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동성결혼 보호 법안 통과..공화당 의원도 대거 찬성
미국 연방 하원이 19일(현지시간) 동성 결혼과 인종 간 결혼 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보수 절대 우위 구도인 연방 대법원이 지난달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폐기한 데 이어 동성 결혼과 인종 간 결혼의 합법성을 인정한 기존 판례를 뒤집을 것에 대비해 법률로 이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이다. 하원은 지난주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연방 차원에서 보장하기 위한 법률도 통과시킨 바 있다.
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일명 ‘결혼존중법’을 표결에 부쳐 찬성 267표 대 반대 157표로 가결 처리했다. 이 법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제정된 ‘결혼보호법(DOMA)’의 폐지를 규정함으로써 동성 결혼과 인종 간 결혼 권리를 연방 차원에서 보장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민주당 측은 설명했다.
1996년 상·하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합의로 제정했으며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서명한 DOMA는 결혼을 ‘오직 한 남성과 한 여성이 남편과 아내로 합법적으로 결합한 경우’에 한정했다. 또한 ‘배우자’를 ‘성이 반대인 사람’으로 한정했다. 동성 간 결혼을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2013년 6월 DOMA가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동성 결혼은 미국 전역에서 이성 간 결혼과 같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됐다.
하원이 결혼존중법을 통과시킨 것은 DOMA 위헌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지난달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판결에서 소수 의견으로 피임과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기존 판례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다수 의견을 담은 판결문에서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 폐기는 다른 기존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법적인 권리로 보장된 피임과 동성 결혼 허용을 재고해야 한다는 토머스 대법관의 주장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결국 향후 대법원이 실제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 판례를 뒤집을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DOMA를 폐지하자는 것이 이번에 통과된 법률의 취지다.
동성 결혼과 인종 간 결혼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의 하원 통과는 예견됐다.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와 성 소수자 권리 보호에 적극적인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표결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공화당 의원이 47명이나 법안에 찬성했다는 사실이었다. 공화당은 임신중단이나 동성 결혼 등에 관해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며, 결혼 제도는 연방이 아닌 각 주의 권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주에 있었던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 보장 법안에 찬성한 공화당 하원의원은 3명에 불과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표결 결과는 임신중단보다 동성 결혼과 인종 간 결혼에 대한 공화당과 보수 진영의 반대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애덤 킨징어 같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소신파 의원 외에 친트럼프 성향으로 의원총회 의장인 엘리스 스테파닉 같은 중진 의원도 찬성표를 던져 주목을 받았다.
공화당 하원 지도부는 이 법안에 대해 당론을 채택하지 않고 의원들의 자유 투표에 맡겼다. 동성 결혼에 대한 당내 견해가 나뉘어 있고, 이 법안을 공화당이 똘똘 뭉쳐 반대하는 모양새가 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이 의석의 절반을 차지한 상원에서 이 법안의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하원에서 초당적인 지지로 통과됐다는 사실은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진영에게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편 워싱턴 대법원 인근에서 이날 열린 임신중단 권리 폐기 판결 항의 시위에 참가한 민주당 하원의원 17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앤디 레빈,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진보파 의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찰은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향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3차례 해산을 명력했지만 응하지 않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벌금을 부과받고 풀려날 전망이다. 지난달에도 주디 추 의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임신중단 권리 폐기 판결 항의 시위에 참가했다 체포된 바 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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