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협상 진전 없으면 다른 수단 고려"..대우조선 노사 의견은 좁혀져
권기섭 차관 "공권력 투입은 불법 점거 농성 때문"
금속노조 "투입되면 농성자 생명 담보 어려울 것"
전날 노사 요구안 의견차 일부 좁혀
49일째 이어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점거파업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20일 고용노동부가 다시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여러 가지 다른 수단도 고려하겠다"며 경고 수위를 높였다. 하청 노조는 "공권력이 만약 투입될 경우 (점거 농성 중인) 7명의 생명을 담보하기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라고 맞서고 있다. 다만 이날 오전 11시 재개된 교섭에서는 임금인상폭이 다소 좁혀져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전망도 나온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전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공권력 투입에 관련된 문제는 불법 점거농성의 문제이고, 사실상 아주 전근대적인 파업 수단"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권 차관은 '정부가 경찰 투입을 자제하고 협상을 최대한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켜볼 거냐'는 질문에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왔을 여러 가지 다른 수단을 그때 고려하는 것 아니겠냐"고 답해 하청 노조가 점거 농성을 이어갈 경우 공권권이 투입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날 재개되는 하청업체 교섭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노사, 고용부 관계자 등이 참관하는 방식의 회의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대화에서 노사 양측은 교섭 재개 일정도 잡지 못하고 회의장을 나섰고, 정부가 일정을 제안해 교섭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나서라는 요구에 "노사 갈등때마다 나서나?"
교섭 쟁점은 △하청 노조원 임금 인상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부제소 등으로 알려졌다. 수년 간 이어진 불황과 주 52시간 근무 도입으로 잔업‧특근 등이 대폭 줄며 조선업 하청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이 5년전에 비해 30% 가량 삭감됐는데 이 부분을 회복해달라는 요구다. 다만, 이어진 교섭으로 노조는 올해 5%, 내년 10%로 인상 요구안을 바꿨다. 노조는 조선업 특성상 원청이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기성금(납품가)의 9할이 하청 근로자 임금이고, 실질적인 업무 통제가 이뤄지는 만큼 원청이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청은 현 제도상 협력업체 노조의 교섭 대상자가 협력업체 사측이란 점을 넘어서는 결정(교섭)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가 하청 노조 파업 시작 후 40여회 현장의 대화를 중재하고 있다.
권 차관은 "어쨌든 간에 지금 현재 노사 협상의 당사자는 하청업체 노사인 것은 분명하다. (30% 임금 인상 요구는) 가장 호황기의 임금 수준을 회복해 달라는 것인데 수년간 조선업계가 불황이 계속됐다"며 원청의 입장에 손을 들었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1주주가 산업은행인 만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차원에서 정부가 하청 근로자를 지원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도 권 차관은 "노사 갈등이 생길 때마다 산업은행이나 정부가 계속 또 이런 부분에 대한 요구를 계속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3일 여름 휴가 전 타결해야...농성 손배소 여부가 관건 될 듯
노조는 공권력 투입시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화물창 바닥 가로·세로·높이 1m의 철 구조물에 들어가 농성 중인 유최안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시너 여러 통을 지닌 것으로 전해진다.
강인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권 차관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공권력이 투입이 될 경우 (점거 농성 중인) 7명의 생명을 담보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라며 "그 부분(공권력 투입)까지 만약 하게 되면 불상사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극한적인 상황이 와도 우리는 끝까지 저항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점거농성을 풀면 정부가 협상을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는 고용노동부 입장에 대해강 부지회장은 "저희들이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어 '협상 당사자는 하청업체 노사'라는 권 차관의 인터뷰 내용을 지적하며 "한국 조선산업에 대한 이해가 너무 낮다"고 맞받았다.
노조가 파악한 대우조선해양 하청 근로자는 대략 1만1,000~1만2,000명 선. 이 중 약 150여명이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노조원들의 임금 인상률은 한 자릿수에 불과한 상황"(권기섭 차관) 등 노조 요구가 과도하다는 주장에 대해 노조원들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점거 농성 배경을 적극 알리고 있다.
안준호 금속노조 경남지부 부지회장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공권력 투입을 떠나서 지금 이런 상황에서 앞뒤 전후 사정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현 상황만을 보고 하청 노동자 투쟁에 대해 같은 협박 같은 발언들을 쏟아내는 것은 정부 부처의 책임자인 장관이 취할 입장이 아니다"고 질타했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사무국장도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조선소는 평소에도 임금체불, 4대 보험 체납, 휴업수당 미지급 등 온갖 불법들이 난무하는데, 그 불법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요구하니까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불법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참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비꼬았다.
'원청 책임'을 강조하는 노조는 한편으로 사측과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이다. 23일 여름휴가를 앞두고 협상 타결이 필요한 상황에서 전날 노사가 올해 임금인상 요구안(사측 4.5%, 노측 5%)을 좁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악의 '물리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노조가 내년 1월 1일부터 임금 10% 인상을 요구하고 있고, 파업가담자 민형사상 책임면제를 요구하고 있어 막판 협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노사는 노조 전임자 지정 등 노동조합 활동 인정을 두고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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