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 기업에서 당한 4번의 해고..정말 노조 활동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홍근 기자 2022. 7. 20. 16: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동위원회 부당 해고 판정에도 번번이 해고
사측 "실적 부진 문제..노조 활동과는 무관"

글로벌 조명 기업 시그니파이(옛 필립스라이팅)의 국내 자회사인 시그니파이코리아에서 특정 노동자가 2년여간 네 차례 해고됐다. 앞선 세 차례 해고 이후 매번 노동위원회가 노동자의 손을 들어줘 세 번 복직됐지만 회사는 지난 3월 네 번째로 해고를 통지했다. 사측은 ‘실적 부진’을 해고의 주된 사유로 제시했지만, 당사자는 ‘노조 활동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시그니파이코리아 직원 A씨는 2020년 1월13일 처음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는 2016년 필립스코리아에서 분사한 필립스라이팅코리아의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A씨에 따르면 노조위원장 재임 당시 취업규칙 등을 놓고 사측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A씨가 해고된 날은 그가 단독 후보로 나선 3대 노조위원장 선거 투표 첫날이었다. A씨는 “사측이 노조위원장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해고했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서를 냈다. A씨는 사측이 해고를 논의하는 인사위원회를 열면서 자신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는 징계 시 당사자의 소명기회를 1회 이상 부여토록 한 이 회사 취업규칙 제58조 위반에 해당한다.

사측은 A씨의 2018~2019년 영업실적이 좋지 않다는 점을 들어 해고가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또 인사위원회 개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조직개편으로 인해 상황이 급박해 절차를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고 조치는 A씨의 노조 활동과 무관하다고도 했다.

지노위는 2020년 4월 사측이 소명 기회를 주지 않은 점을 들어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징계 수위도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사측이 근거로 제시한 2018~2019년 매출목표 달성률을 보면 A씨보다 낮은 성과를 낸 직원이 연도별로 각각 3명 더 있었다. 또 성과평가 점수가 2년 연속 하위에 머물러 성과향상 프로그램 대상자가 된 직원도 A씨 외에 1명 더 있었다. 그러나 A씨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징계 처분을 받지 않았다. 지노위는 이 점을 근거로 사측이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해고 사유가 노조위원장 출마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복직한 A씨는 넉 달 만인 2020년 9월25일 두 번째 해고를 당했다. 사측은 복직한 A씨를 성과향상 프로그램에 배치했는데, 매일 5개 이상의 잠재고객사 연락처를 보고하고, 월 10개 또는 2억원 이상의 신규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일이 맡겨졌다. 사측은 복직 두 달 만인 7월2일 저성과를 이유로 A씨를 감봉 3개월에 처했고, 8월1일에는 직무대기를 명했다. A씨는 “사측이 과도한 업무를 부여해 징계 사유를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무대기 기간 A씨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육아휴직 기간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19조 3항 위반이다. 그럼에도 사측은 9월 그를 해고했다.

이번에도 지노위는 부당해고를 인정해 A씨의 복직을 명했다. 사측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중노위에서도 같은 결정이 나왔다. 회사 대표 B씨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약식기소돼 지난 5월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문 갈무리.

사측은 2021년 6월4일 A씨의 복직 당일 세 번째 해고를 단행했다. A씨의 영업실적이 저조하고 성과향상 프로그램을 적용했음에도 업무능력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A씨는 첫번째 해고 때와 마찬가지로 “소명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며 지노위에 구제를 신청했으나 이번에는 기각 결정을 받았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고 중노위는 “절차상의 중대한 하자가 있어 해고가 부당하다”며 지노위 판정을 뒤집었다. A씨는 지난 3월 세 번째로 복직했지만 사측은 그에게 또 다시 해고 통지서를 발송했다.

A씨는 “월급쟁이는 매달 월급이 나와야 생활한다. 2년 동안 빚을 내 생계를 꾸려가다가 판정 결과가 나오면 월급을 몰아받는 상황이어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어 “경제 사정이 어려워서 차도 팔았다”며 “회사와 복직을 다투는 데만 노무사 비용 등으로 1000만원 가까이 든 것 같다”고 했다.

시그니파이코리아 관계자는 “3차 중노위 판정에서도 해고 사유는 인정됐지만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해 소명 기회를 주고 (다시) 해고한 것”이라며 “(A씨의 주장과 달리) 해고와 노조위원장 출마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