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위기설에 독일까지 불안..금리인상 앞둔 유로존의 고민
11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앞둔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민이 깊다. 고물가 대응을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경기 침체 우려도 높아지고 있어서다. 금리가 오르면 남유럽 국가들의 부채 문제가 다시 위험해질 것이란 경고가 높아지고, 경제 강국인 독일의 경기 회복세도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댈 곳도 마땅치 않다.
ECB는 오는 21일(현지시간) 11년 만에 첫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ECB는 첫 인상폭으로 0.25%포인트를 예고했지만, 물가가 예상보다 급등세를 보이면서 인상폭을 0.5%포인트로 높이는 ‘빅 스텝’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유로존(유로화사용 19개국) 물가는 1년 전보다 8.6% 올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점진적인 (금리)인상이 적절하지 않은 분명한 조건이 있다”면서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 기대를 무력화할 정도의 높은 물가상승률이나, 잠재성장률에 장기적인 손실이 발생할 조짐이 있는 경우 우리는 부양조처를 빠르게 회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 빅 스텝 가능성을 열어놓은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유로존 경기 침체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은 빅 스텝을 실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유럽의 경우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전쟁의 충격이 크다. 에너지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유럽의 물가상승률도 크게 뛰고, 산업 가동에도 영향을 미쳐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재정 상황이 다른 여러 국가가 ECB의 단일한 통화정책을 쓰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당장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들은 금리인상으로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각구 정부의 재정 지출이 늘어났는데 이탈리아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151%로 2010~2012년 재정위기 당시 부채 비율 122%를 크게 웃돌고 있다. 그리스는 정부부채 비중이 나라경제 규모의 두배 수준(193%)에 육박하고 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011년에도 ECB는 두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포르투갈 구제금융, 스페인 위기설 등이 대두하면서 금리인상을 중단한 적이 있다”면서 “코로나 이후 취약해진 재정수지 및 국가부채 부담, 부실한 금융회사, 러시아의 압박 등의 이유로 위기국면이 또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도 상당하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유로존 전체 GDP에서 약 29%를 차지하는 독일 경제의 부진이 유로존 전체의 경기 하방 압력을 키우고 있다. 독일은 최근 통일 이후 가장 어려운 경제 상황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금융센터 자료를 보면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최근 주요 7개국(G7)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독일의 하향폭이 2.0%포인트로 가장 컸다. 주요국은 물론 주요 유럽 국가에 비해서도 회복세가 크게 약해진 모습이다. 독일은 지난 5월 무역수지 10억 유로 적자를 기록해 1991년 이후 30여년만에 처음으로 적자 전환했다. 황유선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독일의 경제 전망 악화는 유럽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정치적 위험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면서 “독일 내부에서 남유럽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ECB 통화 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절화 위험을 수습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소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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