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기다릴만큼 기다렸다" 발언에 "협박하나" 반발 확산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 "노동자가 기다리고 인내했다"
공권력 투입엔 답 안해, 권성동도 엄정 대응 "공권력, 정부 사정당국이 판단해야"
코인투자 파산자 부채 탕감에 이중잣대 지적도
민주 정의 현장에 의원단 파견, 강력대응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에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발언해 '갈등을 조정해야 할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 보다는 공권력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이냐'는 반발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공권력 투입시 제2의 용산참사와 같은 불상사가 생길 것으로 보고 당내 TF단(단장 우원식 의원)을 구성해 현장에 급파했다. 정의당은 현장에 천막 당사를 설치해 파업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로 했고, 진보당도 공권력 투입을 끝까지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1층 로비에서 진행된 출근길 질의응답(도어스테핑)에서 '대우조선 파업에 공권력 투입까지 생각하느냐, 시기를 언제로 보느냐'는 질의에 “산업현장에 있어서 노사관계 있어서 노든 사든,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나 정부나 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사실상의 공권력 투입을 지시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등이 이날 현장에 내려가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우려가 쏟아지자 20일엔 '어제 말씀이 경찰력을 포함한 공권력 투입도 고심하는 거냐'고 묻자 “거기에 대해서는 답변 안할게요”라고 답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20일 국회 본회의 더불어민주당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뒤 기자들과 백브리핑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미디어오늘 기자 질의에 “불법이 있으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라고 요구를 했다”면서도 “공권력을 투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모든 사항을 보고, 정부가, 사정 당국이 평가할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하청 업체 노동자들이 수년 간 하락했던 임금 30%를 인상해 원상회복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부당하다고 보느냐'고 묻자 “교섭 사항에 대해 제가 내용을 잘 모르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며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공권력 투입 임박했나? 가능성 얼마나 되나
실제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두고 일각에서는 임박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정부의 대우조선 사태 공권력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조선하청지회 집행부에 이미 4차례 출석 요구서를 발부했던 경찰이 파업 현장 안전진단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경찰청은 부산경찰청 4개 중대, 경남경찰청 전담 수사 인력을 현장에 배치했다는 점을 들어 이 위원장은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협박이 경찰력 투입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에서도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 TF단장은 20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에서 '조만간 공권력 투입이 예상되느냐'는 질의에 “워낙 공권력을 투입할 것 같은 험악한 얘기를 많이 했다”고 밝혔고, TF단의 양경숙 의원도 “대통령도 그런 것을 암시했다. 너무나 큰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양이원영 의원도 “행안부 장관이 다녀간 것이 하나의 사전 조치로 보인다. '우리는 할 것 했다'는”이라고 분석했다. 김영배 의원은 “공권력 투입이나 그와 유사한 꼼수를 통해 사실상 공권력이 집행되고, 충돌이 일어나서, 정부 초기의 지지율 하락이나, 국정 운영의 국면 전환을 모색하는 희생양이 될까 걱정된다”고 내다봤다.
우원식 단장은 “파업 현장의 안의 공간이 넓지 않기 때문에 강제 진압을 위해 최루탄을 쏘거나 공권력을 투입할 경우 그 사람들이 피할 곳이 없다. 정말 아주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공권력 투입하는 것은 최악”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지금 내려가려는 것”이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발언 “협박하듯 이 문제 바라보는 게 큰 문제”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불법이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윤 대통령의 전날 발언에 민주당 TF단 의원들은 강하게 비판했다. 이 발언에 대한 견해를 묻자 우원식 단장은 “그건 대통령이 현장을 제대로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애초 노동지청이 제안한 5자 간담회에서 노동지청이 빠진 뒤 4자 간담회가 시작된 지 5일밖에 안됐다”고 지적했다. 우 단장은 “누가 대화를 거부하는지 현장에 가보면 그냥 알 수 있는데 대통령이 현장도 모르면서 그런 얘기하는 것은 정말 잘못됐다”고 평가했다.
양경숙 의원도 “노사 간에 임금 문제로 갈등 빚고 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더 이상 '기다릴만큼 기다렸다'고 협박하듯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며 “정말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노동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양 의원은 “노동자들이 많이 인내하고 양보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그렇게 협박하듯이 하는 것은 정말로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법에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말처럼 노조에서 불법을 저지른 게 있다고 보느냐는 질의에 우원식 단장은 “파업 자체는 합법적으로 진행돼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도 “생산 현장을 점거하고 있는 것이 소송에서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위원 후보에 출마한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정부가 노사간 갈등을 중재하고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노력에 전력에도 모자란데, 대통령이 기업 편에 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공권력 투입 운운해가며 협박을 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노동자가 이 폭염 속에 스스로를 가로세로 1미터 철 구조물에 가두면서까지 '벼랑끝 투쟁'을 벌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으라”고 촉구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정부의 불법 엄단 대응 방침을 두고 “법과 원칙이 누구한테는 강력하고 누구한테는 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금융위원회가 자영업자 소상공인 대출 탕감 대상에 '코인 투자하다 빚진' 44세 이하 청년들의 채무 유예 상환이 포함된 것을 두고 김주연 금융위원장이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점을 들었다. 김 대표는 “왜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거냐”, “필요할 때는 법과 원칙을 찾고 따뜻한 마음을 찾는 이중성이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정부는 갈등 조정자로써, 다양한 갈등들을 해결하는 게 목표지,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김광일 CBS 기자도 “윤석열 대통령이 강한 어조로 엄하게 노조하게 강경한 입장을 얘기하고 있는데, 누군가 부드러운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지금 여권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야당은 민주당을 포함해 현장에 의원단을 파견하는 등 공권력 투입 대신 대화와 타협에 나서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은주 정의당 비대위원장은 “7년 동안 후려친 임금을 회복해 달라는 하청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하는 대우 조선과 공권력 투입을 부채질하는 윤석열 정부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며 “이번 주 안에 교섭이 타결에 이르지 않을 경우 비대위 지도부 전원 의원단은 거제 조선소에 천막 당사를 차려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후보도 이날 오후 거제 대우조선 정문 앞에서 개최된 '노동중심 산업전환, 대우조선 하청 투쟁 승리'를 위한 금속노조 총파업 대회에서 “정부가 섣부르게 공권력 투입을 강행한다면, 진보당은 전 당력을 모아 총력 투쟁으로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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