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영재에 기업·재단 전폭지원.. 다양한 무대로 '잠재력 극대화'

이정우 기자 2022. 7. 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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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오른쪽)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마린 옵솝의 지휘로 연주하고 있다. ⓒ Ralph Lauer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캠퍼스 전경.

■ Why - ‘K-클래식’ 콩쿠르 강세 비결

오디션 통해 원석찾는 한예종

철저한 실기위주 교육 시스템

임윤찬·박재홍 등 실력파 양성

영재콘서트 여는 금호문화재단

연주자에 古악기 등 무상지원

조성진·김선욱·손열음 등 키워

협소한 국내 클래식 음악시장

콩쿠르 우승해야 그나마 명맥

‘생존 위한 발판’ 매몰 우려도

한국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젊고 유망한 국내 연주자들이 국제적 권위의 콩쿠르 우승 트로피를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다. 한 국가에서 국제 콩쿠르 입상자가 이처럼 쏟아져나오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제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한 ‘K-클래식’ 신드롬의 비결은 뭘까.

◇엘리트 교육 시스템+무대 경험 多…성공 비결 집약체 임윤찬

올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은 압도적인 연주 실력으로 세계를 매료시켰다. 콩쿠르를 중계했던 진행자 버디 브레이는 ‘한국 현상’이란 표현을 썼고, 해설자 엘리자베스 로는 ‘일생일대의 명연’이라고 극찬했다. 임윤찬 외에도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첼리스트 최하영이 우승했고, 역시 세계적 권위인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양인모가 1위를 차지했다. 같은 동양권인 중국, 일본에 비해 클래식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한국 연주자들은 세계 무대를 휘젓고 있다.

한꺼번에 어린 국내 연주자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맹위를 떨치는 배경엔 한국 특유의 엘리트 교육 시스템과 어린 영재들이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업과 재단의 전폭적 지원이 빚어낸 합작품이란 시각이 많다. 임윤찬은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7살 때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시작한 임윤찬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참여해 합격했다. 이후 임윤찬은 13살인 201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 한예종 교수를 사사하며 재능에 꽃을 피웠다. 피아노에 발을 들인 계기는 우연적이었지만, 이후 수련 과정은 전형적인 영재 코스다.

수많은 실전 경험은 임윤찬이 콩쿠르 무대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했다. 임윤찬이 콩쿠르 준결선에서 연주해 세계를 놀라게 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지난해 국내 투어 리사이틀에서 선보였던 곡이다. 결선에서 연주해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이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역시 이미 지난해 국내에서 공연한 바 있다.

◇K-클래식 산실된 한예종·금호문화재단

임윤찬이 재학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살린 도제 시스템으로 세계적 음악가를 다수 키워내고 있다. 박사 학위가 없어도 실력만 있으면 교수로 채용하고, 철저히 실기 위주로 가르친다. 임윤찬 외에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박재홍도 오로지 한예종에서만 실력을 연마한 국내파다. 손민수 한예종 교수는 “음악의 열정으로 똘똘 뭉쳐서 만든 한예종이 꽃피우는 장면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밖에 예원학교나 서울예고 역시 재능있는 어린 연주자들을 한창 육성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예종에 위탁해 운영하는 영재교육원도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임윤찬·양인모·최하영·박재홍이 모두 이곳을 거쳤다. 중등교육과 별도로 주말을 이용해 재능 있는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지도하며, 오디션을 통해 원석을 발굴한다. 서울 외에 세종과 경남 통영에 있고, 내년엔 광주에 개원할 예정이다.

금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금호 콘서트’도 영재 발굴 측면에서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1998년부터 14세 이하의 음악 영재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금호영재 콘서트’, 15∼25세 음악가를 위한 ‘금호영아티스트 콘서트’ 등으로 실전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지난 10년간 콩쿠르 우승자 대부분이 금호영재 콘서트 출신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김선욱·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임지영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아울러 문화재에 준하는 수억 원의 명품 고악기를 어린 연주자들에게 무상 제공하거나 콩쿠르 출전 항공권을 지원한다.

◇생존 경쟁된 콩쿠르 경쟁 명암

한국 연주자들의 국제 콩쿠르 선전의 이면엔 협소한 국내 클래식 저변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 경쟁이 자리한다는 시각도 있다. 음반 산업이 저물면서 콩쿠르는 공연 기회를 얻을 사실상 유일무이한 발판으로 여겨진다. 콩쿠르에 우승해야 기회가 주어지고, 그마저도 새로운 콩쿠르 우승자가 등장하면 이전 우승자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진다. 국내 클래식 음악 시장이 협소한 탓에 특정 연주자에 대한 쏠림 현상은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어리고 유망한 연주자들은 보다 안정된 공연 기회를 얻기 위해 콩쿠르 도전을 통과의례로 여긴다. 여기에 국가주도형 엘리트 교육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음악가가 아닌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기술자를 만드는 데 매몰될 우려도 있다.

韓, 올 상반기 25개 대회서 37명 입상… ‘피아노’ 12명으로 가장 많아

20년간 ‘3대 대회’ 36명 입상

편향논란 러 제외땐 가장 많아

국내 클래식 연주자들이 국제 콩쿠르 무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음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에만 국제 음악 콩쿠르 25개 대회에서 총 37명의 한국인 연주자들이 입상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세계 3대 음악 콩쿠르’(쇼팽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최하영, 어빙 클라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김가은,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질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금호문화재단이 유네스코 산하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 정식으로 가입한 국제 콩쿠르를 대상으로 한국인 입상 내역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피아노는 임윤찬을 포함해 13개 콩쿠르에서 12명의 한국인 연주자가 입상했다. 바이올린은 양인모를 비롯해 9개 콩쿠르에서 7명이 수상했다. 첼로는 최하영·김가은 등 6명이 11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비올라는 6개 콩쿠르에서 윤소희(미국 워싱턴 콩쿠르 1위)와 박하양(일본 도쿄 콩쿠르 1위) 등 4명이 순위권에 올랐다. 관악 부문은 9개 콩쿠르에서 4명이 입상했고, 더블베이스·클래식기타·성악·실내악 부문에서도 총 4명이 입상했다.

아깝게 입상하지 못한 준결선·결선 진출자들까지 합치면 한국의 활약상은 더 두드러진다. 올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선 임윤찬 외에도 김홍기·박진형·신창용 등 모두 4명이 준결선 무대에 올랐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우승자 최하영 외에 문태국·윤설·정우찬 등 모두 4명이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동반 진출했다. 범위를 넓혀 2002년 이후 20년간 세계 3대 콩쿠르 입상자를 돌아봐도 한국 연주자들의 저력이 드러난다. 20년간 총 286명이 입상한 가운데, 한국은 36명으로 러시아(72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입상자를 배출했다. 이어 미국 23명, 프랑스 20명, 일본 16명, 중국 15명 순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경우, 자국에서 열리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성적이 유독 좋아 ‘러시아 편향’ 문제가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한국의 활약상은 더 눈에 띈다는 평가다. 최근 20년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만 144명의 러시아 출신 입상자가 나왔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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