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다가 벌처럼?'..이준석, 인파이터에서 아웃복싱으로 바꾼 이유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지난 19일 강원 춘천시의 한 식당에서 김진태 강원지사로부터 홍삼 선물을 받으며 웃고 있다. 이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은 후 ‘아웃복싱’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전엔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당내 인사를 저격하고, 징계 처분이 내려지면 효력 정지 가처분 등 가능한 불복 절차를 모두 동원할 것처럼 ‘인파이터’의 기질을 보였다면 징계 후엔 공개 비판을 멈추고 불복 절차도 밟지 않았다. 대신 전국을 돌며 비공개로 당원들을 만나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하락의 책임에서 거리를 두면서 당원들 지지세를 등에 업어 대표직 복귀를 노리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가처분은 이번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고, 경찰 수사 후 추가 징계를 대비해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20일 강원도에서 비공개로 당원들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7일 부산, 19일 강원 춘천시에서 당원들과 만난 행보의 연장선이다. 이 대표는 지난 8일 징계를 받은 후 잠행을 이어오다 1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광주 무등산 등반 소식을 알리고, 14일 앞으로 전국을 돌며 당원들을 만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9일까지 만남을 신청한 당원이 8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당내 반대세력을 저격하던 이 대표의 목소리는 징계를 받은 후 사라졌다.

당원 지지세 다지기는 현 상황에서 이 대표가 준비할 수 있는 가장 큰 반격 카드로 꼽힌다. 징계가 정치적인 쫓아내기라고 판단한다면 자신의 정치력으로 이를 뒤엎어야 하고 그 기반이 되는 것이 당원들의 지지세다. 전국 순회를 통해 이 대표에 대한 전국 단위 지지 모임이 만들어지면 당내에서도 무시하기 어렵다. 당원들은 대표 탄핵이 진행될 경우 이를 방어하고, 당 지도부의 결정을 뒤집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당내에선 차기 대표에 대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가 1위를 달리는 점을 들어 당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 대표는 이번 일로 불쌍하다는 이미지를 얻었다

- 국민의힘 한 관계자

이 대표의 ‘저격 중단’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급락하는 국면에서 자신의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자신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과 윤리위원 등 당내 인사들과의 싸움에 뛰어들면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내홍의 진원지로 지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사구팽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침묵은 필요하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 대표는 똑똑하지만 건방지다는 이미지가 최대 약점인데, 이번에 불쌍하다는 이미지를 얻었다”며 “정치인은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 측은 이번 징계에 가처분을 신청해봤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성비위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된 후에 이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시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때 가처분을 꺼내들려 남겨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리위가 형평성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 대표에게 호재로 인식된다. 윤리위는 지난 18일 채용비리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김성태·염동열 전 의원에게 각각 당원권 정지 3개월을 내려 수사가 진행 중인 이 대표에 대한 처분보다 낮은 데 대한 논란이 일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