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 붕괴' 위기 이탈리아 드라기 총리 "신뢰 협정 재구축해야"..조건부 총리직 유지 뜻 밝혀

박용하 기자 2022. 7. 2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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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운데)가 20일(현지시간) 로마 상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내홍으로 내각 붕괴 위기에 직면한 이탈리아의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상원 연설에서 연정에 참여한 정당들 간의 대타협을 촉구했다. 이탈리아 내각의 운명은 상·하원의 총리 신임 투표로 결정될 전망이다.

드라기 총리는 이날 오전 9시30분(현지시간) 시작된 연설에서 “지난 수요일(14일) 나는 사임했으며, 그 결정은 내각이 출범한 이래 유지해 온 국가적 단결의 대부분을 상실한 데 따른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립 정부 정당들을 향해 “우리가 여전히 함께 있고 싶다면 용기와 이타주의를 가지고 ‘신뢰 협정’을 재구축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주요 정당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된다면 총리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연설은 드라기 내각의 붕괴 여부를 가리는 상원의 신임 투표를 앞두고 이뤄졌다. 상원에선 총리의 연설 이후 관련 토론이 이어지게 되며, 신임 투표는 이르면 오후 7시30분쯤(한국시간 오후 11시30분) 진행될 예정이다. 다음날인 21일에는 하원에서의 총리 연설과 신임 투표가 예정돼 있다. 재신임을 위해서는 상·하원 모두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신임 투표 결과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연립 정부에서 오성운동(M5S)을 퇴출하고 내각을 개편해야 한다고 요구해 온 포르자이탈리아와 연맹(the League)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다만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정당들 사이에선 드라기 총리가 직위를 유지하고 내각 붕괴를 피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만약 드라기 총리가 신임받지 못하면 내각 붕괴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 경우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새 총리의 지명 등 정국의 키를 쥐게 된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신임 총리를 지명해 현 의회 임기가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까지 내각을 이어갈지, 아니면 의회를 해산한 뒤 조기 총선을 실시할지 결정해야 한다. 연정을 구성한 정당들은 조기 총선 외에 대안이 없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의 이번 정국 위기는 원내 최대 정당이자 드라기 연정의 중심인 범좌파 성향 오성운동이 지난 14일 내각 신임안과 연계된 상원의 민생지원법안 표결에 불참하며 불거졌다. 오성운동 측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 대책,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의 현안을 놓고 드라기 총리와 대립해왔다. 자신들의 요구가 좀처럼 수용되지 않자 연정 자체를 흔드는 초강수를 내놓은 것이다.

드라기 총리는 오성운동의 지지 없이 내각을 이끌 수 없다며 같은 날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전격적으로 사임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마타렐라 대통령은 그의 사임서를 반려하고 의회에 재차 의견을 물어보게 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이탈리아 국민의 3분의 2 가량은 내년 5월 총선이 치러질 때까지 드라기 전 총리가 내각을 유지하길 원하고 있다. 2000여명에 달하는 전국의 행정관리들도 그의 총리직 유지를 요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재계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 속에 국정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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