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티라노 아닌데요”

[사이언스샷]
커다란 머리에 짧은 앞다리…
티라노사우루스와 똑 닮았지만
2000만년 먼저 살았던 ‘메락세스’
시대 달라도 진화 방향 같음 인증

9500만년 전 살았던 육식 공룡 메락세스 기가스의 복원 상상도. 2000만년 뒤에 출현한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엄청나게 큰 머리에 튼튼한 두 발을 가졌지만 앞발, 또는 팔은 볼품없이 작았던 것으로 밝혀졌다./Carlos Papolioz

티라노사우루스보다 2000만년 먼저 똑같은 모습을 가졌던 공룡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육식 공룡들이 각각 다른 시대에 같은 방향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됐다.

아르헨티나 에르네스토 바흐만 고생물박물관의 후앙 이그나치오 카날레 박사 연구진은 지난 8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2012년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사막에서 발굴한 대형 육식 공룡이 2000만년 뒤에 나타난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커다란 몸집에 아주 작은 앞다리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공룡을 소설 ‘왕좌의 게임’에서 라에니스 타르가르옌이 타던 용의 이름을 따서 ‘메락세스 기가스(Meraxes gigas)’로 명명했다. 메락세스는 길이 11m에 무게는 4톤이나 되는 거대한 육식 공룡으로 추정됐다.

연대 측정 결과 메락세스는 9500만년 전 후기 백악기에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 공룡을 기가노토사우루스가 포함된 거대 육식 공룡 집단인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과(科)로 분류했다. 지난 30년간 이 과의 공룡 화석이 많이 발굴됐지만 메락세스처럼 두개골과 골반, 앞다리 등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굴된 적은 없었다.

연구진은 메락세스가 약 2000만년 뒤에 나타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큰 머리에 날카로운 이빨로 먹이를 공격하고, 튼튼한 두 발로 걸었다고 추정했다. 앞다리 또는 팔도 티라노사우루스와 마찬가지로 볼품없이 작았다. 다만 메락세스는 사망 당시 나이가 45세로 티라노사우루스 평균수명의 두 배인 점이 달랐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제임스 나폴리 박사는 이번 연구에 대해 “오랫동안 이 화석은 큰 머리와 긴 다리, 작은 팔을 가진 전형적인 티라노사우루스로 생각했다”며 “하지만 결국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라는 다른 종류의 공룡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져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방식의 진화가 거듭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9500만년 전 살았던 육식공룡 메락세스 기가스의 뼈 화석들. 2000만년 뒤에 나타난 티라노사우루스와 흡사한 형태로 밝혀졌다./Current Biology

연구진은 메락세스나 티라노사우루스처럼 거대한 공룡이 엄청나게 큰 머리를 가지고 두 다리로 걸으려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작은 팔을 갖게 됐다고 추정했다. 아니면 강력한 머리로 먹이를 공격할 수 있어 팔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크기가 줄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공룡은 팔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근육과 관절이 일정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한 수준이었다. 먹이를 공격하는 정도는 아니라도 뭔가 기능이 있었다는 말이다. 카날레 박사는 “메락세스는 작은 팔로 몸을 바로 세우거나 짝짓기할 때 상대를 붙잡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