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용산·밀양 피해자들 "국가에 버림받은 것, 지금도 너무 닮았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강연주 기자 2022. 7. 2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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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주변에 빼곡한 경찰들 보며
내가 이 나라 국민이 맞나 자괴감
아직도 정신적 트라우마 시달려"

“내가 이 나라 국민이 맞나 싶은 자괴감. 공장 주변을 빼곡히 감싼 경찰 병력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죠. 정말 무서웠어요. 잊으려고 정신과 진료도 받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그조차 어려운 거죠.”

김득중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사진)이 20일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여름 쌍용차 파업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던 당시를 돌아보았다.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조 파업 현장에 공권력 투입 방침을 시사한 것이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무더운 여름 하늘에서 최루액 섞인 물 20ℓ가 쏟아지던 일, 이 물에 살갗이 데어 몸 곳곳에서 물집이 터진 일, 현장에 투입된 경찰 특공대가 각종 대테러 장비를 동원해 노조원들을 진압하던 일. 그에게는 1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악몽 같은 순간이다.

쌍용차 파업 진압, 같은 해 발생한 용산참사,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있었던 경남 밀양 송전탑 사건은 정부가 공권력을 오·남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당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을 겪은 이들은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조를 압박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 잊고 지낸 생채기가 다시 욱신거린다고 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20일 경남 거제 대우해양조선소에 경찰 버스가 줄지어 서 있다. 문재원 기자

“한동안 ‘용산참사’라는 단어를 못 들었는데, 대우조선해양 파업이 ‘제2의 용산참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심장이 막 두근거리더라고요.” 용산참사 생존 철거민 김창수씨는 “책장이 (과거로) 확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에게 용산참사라는 단어는 “가슴에 콱 박힌, 뜨거운 기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용산참사 생존 철거민 이충연씨도 “(용산참사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엄정한 법 집행을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과 당시 상황이 너무도 닮았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망루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숨졌다. 이씨는 “공권력에 의해 내 가족이 희생된 기억은 죽을 때까지 지워질 수 없는 아픔”이라고 했다. 2019년에는 한 생존 철거민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씨는 “우울감이나 트라우마는 저 또한 아직까지 지우지 못하고 있고, 지금도 경찰을 마주치면 두려움과 심리적 압박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공권력 오·남용으로 인한 정신적 상흔은 오래 남는다. 김득중 지부장은 “최근 13년 전 쌍용차 파업 현장을 겪은 노조원 일부를 대상으로 정신과 치료를 다시 진행했는데, 현재까지 13명의 노조원이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다는 병원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밀양 송전선로 건설 반대 농성장 진압 현장을 목격한 남어진 밀양송전탑대책위원회 집행위원은 “경찰 투입이 끝나고 난 뒤 몇 년에 걸쳐 주민들과 같이 정신과 진료를 받았지만 정부가 행정대집행을 벌인 2014년 6월11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시민단체 ‘손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달 30일 토론회에서 박주영 제주도공공보건의료지원단 책임연구원은 파업 후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을 당한 노동자들 12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다수 노동자는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회사 깡패들, 경찰들과 싸우는 현장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다”(유성기업 노동자), “저렇게 해도 사람이 안 죽나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력이 조합원들에게 가해지고 있었다”(쌍용차 노동자) 같은 증언이 쏟아졌다.

남어진 집행위원은 “밀양 송전탑 사건뿐 아니라 용산참사, 고 백남기 농민 사건을 통틀어 공권력 오·남용을 인정하고 사과한 마당에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경찰이) 다시 공권력 대응 기조를 보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쌍용차 사건을 비롯해 밀양, 용산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을 공권력 오·남용 사례로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는 “공권력은 일단 투입되고 난 뒤의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박 이사는 쌍용차 사례를 들어 “국가에 의해 버림받았다, 진압의 대상이 됐다, 낙인이 찍혔다는 인식이 13년이 지나도록 노동자들에게 우울증세로 나타나고 있다”며 “공권력 투입이 어떤 후유증을 남겼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유경선·강연주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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