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범죄 위해 맡긴 돈 가로챈 건 '횡령죄' 아니다"
타인이 불법행위를 위해 맡긴 돈을 가로챈 것은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해 요양병원을 운영하려고 2013년 B씨와 C씨로부터 투자금 2억5000여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조합 설립이 좌절돼 사업이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A씨는 투자금을 B씨와 C씨에게 돌려주지 않고 2억3000만원 가량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검찰은 A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문제는 A씨, B씨,C씨가 추진하려던 사업이 불법행위였다는 점이다. 이들 모두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었음에도 요양병원을 설립·운영하고 그 수익금을 가져가려 했다. 재판에선 ‘불법행위’를 위해 맡긴 돈을 가로챈 행위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는 지가 쟁점이 됐다.
1심과 2심은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봤다. “B씨 등이 A씨에게 맡긴 돈이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는 않아 A씨에게 돈을 돌려줘야 할 민사상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했다. ‘불법원인급여’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원인’에 의해 제공된 재산을 뜻하는 것으로, 이 경우 법은 재산의 반환을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무자격자의 의료기관 설립이 불법이기는 하지만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원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민사상 반환 책임이 있는 지’와 ‘형사상 형령죄가 성립하는 지’는 별개라는 것이다.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돈을 맡긴 자와 맡은 자 사이에 ‘형법상 보호가치 있는 위탁관계’가 존재해야 하는데, 이 사건처럼 범죄 행위를 위해 위탁한 경우에는 ‘형법상 보호가치 있는 위탁관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범죄의 실행행위나 준비행위를 통해 형성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며 “원심은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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