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째' 파업 대우조선 분수령 맞을까..손배 소송 취하가 협상의 관건

조해람 기자 2022. 7. 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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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경남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농성장 모습. 거제 | 이준헌 기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과 사측은 파업 49일째를 맞은 20일에도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9일에 이어 이틀연속 현장을 방문할 만큼 해결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지만, 노조 측이 임금 인상률을 낮춰 제안한 만큼 협상 타결 가능성이 아직은 남아있다. 그러나 ‘손해배상 소송 취하’ 문제가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있다.

노조는 임금인상 요구와 별도로 파업 행위와 관련해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해달라고 요구했다. 원·하청은 소 청구 취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원청은 소송을 취하하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쳐 배임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노조 역시 손배소송을 그대로 둘 경우 개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게 된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달 2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2015년부터 5년간 계속된 조선업 불황으로 삭감된 임금 30%를 다시 복구하고 하청노조의 활동 인정, 산업안전 대책 등을 요구해 왔다. 최근 다시 조선업이 호황을 맞았지만 삭감된 임금과 부족한 인력만으로는 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자 하청노조는 파업을 결의했다.

총파업 돌입 이후에도 사측의 응답이 없자 하청노조 소속 노동자 7명은 지난달 22일부터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1도크를 점거하고 ‘끝장농성’에 돌입했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0.3평짜리 철제 구조물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채 농성을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6일 박두선 대표이사 명의로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노조의 파업을 비판하는 등 강경 대응했다.

파업이 타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난 14일부터는 정부가 목소리를 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선박 점거는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대화로 해결해달라”는 공동 담화문을 발표했다. 같은날 하청노동자 3명은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국회의원 64명은 “산업은행과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조속히 나서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5일부터 원·하청 노사 4자가 모여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사측은 임금 인상률 4.5%를 제시했다. 이날 창원지법 통영지원이 농성 중인 하청노동자들에게 퇴거결정과 하루 300만원 지급 명령을 내리면서 거액의 손배소 역시 파업 해결의 변수로 떠올랐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일 경남 거제 대우해양조선소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문재원 기자

노조가 물러서지 않자 정부는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정부 관계부처 합동담화문을 통해 “철 지난 폭력·불법적 투쟁방식은 이제 일반 국민은 물론 대다수 동료 근로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며 “정부는 노사 자율을 통한 갈등 해결을 우선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같은 날 경찰이 조선소 인근에 경력을 배치하고 현장 안전점검에 돌입하는 등 긴장은 높아졌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조선소 파업 현장을 방문했지만 뚜렷한 소득이 나오지는 않았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20일 6번째 4자협상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대우조선해양 전체가 오는 23일부터 휴가기간에 들어가는데다, 노조 측도 당초 ‘30% 인상’에서 요구안을 ‘5~10% 인상’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식 장관도 이날 원래 일정을 취소하고 이틀 연속 현장을 찾았다.

학계, 노동 법률가 단체 법률가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농성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전문가들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 대주주 산업은행이 나서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윤애림 박사는 20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원청과 교섭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은 이를 회피하는 원청에 있다”고 했다.

김유정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는 “대우조선해양은 SA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등을 활용해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 전반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점검 및 관리했고, 임금 및 복리후생 관련 사항과 산업안전관련 사항도 전적으로 정했다”며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및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노조법상 사용자임이 명백하다”고 했다. 윤 박사는 “하청은 원청에서 대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임금인상 여력이 없고, 원청은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예산집행 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대금 집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산업은행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원·하청 관계에서 원청의 책임 회피를 막을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원청의 책임 회피로 비판받았던 택배 과로사 문제와 최근 연세대 청소노동자 투쟁 등의 원인과 이번 대우조선해양 파업의 배경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조경배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는 “법적 책임은 하청업체에 지우고 (원청이)이익은 가져가는 관행이 수십년 계속됐다”며 “모든 근로조건 결정권은 원청에 있지만 원청은 자기들은 책임이 없다며 실질적으로 아무 권한이 없는 하청업체 대표에게 책임을 미룬다. 법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했다. 권두섭 변호사(직장갑질119 대표)는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에 없더라도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을 가지는 이들을 사용자로 보도록 국회에서 명확한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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