중국의 지배를 거부하고 1009년 처음으로 베트남 땅에 통일왕조를 세웠던 리 왕족은 그렇게 무참히 도륙됐다.

비슷한 시간, 지금의 하이퐁시가 위치한 베트남 북부의 한 선착장에는 6대 왕 영종의 일곱 번째 아들 리롱뜨엉 왕자가 외롭게 서 있었다. "어서 도망가라. 궁으로 와선 안 된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그에게 날아온 출처를 알 수 없는 편지 한 통이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했다.

거친 바다에 식솔들과 몸을 실은 리롱뜨엉 왕자의 여정은 험난했다. 일단 살기 위해 떠났을 뿐, 목적지도 없었던 여정은 풍랑에 수도 없이 방향을 잃었다.

남송과 금나라까지 떠돌던 이들은 만신창이의 몸으로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화산포에 닿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리롱뜨엉 왕자는 이용상(李龍祥)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베트남 첫 왕조의 마지막 후손이 시조인, 한국의 화산 이씨가 태동한 순간이다.


769년 만의 귀환… 베트남, ‘화산 이씨’ 왕족 대우

1995년 베트남을 처음 방문한 화산 이씨 26대손 이창근 현 베트남 관광대사(오른쪽)가 베트남 공산당 간부들과 덴도 사원에서 찍은 기념 사진. 이 사진은 덴도 역사박물관 안에 전시돼 있다. 박닌=정재호 특파원

우리에게 생소하기만 한 베트남 왕조의 권력 쟁탈전은 수백 년 동안 양국에서 잊혔다. 약소국이던 한국과 베트남은 각기 다른 식민 시대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어야만 했고, 전쟁 이후엔 상반된 정치체제로 대립하며 살았다. 양국 모두 리롱뜨엉 왕자든 화산 이씨든 숨은 역사의 의미를 기릴 여력이 없던 시절이었다.

변화의 바람은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불었다. 1995년 베트남 정부가 먼저 화산 이씨의 존재를 확인, 종친회 주요 인사를 현지에 초대했다. 당시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는 공항까지 마중을 나가는 등 화산 이씨를 극진히 대접했다. 리롱뜨엉 왕자가 고국을 등진 지 무려 769년, 화산 이씨는 그렇게 자신들의 핏줄이 시작된 땅에 다시 돌아왔다.

베트남 정부의 '화산 이씨 챙기기'는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베트남은 화산 이씨를 리 왕족의 후손으로 공식 인정했으며, 이들이 베트남으로 귀화를 원할 경우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도록 지시했다. 또 매년 음력 3월 15일 하노이 인근 박닌성(省) 덴도 사원에서 개최되는 '리 태조 탄신일' 축제에도 화산 이씨 문중을 정식 초대, 왕족 후손으로 예우하고 있다.

4월 화산 이씨 종친회 관계자들이 베트남 박닌성 덴도 사원에서 열린 '리 태조 탄신일' 축제에 참석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화산 이씨 종친회 제공

'리 왕조'로 연결된 양국 우호는 이창근 현 베트남 관광 대사를 통해 유지·발전되는 모습이다. 화산 이씨 26대손인 이 대사는 2010년 베트남 국적을 부여받은 뒤 2014년부턴 베트남 조국전선 중앙위원으로도 임명된 상태다.

베트남 공산당의 최대 전위조직인 조국전선은 청년·농민·여성 등 현지 사회단체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구다. 베트남 정권이 화산 이씨를 단순한 양국의 '얼굴 마담'이 아닌, 실제로 중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훈 화산 이씨 종친회장은 20일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1992년 양국 수교 이후, 베트남 당 서열 5위 이상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꼭 화산 이씨 종친들을 공식 접견한다"며 "만났던 베트남 지도자들은 모두 '과거 (베트남전과 같은) 한국과의 악연보다 화산 이씨 등 오랜 인연에 더 집중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자'고 힘줘 말했다"고 밝혔다.


