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막았던 펠로시 대만행 재추진에 미중관계 안갯속
美중간선거·中당대회 앞두고 미중관계 관리모드→치킨게임 가능성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지난 4월에 추진되다 당사자의 코로나19 감염으로 보류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재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중 관계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 펠로시 의장이 내달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한 이후 중국 정부와 관영매체는 그의 대만행 추진을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관련 보도가 나온 당일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할 경우 "중국은 반드시 결연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가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확고히 수호할 것"이라며 "일체의 결과는 전적으로 미국 측이 책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튿날인 20일에는 관영매체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 글로벌타임스는 20일자 기사에서 '분석가'들의 견해라며 "펠로시가 중국에 노골적인 도발을 할 경우 1996년 대만해협 위기 때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을 촉발할 것이며, 이는 중·미 관계에 큰 차질을 초래할 것"이라고 썼다.
신문은 또 "만약 방문이 진행되면 이는 '전략적인 수준의 도발'이 될 것이며 중국은 군사적,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그 결과는 심각한 경제 압박을 받고 있는 미국이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신문은 같은 날 사설에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성사된다면 중·미 수교 이래 대만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가장 지독한 도발 중 하나일 것"이라며 "대만 방문은 분명 펠로시가 절대 넘어선 안 될 레드라인"이라고 적었다.
이어 "지난해 3차례에 걸친 미국 의원들의 대만 방문 뒤 중국 인민해방군의 억제 차원 행동이 점차 상승해 실전 수준에 접근했다"며 "만약 펠로시가 '마이웨이' 행보를 걷는다면 그는 대만 독립세력에 악몽을 부를 것"이라고 부연했다.
중국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이슈에 이토록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통령·부통령에 이은 미국 내 권력 서열 3위라는 직함의 무게와 더불어 그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출신의 최고위급 인사라는 점을 중시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뉴트 깅그리치도 현직 하원의장 신분으로 대만을 방문했지만 당시는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 때로, 깅그리치는 당시 야당(공화당) 출신 하원의장이었다.
또 클린턴 행정부는 당시 대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에 그 시기 야당 출신 하원의장의 행보는 정부와 '엇박자'였던 반면 지금은 여당 출신 하원의장이 대중국 견제 및 대만과의 관계 강화라는 행정부 기조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이려 한다는 점에서 두 사안은 차원이 다르다는 게 중국 측 인식이다.
또 삼권분립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중국이 의회 수장의 '위치'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자오리젠 대변인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펠로시 건에 대해 답하면서 "미국 의회는 미국 정부의 구성 부분으로, 미국이 시행 중인 하나의 중국 정책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가 지난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계기 중국을 방문할 '국가원수·정부수반·왕실 구성원·국제기구 책임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당시 박병석 한국 국회의장을 포함한 것에서도 일국 의회 수장의 국가 시스템 상 위치에 대한 '중국식 사고'를 보여줬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 문제는 각자 중대 정치 일정을 앞둔 양국 관계에 큰 변수로 부상한 양상이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국정 동력에 큰 영향을 줄 중간선거(상·하원의원과 주지사 등을 선출하는 선거)가 11월에,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20차 당 대회가 가을에 각각 열린다.
이런 국내 정치 일정을 앞두고 양국은 최근 격렬하게 전개되어온 미중 갈등을 한동안 관리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지난 9일 주요 20개국(G20) 회의 계기에 발리에서 양국 외교장관이 만나 5시간 이상 대화한 뒤 "건설적 대화"였다고 입을 모은 일과 이달 하순 양국 정상의 통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 미국이 대중국 고율 관세를 부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 등이 그 근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실제 이뤄지면 미·중 관계는 격랑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중국도 이 정도로 미리 경고 메시지를 낸 상황에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에 미국도 맞대응할 경우 양측 모두 중요 정치 일정에 앞서 '미중 관계 관리'보다는 자국민들에게 '물러서지 않는다'는 선명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외교 정책의 톤을 설정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 경우 대만해협 긴장의 파고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예상이다. 양국 중대 정치 일정을 앞두고 미중 관계가 관리 모드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국 여론을 청중으로 삼은 '치킨게임' 형국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될 수 있다.
당장은 펠로시의 최종 결정이 주목된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바이든 대통령과의 조율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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