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챙기며 기부까지..설악산서 월드비전 '히어로 하이킹'

손수원 차장대우 사진 이신영 기자 2022. 7. 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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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에반젤리스트' 김섬주와 15인의 '히어로'들 설악산에서 고급하이킹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올라가는 길, 가파른 산길이지만 히어로들의 얼굴은 시종일관 밝았다

5월 21일 토요일, 오색리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앞이 떠들썩하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 많은 설악산인데, 마침 이날은 산불방지기간에 의한 입산 금지가 풀린 후 맞이하는 첫 주말이었기에 더욱 등산객이 많았다. 이 인파 중 월드비전에서 개최한 '하이킹 에반젤리스트 김섬주와 함께하는 스페셜 고급하이킹(이하 스페셜 하이킹)'에 참가한 이들도 설악산의 기운을 듬뿍 느끼고 있었다.

산행 시작 전 스트레칭은 필수!

초여름의 설악은 온통 초록빛

이번 스페셜 하이킹은 '2022 글로벌 6K 포 워터' 하이킹 참가자(히어로) 중 15명을 선발해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국내 1호 '하이킹 에반젤리스트Hiking Evangelist(하이킹 전도사)' 김섬주씨와 함께 설악산을 오르는 일정이었다.

새벽에 집에서 나와 여의도와 강변역에서 단체버스를 타고 온 터라 모두들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설악산의 공기를 쐬자마자 정신이 번쩍 드는 듯 눈망울이 총총해졌다. 모두 매주 산에 다닐 만큼 산을 좋아하는 신세대 산꾼들답다.

김섬주씨의 리드에 따라 웜업운동을 하고 산행에 나선다. 설악산이 다시 열린 첫 주말, 나무도 하늘도, 모두의 표정도 푸르고 상큼하다. 오늘 산행은 오색에서 출발해 대청봉에 올랐다가 한계령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인기가 좋은 코스지만 상대가 설악산인 만큼 만만치 않다. 특히 오색 코스는 5km 남짓으로 짧지만 줄곧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몹시 매운맛' 코스다. 오늘 참가자 중에는 설악산을 처음 오르는 사람도 있어 산행리더인 김섬주씨는 "자기 체력에 맞게 천천히 가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하이킹 에반젤리스트 김섬주씨를 필두로 일렬로 줄지어 산행하는 히어로들

그런데 어차피 빨리 걸을 수 없는 환경이다. 이렇게 '초록초록한' 설악산의 품에 안겨서 어찌 앞만 보고 걸을 수 있겠는가. 옆의 계곡을 보고 위의 키 큰 나무를 보고, 발아래에 밟히는 바위를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유자적 걷게 되었다.

"'솔비투르Solvitur 암불란도Ambulando' 라는 말이 있어요. 1,000년 전에 로마인들이 한 말이에요. '걸으면 해결된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산을 오르면서 우리가 돕거나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의식의 계기를 마련하는 게 이번 행사의 취지지요."

'하이킹 에반젤리스트'인 김섬주씨는 등산에 대해 '오로지 산을 오르는 행위'라기보다는 심신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내면을 치유 받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20~30대가 가장 등산이 필요한 세대라고 말한다.

바위 앞에서 멋진 포즈를 잡은 히어로들

'꿀 같았던' 짧은 계곡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줄을 맞춰 걸으면서 페이스를 조절한다. 산행능력의 차이는 중요치 않다. 누구 하나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서로를 배려하며 속도를 조절했다.

초여름의 설악산은 짙은 녹음 속에 분홍빛 철쭉이 함께하는 꽃동산이었다. 누군가는 꼭꼭 숨어 있던 벚꽃을 찾아내기도 했다.

"제가 찍어드릴게요! 저기가 더 잘 나오겠는데요? 어머, 꽃하고 구분이 안 되네요!"

가파른 오름짓에 잠시 숨을 돌리는 휴식시간. 짬이 날 때마다 각자 '셀카'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아무리 셀카봉이 있다 하더라도 모름지기 가장 잘 나온 사진은 '남이 찍어준 사진'인 법,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이왕이면 더 잘나오게 찍어 주겠다며 '배려 삼매경'이다.

