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국방부·국정원은 왜 이리 '자기반성'에 열심일까
통일·국방·외교부·국정원
경쟁적 반성문 제출 레이스
친북몰이 당·정·대 3중창
검찰 수사 밑돌 놓기
‘동료 16명 살해 북한 어부 2명 북송’(2019년 11월7일, 이하 ‘동해 사건’)과 ‘서해 해수부 소속 어업지도원 피살’(2020년 9월21일, 이하 ‘서해 사건’) 사건을 두고 윤석열 정부 통일·외교·국방 등 외교안보 부처의 자기부정적 반성문 쓰기가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정부 통일·외교·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은 왜 이리도 ‘자기반성’에 열심일까? 지난 한달여의 과정을 복기하면, 무대 뒤의 ‘작가’와 ‘연출자’가 누구인지 가늠해볼 실마리가 발견된다.
국방부는 지난달 16일 ‘서해 사건’과 관련한 해경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최종 수사 결과에 발맞춰 “국민들께 혼선을 드린 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머리를 숙였다. 주목할 대목은 국방부가 그날 대변인실 명의로 출입기자단에 따로 보낸 문자메시지에 담긴 “국방부는 2020년 9월27일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사건 관련 주요 쟁점 답변 지침을 하달받아”라는 문구다. 2년 전 국방부의 판단이 청와대의 지침에 따른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피살 공무원의 유족은 이를 근거로 “안보실에서 하달한 월북 관련 지침이 있어서 월북으로 조작된 것인지 파악”해달라며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을 고발했다. 국방부의 공식 발표 자료가 유족의 검찰 고발 근거로 쓰인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6일 ‘서해 사건’과 관련해 박지원 전 원장을, ‘동해 사건’과 관련해 서훈 전 원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이 보도 보름 전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동해 사건’과 관련해 “(강제) 북송시킨 거에 대해선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문제제기를 많이 했는데, 한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전직 국정원장 고발에 윤 대통령의 ‘주마가편’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직 국정원장 고발이 이이지던 기간에 국민의힘에선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가 가동됐다. ‘당·정·대 3각 편대’가 뜬 모양새였다.
국정원 고발 닷새 뒤엔 통일부까지 가세했다. 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통일부는 탈북 어민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고, 북한으로 넘겼을 경우에 받게 될 여러 가지의 피해를 생각한다면 탈북 어민의 북송은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흉악범죄 북한 주민 추방”(2019년 11월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보고)이라는 3년 전의 사건 성격 규정을 180도 뒤집어 “북한 어민 강제 북송”이라고 재규정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 대변인은 “(북송 당시) 통일부는 국가안보실로부터 언론 브리핑을 요구받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처럼 통일부도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시킨 일’이라는 식의 해명이었다.
통일부의 자기분열적 사건 성격 규정은 사실 예견된 일이다. 인수위 부위원장 출신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월1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동해 사건’과 관련한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문재인 정부의 강제추방은) 명백히 잘못된, 비난받아 마땅한 부분이 있다”고 거듭 밝혔다. 윤 대통령이 ‘동해 사건’에 “국민들이 의아해한다”고 밝힌 지난달 21일 통일부의 정무직 고위당국자도 기자들과 만나 ”강제 북송은 잘못된 것이고 경우에 따라 범죄 혐의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범죄 혐의가 있을 수도”라는 언급은 국정원의 고발 등 이후의 사태 전개를 보면 자기실현적 예언에 가깝다.
통일부는 ‘동해 사건’ 성격 규정을 바꾼 직후인 지난 12일엔 ‘판문점 송환’ 모습이 담긴 사진 10장을 국회의 제출 요구를 명분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이튿날엔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국제법과 헌법을 모두 위반한 반인도적 반인륜적 범죄행위”라며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
국방부·국정원·통일부가 경쟁하듯 태도를 바꾸자, 외교부도 ‘반성문’을 써냈다. 지난 15일 외교부는 ‘동해 사건’과 관련해 “유엔인권이사회 공동서한에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답변서는 보편적 국제인권규범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부족하거나 부적절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외교부는 답변서 작성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점을 대외관계 주관부처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가안보실 핑계를 댄 국방·통일부와 달리, 외교부는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적시해 ‘책임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 카메라 앞에서 ‘반성문’을 읽은 국방·통일부와 달리, 외교부는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로 갈음했다.
외교안보 부처 ‘뒤집기 경쟁’의 정점은 통일부가 찍었다. ‘동해 사건’ 당사자들의 판문점 송환 모습을 개인적으로 촬영한 통일부 직원(판문점 연락사무소 근무)의 동영상을 국회 제출 요구를 명분으로 지난 18일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겨냥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모든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튿날 통일부의 동영상 공개가 이어졌다.
통일부의 ‘표변’에 내부에서조차 “앞으로 일관되고 신뢰성 있는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데 악영향을 줄 것”(통일부 노조)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서해·동해 사건’이 정국을 뜨겁게 달군 고빗길마다 외교안보 부처의 ‘반성문’ 제출, 진상을 다시 밝히라는 대통령(실)의 ‘주마가편’, 국민의힘의 여론전이 ‘따로 또 같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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