화산 이씨, ‘베트남인 귀환 프로젝트’ 공조 작업도

베트남 북부 박닌성 중심가에 위치한 리 왕조 태조를 기리는 거대 동상의 모습. 박닌=정재호 특파원

베트남의 각별한 ‘리 왕조와 화산 이씨 사랑’은 수도 하노이에 대한 현지인들의 자긍심에서 시작한다. 리 왕조를 세운 태조 리꽁우언은 1010년 수도를 호아르성(현 닌빈성)에서 다이라성(현 홍강 델타 지역)으로 천도한 뒤, 그곳을 '탕롱(용이 승천한 곳)'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탕롱은 지금의 하노이로 이름이 바뀌며 1012년째 베트남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리 왕조 역대 왕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덴도 사원의 역사해설가 르엉(48)씨는 "리 왕조는 216년 동안 집권하며 현지에 유교를 처음으로 정착시켰으며 베트남의 중심을 지금의 수도 하노이로 개편했다"며 "베트남인들은 (프랑스 독립전쟁 등) 승리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하노이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리 왕조와 화산 이씨에 대한 애정 또한 깊다"고 설명했다.

14일 베트남 박닌성에 위치한 덴도 사원에서 역사해설가 르엉씨가 화산 이씨 시조 이용상 왕자의 부친인 리 왕조 6대 왕 '영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닌=정재호 특파원

물론 베트남 정부의 ‘화산 이씨 우대책’ 이면에는 정치적 요소도 분명 존재한다. 주지하듯 베트남은 원칙적으로 종교나 조상숭배 등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국가다. 하지만 베트남은 타 사회주의국과 달리 천주교 등 대부분의 종교 활동을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나아가 베트남 공산당은 조상을 챙기는 풍습을 장려하기까지 한다. 인민들의 단합과 체제 이탈 방지에 '혈연주의'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한 이유에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영화보다 더 극적인 '화산 이씨의 본국 귀환'은 베트남의 귀한 '홍보전' 재료다. 전쟁 등으로 고국을 등진 약 500만 명의 해외 거주 베트남인들이 하루빨리 본국으로 돌아오길 희망하는 베트남 정부 입장에선 놓치기 아까운 소재라는 얘기다.

이 회장은 이와 관련 "우리 이야기는 해외 거주민들이 베트남으로 돌아올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실제 사건"이라며 "현재 종친회는 베트남 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협의하며 '베트남인 본국 귀환 프로젝트'를 함께 구상·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교 30주년… "화산 이씨 역사 적극 활용 필요"

지난해 11월 응우옌쑤언푹(오른쪽 세 번째) 베트남 국가주석이 화산 이씨 26대손인 이창근(왼쪽 세 번째) 베트남 관광대사 등 화산 이씨 종친회 관계자들과 면담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화산 이씨 종친회 제공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 30주년을 맞은 올해, 화산 이씨의 행보는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이미 지난해 11월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이 종친회 대표들과 면담을 가진 데 이어, 리 왕조 사원이 위치한 박닌성의 지도부도 지난 4월 이들을 초청해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반면 한국 정부의 노력은 베트남 측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열린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 축하영상을 통해 화산 이씨의 역사를 짧게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언급은 최근까지 전무한 실정이다.

화산 이씨의 후손으로 베트남에서 활동 중인 이시영 부강테크 베트남 법인장은 "리 왕조와 화산 이씨라는 과거의 흔치 않은 접점은 한국과 베트남 우호 발전에 귀중한 연결 고리로 계속 기능할 것"이라며 "한국의 생산기지인 베트남과의 관계를 끊을 게 아니라면, 한국 정부 또한 우호적인 역사를 현실 외교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을 마실 땐 항상 그 기원을 생각하라.' 한국만큼 조상을 극진히 모시는 베트남인들은 이 말을 즐겨 쓴다. 명맥이 끊긴 리 왕족의 새로운 시작이 있는 한국, 화산 이씨의 출발점이 남아 있는 베트남. 멀리 있는 듯하지만 양국은 이렇게 생각보다 더 가깝다.

1997년 화산 이씨 종친회가 베트남 리 왕조의 위패가 모셔진 박닌성 소재 덴도 사원을 방문한 날 찍힌 구름 사진. 사원 관계자는 "8개로 나뉘어진 구름은 사원에 모셔진 8명의 왕이 화산 이씨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사진은 덴도 사원 내부에 전시돼 있다. 박닌=정재호 특파원

하노이ㆍ박닌=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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