대청봉에서 서로 인증샷을 찍어 주는 히어로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어느 새 가장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스스로 신청해 모인 참가자들인 만큼 오늘 하이킹에 나선 각오도 각기 다르다. 권영신씨는 지난해 '글로벌 하이킹 6K'에 참가해 14번의 인증을 한 경험자다.

"제가 좋아하는 등산이라는 취미를 통해 건강을 챙길 뿐 아니라 기부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어요. 지난해 처음 가 본 산에서 인증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참 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올해에도 새로운 산을 찾아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설악산을 가장 좋아해요. '최애산'인 설악산에서 인증을 한다면 더욱 더 뿌듯한 기부가 될 것 같아 고급하이킹을 신청했어요."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로 내려오는 행렬. 설악산은 늘 사람이 많다

'대청봉 식당'은 최고의 풍경 맛집

성시경씨는 "등산에서 물이 필수이듯, 땀 흘려 산을 타면서 이렇게 귀한 물을 지구 반대편 아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고급하이킹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전국의 산을 다니는 '산꾼'인 양희아씨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가르치며 환경의 소중함을 알려 주는 교사로서 산을 오르며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하이킹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사연과 목표를 가지고 설악산에 모인 이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고급하이킹'을 함께하는 동료로서 '대청봉'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걷고 있었다.

악명 높은 오색코스답게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때 한 남성 참가자가 다리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쥐가 난 것이었다. 김섬주씨가 나섰다. 등산화를 벗기고 등산스틱을 활용해 능숙하게 장딴지를 마사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참가자들 모두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공룡능선을 바라보며 '인스타 인증샷' 한 장! 분홍 털진달래가 곳곳에 피었다.

좋은 추억이 될 힘든 기억

산행 시작 4시간 30여 분 만에 드디어 대청봉 정상에 올랐다. 보통 산행시간보다는 늦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지금 누려야 할 것은 오로지 설악산 정상에 섰다는 기쁨뿐이었다.

30여 분을 기다려 정상석 인증샷을 차례대로 찍은 후 각자 설악산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을 골라 앉아 점심식사를 했다. 간단한 샌드위치나 김밥,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조촐한 식사지만 동해바다와 울산바위,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니 산해진미를 모두 맛보는 표정들이다.

이제 하산의 시간, 오랜 만에 문을 연 중청대피소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거의 2년 만에 대피소 마당에서 삼겹살 굽는 모습을 구경한다. 모두들 아닌 듯하면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을 흘깃흘깃 바라보는 모습을 서로에게 들키며 웃음보가 터졌다. 이 사람들 분명히 조만간 대피소 예약을 하고 다시 한 번 설악산을 찾을 것 같았다.

대청봉을 배경으로 단체 인증샷

서북능선을 타고 한계령으로 향하는 길은 길었다. 참가자 모두 지친 기색이 조금씩 묻어났다. 다리는 지치지만 서로에 대한 친밀감은 더해졌다. 위험한 곳에서 서로 조심하라고 말해 주고,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기꺼이 나누며 응원했다. 김연재씨는 잠시 쉬는 시간에 신기에 가까운 돌탑 쌓기 능력을 선보이며 지친 일행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중청대피소에서 출발한 지 4시간여 만에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했다. 거의 10시간 가까이 설악산의 품에 안겨 있던 참가자들은 해냈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뿌듯함의 만세를 불렀다. 이 뿌듯함이 평소보다 더 큰 것은 15명의 기쁨이 합쳐진 것에 더해 무사히 물을 기부하는 산행을 마쳤다는 것도 있으리라.

히어로들은 산행 내내 앞뒤에서 끌고 밀며 서로를 격려했다.

"오늘 산행의 힘든 기억이 곧 좋은 추억으로 바뀔 거예요."

김섬주씨의 말에 모두들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악산과 함께여서 즐거운 하루였고, 나의 땀으로 세계의 어려운 이웃에게 깨끗한 물을 선물할 수 있어서 뜻깊은 하루였다. 무엇보다 산을 사랑하고 기부의 가치를 아는 좋은 사람과 함께여서 더욱 값지고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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