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 올려놓자마자 동난다, 엔화 급락이 부른 日백화점 풍경
온라인 통해 ‘구매 광풍’ 일어
외국인 관광객 명품 구입 늘기도
유로화도 1년새 15%나 떨어져
美 가족 단위 유럽 여행 줄이어
지난 20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 미쓰코시 백화점 4층 롤렉스 매장. 직원 4~5명이 근무하는 이 매장에는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왔지만 내부를 한번 둘러보고는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발길을 돌렸다. 시계들이 전시돼 있어야 할 진열대가 80~90% 텅 빈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약 300m 떨어진 긴자 식스에 있는 롤렉스 매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 직원은 “요즘엔 진열대에 시계를 올려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며 “특히 신제품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한국인 직장인 이모(40)씨는 최근 도쿄 추오구에 있는 신축 맨션(한국의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하기 위해 현지 부동산 업체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이 지역에서 73㎡(22.1평) 크기 새 맨션의 분양가는 6810만엔(약 6억4600만원) 안팎이다. 이씨는 “이 정도 맨션이면 1년에 임대 수익으로 300만엔(약 2850만원)을 얻을 수 있다”며 “나중에 엔화 가치가 오르면 우리 돈으로 환산되는 맨션 가격도 크게 오르게 돼 투자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한국 등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경쟁적으로 인상하는 가운데, 주요 경제권 중 세계 흐름과 전혀 다르게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는 일본·유럽으로 전 세계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엔화와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자 이들 국가로 외국인들의 여행과 명품 구매, 부동산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서 직구, 한국보다 가격 싸
전 세계에서 자국 화폐가치가 가장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일본의 경우, ‘구매 광풍’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백화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도쿄에 있는 백화점 매출은 1116억엔(약 1조6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80% 증가한 수치로 9개월 연속 증가세다. 협회 측은 “럭셔리 브랜드와 시계, 보석 등 고액 상품 매출이 크게 늘어 코로나 확산 이전의 실적을 훨씬 웃돌았다”고 밝혔다. 이런 구매 행렬에는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 방역으로 해외 입·출국이 어려워진 데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해외여행 경비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화폐가치가 떨어질 때는 현물로 보유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일본 지지통신은 “49세 이하 젊은층을 중심으로 고가 명품 등을 구입하는 경향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경우 일본에서 명품을 구입하면 상대적으로 싸게 상품을 살 수 있다.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샤넬 클래식 미디엄 사이즈 가방은 한국에서 1180만원이지만 일본에서는 112만2000엔으로 현재 환율로 약 1060만원이다. 120만원 정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셈이다.
◇도쿄 아파트 사두면 투자 수익도 기대
부동산 시장도 뜨겁다. 한국의 24평(약 80㎡)에 해당하는 1억엔 상당의 맨션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2년 전에는 11억1600만원이 필요했지만 올해는 9억4600만원이면 충분하다. 일본 수도권 신축 맨션 한 채의 평균 가격은 엔화로는 2019년 5980만엔에서 지난 5월 6088만엔으로 올랐지만, 달러로 계산했을 때는 2019년 54만6000달러에서 지난 5월 47만6000달러로 오히려 떨어졌다.
일본 도쿄의 한 부동산 중개 업체는 “최근 엔화 약세가 지속하면서 한국과 미국 등 투자자들로부터 1억~3억엔 상당의 맨션 문의가 한 달에 10건에 달한다”며 “회사에는 일본에 업무를 보러 간다고 하고 부동산 매물을 보러 오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 확산으로 무비자 방문을 막고 있기 때문에 업무 목적을 핑계 대고 온다는 것이다.
◇유럽에는 미국인 여행객들 줄이어
미국에선 유럽 특수가 일고 있다. 1년 새 유로화 가치가 15%나 떨어져 달러와 유로 가치가 1대1로 같아지는 패리티(parity·등가) 현상이 나타나면서 미국인의 ‘로망’인 유럽 소비 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뉴욕 시민 패트릭(57)씨는 “이달 초 로마 출장길에 가족을 데리고 파리와 브뤼셀까지 묶어 2주간 유럽 여행을 했다”며 “작년 유럽에서의 호텔과 식당, 택시 비용 등을 달러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번에 대폭 할인받는 느낌이어서 아주 만족했다”고 말했다. 미 중부와 서부에서도 자녀의 졸업과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 단위 유럽 일주에 오르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 미국 여행객들이 유럽에서 쓴 돈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동기 대비 56%나 늘었다. 프랑스산 핸드백과 보석, 이탈리아 의류,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은 주로 미국과 중동 관광객들 소비에 힘입어 올 들어 40~50% 매출 증가를 기록 중이다. 유럽의 평균 호텔 숙박비는 지난 9일 현재 154.41유로로 작년보다 44%나 올랐는데도, 미 관광객들의 예약이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로화 약세로 세계 각국 개인 투자자들이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외환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 주식 거래 플랫폼 이토로(eToro) 측은 “이달 첫째·둘째 주에 걸친 거래량이 전월 대비 72% 증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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