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체불임금 사라져 센터 문 닫는 게 꿈이죠"

오윤주 2022. 7. 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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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안건수 청주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
안건수 청주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이 상담 일지를 살펴보고 있다. 오윤주 기자

2022년 5월19일. 방글라데시에서 온 ㅍ, ㄱ씨 문제가 풀렸다. 둘은 청주시 북이면 한 공장에서 일했지만 2018년 11월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ㅍ씨는 2958만255원, ㄱ씨는 4276만6748원이다. 민사소송으로 1000만원씩 받았지만 이후 지급이 중단돼 결국 공장 기계를 강제 경매 신청했다. 3년을 끌더니 경매 당일 연락이 와 밤 9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협상을 했다. 두 명이 5540만원 받기로 하고 대리인 서명을 했다. 둘은 출국을 기다린다. 부디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안건수(60)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의 손때 묻은 상담일지다. 체불임금·산업재해 등 상담 대상의 주소·전화번호·내용·처리 결과 등을 정갈한 손글씨로 빼곡하게 담았다.

안 소장은 ‘이주민의 벗’으로 불린다. 그와 이주민노동인권센터가 이주민 노동자, 결혼 이민자 등 이주민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힘쓰고, 틈틈이 이주민 실태 조사, 이주민 생활 상담, 이주민과 함께 하는 문화 나눔 행사를 펼치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이주민 체불임금, 부당해고 등 이주민 노동 문제 해결사로 통한다.

“이주민 노동자·결혼이민자 등 이주민들의 안정적 한국사회 정착을 위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하는데 요즘 이주민 노동자 관련 산업재해와 임금 문제가 워낙 많다. 경기가 안 좋은 탓인지 하루가 멀다고 상담 의뢰가 온다. 요사이 노동청을 오가는 게 부쩍 늘었다.”

지난 7일 청주시 율량동 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책상에 그의 키 높이 만큼 상담 일지가 쌓여있다. 사무실 안 책장뿐 아니라 교육장 책장 안에도 연도별·사례별 상담 일지가 빼곡하다. “저와 센터의 흔적이다. 어쩌면 이주민들의 생생한 말로 기록된 우리 지역 이주민들의 아픈 정착사일 것이다. 눈물 섞인 사연이 대부분이다.”

‘이주민노동자의 벗’ 19년 헌신 체불임금 해결만 100억 안팎 다른 지역 이주민도 상담 찾아 “경기 나빠 체불 상담 크게 늘어 이주민 지원 법적토대 마련을”

충북 최고 시민단체활동가 상도

그는 이주민 노동자들에겐 둘도 없는 지원군이지만, 체불임금 업체 쪽에겐 저승사자다. 그가 상담 기록을 펼쳤다. 올핸 지난달 말까지 외국인 노동자 체불임금과 관련해 65건을 상담했고, 체불임금·수당 등 6억4217만2497원을 노동자의 품에 안겼다. 필리핀 34건, 스리랑카 9건, 파키스탄·러시아 각 4건 등 12개국 노동자와 상담했다. 2019년 13개국 114명 5억5525만3359원, 2020년 11개국 80명 6억5769만4799원, 2021년 8개국 32명 2억523만8452만원. 그의 상담 일지에 남은 최근 4년 동안 이주 노동자 체불임금 수령 현황이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상담했으니, 지금까지 이주 노동자 관련 체불임금만 줄잡아 100억원 안팎 정도 해결하지 않았을까 한다. 지금 국내 체류 외국인이 250만명 정도인데 40만~50만명 정도는 불법 체류로 분류된다.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산업체 등에서 지속해서 체불임금·부당 노동행위가 일어나 안타깝다.”

안 소장은 2003년 4월 충북외국인이주노동자센터 사무국장을 맡은 이후 19년째 이주민 노동자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말을 걸어 보면 이주민 노동자 대부분 착하고, 순박한 우리 이웃이다. 합·불법을 떠나 국내에 머물면서 열심히 일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 해 저라도 이들 곁에 서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20년 가까이 됐다. 체불임금·부당 노동행위가 사라져 센터 문 닫는 게 꿈이다.”

안건수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이 상담 일지를 살펴보고 있다. 오윤주 기자

안 소장 이야기를 듣고 다른 시·도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상담을 오곤 한다. 청주지역 인권 변호사, 노무사 등이 법률 자문으로 그를 돕고,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 러시아 이주민 등은 통·번역 도우미로 그를 지원한다. “저 혼자 이들을 상담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주변이 십시일반 지원한다. 상담을 통해 체불임금을 받은 이들이 주변 다른 동료의 문제를 드러내 상담을 권유하거나, 통·번역 등에 나서기도 한다. 조금씩 지원군이 늘어 든든하다.”

그는 지난해 10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 인권 평등 평화상을 받았다. 2008년 충북에서 가장 빼어난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주는 ‘동범상’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상을 준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주민노동인권센터는 시민단체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곳이다. 안 소장이 있어 우리가 이주민에게 덜 부끄러울 수 있었다”고 했다. 이주민노동인권센터는 지난해 청주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 성금 모금을 통해 896만원을 미얀마 양곤주 시민단체에 보내기도 했다.

그는 요즘 이주민 노동자, 결혼 이민자와 그 자녀 등을 지원하는 법적 토대와 기구 마련 운동도 열심이다. 정부와 자치단체 등에 관련 법, 조례 제정과 함께 지원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주민은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행정 영역 안에서 이들을 지원·보호해야 한다. 이주민과 그 아이가 정당한 인권을 지니고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이주민노동인권센터의 이주민 문제 해결을 위한 통역과 상담을 지원하는 경기·충남 등 몇몇 자치단체의 앞선 이주민 지원 정책을 전국으로 확산해야 한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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