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시대'라더니.. 尹정부, 수도권대 증원 계획에 홀대 논란
"지방대 학생들 다 수도권으로 빨려들어갈 것" 우려
대학 정원감축계획 상충..교육부 "별도 정책 고민"
"반도체 인재 양성 하루만에 과자 찍듯 해서야.."
윤 정부는 19일 수도권 대학 등의 반도체학과 학부 정원을 늘리는 등의 반도체 인력 양성방안을 내놨는데, 이 방안이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반도체 업계의 요구를 해소할 수 있는지와는 별개로 지방대 차별과 지역·산업·학과 불균형 심화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수도권대 1300명 증원 계획…지방대 반발 커질 듯
정부가 이날 내놓은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은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반도체 학과 정원 충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미래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기술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고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지난달 7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해당안에 난색을 표한 교육부에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런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까지 질타하면서 첨단인력 양성방안을 강하게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인력은 현재 약 17만7000여명에서 연평균 5.6%씩 증가해 10년 후인 2031년에는 약 30만4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반도체 산업에서 12만7000여명의 신규 인력 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연간 약 1만1000명을 새롭게 채용하는데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직업계고와 대학, 대학원 신규 졸업자 중 반도체 산업 취업자는 연간 5000명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인력 공급 규모가 유지된다면 인력난이 심화한다는 우려에 따라 정부가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인력 부족 문제가 대두했지만 정작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은 정원 규제에 묶여있어 관련 학과 정원 증원이 요구됐다. 아울러 대학 내 반도체 전공 교수 인력의 부족, 교육·연구를 위한 대학 차원의 시설 구축 한계 등도 지적됐다.
업계에서 가장 필요로하는 반도체 전공 석·박사급 인력의 경우 2017년 136명에서 2020년 100명으로 오히려 줄어들고 해외 유출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과 학사급 인력의 경우는 이공계뿐 아니라 비이공계 학생까지도 포함하는 유연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부처 간 협업과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정부는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정원 증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반도체 학과 신·증설 시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비수도권뿐 아니라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인데, 비수도권 대학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우종 지역대학총장협의회장(청운대 총장)은 이번 방안에 대해 “그동안 지방대는 교수들과 싸워가면서 학과 통폐합·구조조정을 해왔는데 수도권 대학들은 그로부터 자유로웠다”며 “수도권 정원이 순증하면 지방 학생들이 결국 다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하지 않으면서 수도권 정원을 늘리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라며 “첨단 인재를 양성하고 싶으면 학과 구조조정을 통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인재 양성은 하루아침에 과자 찍어내듯이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4년 동안 교육하고 숙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방안도 장기적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지방대 총장들과 부총리 간담회에서 지방대학 발전을 위해 특별위원회를 설치해달라는 건의가 나와서 대학교육협의회, 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상의하고 있다”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을 통한 추가적인 재원으로 지방대에 대해 과감한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정원 증원 방안이 교육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대학 적정규모화 계획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불가피하다.
교육부는 학령인구 급감에 대응해 정원을 감축하는 대학에는 최대 60억원의 지원금 등 인센티브를 주고 충원율이 낮은데도 감축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일반재정지원을 중단한다는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은 늘리면서 동시에 대학 정원을 감축하는 적정규모화를 추진하는 것은 서로 상충될 뿐만 아니라 정책의 연속성을 해칠 수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반도체 인재 양성이 적정규모화 계획과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양쪽이 상생하기 위해 별도의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분야 집중 지원에 따른 기초학문 타격과 다른 산업과의 불균형 문제도 대두할 수 있다. 게다가 향후 반도체 인력 부족 규모에 산업계의 요구가 과도하게 반영됐을 경우 그 피해는 관련 학과 학생들이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 인재 양성의 큰 걸림돌로 지적되는 교원확보 문제에 대해 정부는 반도체 산업현장 전문가를 교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겸임·초빙 교수 자격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대책을 제시했으나,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반도체 산업 인력을 늘려놨는데, 나머지 산업에서 인력 부족이 발생한다면 산업간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산업의 고른 발전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송 정책위원은 “인력 양성은 잘 못 하면 학생이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생각해 장기적으로 천천히 이뤄져야 한다”며 “반도체 필요 인력 규모가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비수도권 대학 총장들이 모여 수도권 대학 반도체 관련학과 증원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가 교육부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각종 논란에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박순애 서울대 교수를 임명한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일로, 정부의 비위를 맞추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비수도권 7개 권역 지역대학총장협의회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대학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증원에 반대하는 성명을 낼 예정이었다. 협의회에는 부산대·전북대 등 지방 거점국립대를 포함해 127개 국·사립대학이 속해 있다. 회견에는 권역별 협의회장 등 2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갑자기 취소됐고,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협의회 관계자들이 이틀 뒤 서울 여의도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하기로 결정됐다. 대학 총장들이 모여 교육부 정책 방향에 대해 쓴소리를 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교육부가 강력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양측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는 와중에 박 부총리가 임명됐는데, 부총리 취임식(5일) 하루 만에 기자회견이 열릴 상황이 되자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 교육부가 적극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비수도권 대학 총장들의 언론 인터뷰를 종합하면,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기자회견을 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일부 총장들을 밀어붙이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결국 이들은 일보 후퇴를 택했다. 그만큼 대학 행정에 있어 교육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비수도권 대학 총장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등록금 동결정책 등 복합적인 이유로 지방대학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충분한 교육 역량을 갖췄지만 사회적 변화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구책을 마련 중인 대학이 대부분인 실정에서, 수도권 위주의 정부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비수도권 대학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보후퇴를 하기는 했지만, 비수도권 총장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정의당 비대위는 논평을 내고 “이견조차 허용하지 않고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식 소통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동영 정의당 비대위 대변인은 “반도체학과 증원에 대한 다양한 의견수렴은 커녕 정해진 결론으로 몰고 가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 행정”이라며 “이번에도 윤 대통령은 박 장관에게 ‘지방대 총장들의 공격에 고생 많았다’고 할 생각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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