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인데..'복지 기준' 또 "재정 부담"에 발목 잡히나
내년 기준 중위소득을 정하기 위한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회의를 앞두고 재정당국이 지난해보다 증가율을 더 낮춘 안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코로나19 유행을 이유로 증가율을 낮췄는데 이보다 더 낮은 증가율을 들고 나온 것이다. 기준 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76개 복지사업 대상자를 가리는 기준이 되기에 최근 물가 상승으로 고통이 커지고 있는 저소득층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25일 열리는 중생보위를 앞두고 기준 중위소득 기본증가율을 2.32%로 내리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기본증가율은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나타난 중위소득 증가율의 최신 3년치(2018~2020년) 평균값으로 정하게 돼있다. 이 값은 올해 3.57%이다. 다만 경기 변동 등을 감안해 기본증가율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재부는 2.32%를 제시하며 ‘급격한 경기 변동’ ‘막대한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들었다.
기본증가율 2.32%는 2021년 기준 중위소득을 논의하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침체를 근거로 결정한 3.02%보다도 낮다. 당시 3.02%는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 증가율 3년치 평균값 4.32%에서 낮춘 값이었다. 이번에 제시한 2.32%는 원칙대로 계산한 평균값 3.57%에서 또 깎은 수치다. 정부는 2020년에도 평균값 4.62%를 1.0%로 대폭 내렸다. 다가오는 중생보위 본회의에서 기재부 안을 관철하거나 반영해 기본증가율을 낮출 경우 3년 연속 정해진 계산법을 따르지 않는 셈이다.
경기 상황 등을 이유로 기본증가율을 매년 내리면서 실제 중위소득과 기준 중위소득 간 격차를 해소한다는 중생보위의 취지는 바래졌다. 현재 산출식은 기준 중위소득과 가계금융복지조사상 중위소득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만들어 2020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당시 4인 가구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은 529만원, 기준 중위소득은 474만원으로 50만원 넘게 차가 났다. 하지만 2020~2021년 모두 산출식을 따르지 않았다. “최소한 정해진 산출식을 지키라”(시민단체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올해는 물가 급등에 타격을 받기 쉬운 저소득층 형편을 더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준 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76개 복지사업 대상자를 가리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주최한 토론회에선 ‘기초생활보장비를 받는 25가구를 2개월 동안 조사해보니 11가구에서 수입보다 지출이 더 크고 육류·과일을 한번도 사지 않은 경우가 각 9가구에 달한다’는 내용이 발표되기도 했다.
기재부는 산출식대로 계산한 기본증가율 3.57% 등을 반영해 총 증가율 5.47%를 적용할 경우 “역대 최고 수준이어서 최저임금 인상률 5%에 비하면 지나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올해 기재부 안대로 총 증가율 4.19%를 적용하면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예산 증가액을 1000억원 아낄 수 있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지난 2년간 총 증가율은 2020년 2.68%, 2021년 5.02%였다.
시민사회는 중생보위의 역할을 고려해 민주적 운영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기준 중위소득 결정은 빈곤계층 생활수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위원 구성, 논의 안건, 회의록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시민의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2019~2020년 중생보위 위원으로 활동한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당연직 장·차관 6명과 전문가·공익위원 각 5명으로 구성돼 민간 쪽 위원이 과반이지만, 기준 중위소득 결정을 앞두고 한두달 정도만 집중적으로 회의를 열다보니 사실은 정부 주도로 가기 쉬운 구조”라며 “중생보위가 TF(태스크포스)를 운영하며 굉장히 오래 논쟁한 끝에 산출식을 정했는데, 이를 조정하는 과정을 공개적으로 논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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