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점령했던 '체르노빌 원전' 방사능 여전히 심각..러군 오염지역에 방화까지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주변 지역의 방사능 오염 정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했던 수치보다 적어도 3배는 높다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린피스는 러시아군이 오염지역에 불을 지르고, 우크라이나의 방사능 측정·소방장비를 파괴하면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린피스는 20일 오후 4시(한국시간) 온라인을 통해 연 국제기자회견에서 지난 16일부터 3일간 진행된 체르노빌(우크라이나어로 ‘초르노빌’) 내 접근 제한구역의 방사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그린피스 현지 조사팀 외에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그린피스는 체르노빌 내에 러시아군이 구축했던 진지의 토양을 분석한 결과, IAEA가 같은 장소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보다 3배 이상 높은 방사선량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IAEA가 밝힌 방사선량은 최대 0.75μSv/h(시간당 마이크로시버트)였으나 그린피스 조사에서는 2.5μSv의 방사선량이 기록됐다.
시버트는 인체가 방사선에 피폭되는 정도를 의미하는 단위다. 시간당 마이크로시버트는 한 시간에 인체가 얼마큼의 방사선에 노출되는지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또 해당 지역의 토양 샘플에서는 ㎏당 최대 4만5000Bq(베크렐), 최소 500Bq의 세슘이 검출됐다. 베크렐은 물체가 방출하는 방사선을 나타내는 단위다.
이에 대해 그린피스는 러시아군이 고농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토양에서 상대적으로 오염이 적은 지역으로 이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방사성 물질이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체르노빌은 1986년 사상 최악의 원전 폭발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사고 발생으로부터 3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고 원전으로부터 반경 30㎞ 이내 지역은 출입이 통제돼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과 동시에 체르노빌을 점령했다. 이후 지난 3월31일 체르노빌 원전을 우크라이나에 넘긴 뒤 철수했다.
IAEA는 러시아군이 철수한 직후인 지난 4월 체르노빌의 방사선량을 조사한 뒤 “원전 사고 현장의 방사능 수치가 한때 비정상 수준으로 올라갔지만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또 IAEA의 조사 대상 면적은 체르노빌 제한구역 내 극히 일부였으며, 이는 IAEA 조사의 공정성에 의심이 드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린피스는 특히 러시아군의 진지와 진지에서 남쪽으로 600m 떨어진 지역을 확인한 결과 각각 200CPS(Count per Second, 대지에서 방출되는 감마선량의 단위)와 8000 CPS의 감마선량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600m 거리를 두고 방사선량이 무려 40배나 차이가 난다는 점이 확인됐지만 IAEA의 조사 장소는 러시아 군 진지에 국한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감마선량 조사는 그린피스 자체 제작한 드론으로 실시됐다.
그린피스는 또 지리·기후 정보 전문 기업인 ‘맥킨지 인텔리전스 서비스’의 위성영상을 확인한 결과 러시아군이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인 ‘붉은 숲’에 의도적으로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이 방화로 인해 토양 속에 있던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확산되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식수원과 연결되는 주변 강이 오염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붉은 숲’은 1986년 사고 당시 방사선에 피폭된 소나무와 풀 등이 붉게 변색된 지역이다.
그린피스는 러시아군이 철수하면서 매설한 대량의 지뢰로 인해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 지뢰들로 인해 현지의 방사능·화재 위험을 관리하는 과학자와 소방관들의 생명도 위험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군이 방사선 측정 도구와 소방 장비들을 파괴·약탈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체르노빌 접근 제한구역의 오염도 변화를 정상적으로 관리·통제하는 것도 어려워진 상태다.
얀 반데푸타 그린피스 벨기에 수석 방사선·방호 전문가는 “곳곳에 설치된 대인 지뢰로 인해 조사팀이 조사를 진행한 곳은 극히 제한적”이라며 “러시아군이 군사 활동을 펼친 전체 지역을 조사하면 방사성 물질의 확산으로 인한 피해가 더욱 심각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IAEA는 협소한 지역에서 극히 적은 조사 샘플만 조사해 러시아군에 의한 체르노빌 피해가 없다고 전 세계에 공표했다”며 “그러나 그린피스의 조사 결과 초르노빌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린피스는 이번 조사로 확보한 샘플을 정밀 분석하고, 결과를 추가로 공개할 계획이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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