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생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개량,고궁여행 역주행 인기

2022. 7. 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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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 대표
중국의 문화침략 원천봉쇄..온국민이 보유자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한복생활’이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20일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대표해 온 전통생활관습이자 전통지식인 ‘한복생활’에 이같은 문화재의 지위를 부여했다. 한복 등에 대한 중국의 문화침략을 원천봉쇄하는 조치이다.

최근 지구촌에서 하이퀄리티 패션으로 인식되면서 세계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한복
한복생활 전수교육

이미 지정된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등과 같이 관련 기능·예능을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어 특정 보유자와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종목으로 지정했다. 모든 국민이 한복에 관한한 인간문화재인 셈이다.

한복생활은 바지·저고리 또는 치마·저고리로 이루어진 2부식 구조와 옷고름을 갖추고 있는 한복(韓服)을 지어, 치마-저고리, 바지-저고리 착용 순서에 따라 입고, 예절·격식·형식이 필요한 의례·관습·놀이 등에 맞춰 향유하는 문화를 뜻한다.

‘한복생활’은 설·추석 명절뿐만 아니라 돌잔치·결혼식·상장례·제례 등 일생의례를 통해서도 여전히 행해져, 유지·전승되고 있다. 최근 내,외국인의 나들이 복장으로 인기를 끌고, 개량한복 착용이 늘면서 이용률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판화 속 한복 차림(1919년)(사진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미국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가 촬영한 사진 속 한복 차림(1911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근대적 산업사회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주부들이 손수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지어 입거나 수선하여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이면 새로이 원단을 장만하여 옷을 지어 입었는데, 이를 각각 ‘설빔’·‘추석빔’·‘단오빔’이라 하였고 이처럼 계절이 바뀌는 때의 명절에는 필요한 옷을 장만하여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였다.

이처럼 ‘한복생활’은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고, 예(禮)를 갖추는 중요한 매개체이기에 매우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다.

한복은 고구려 고분 벽화, 신라의 토우(土偶), 중국 측 사서(史書) 등 관련 유물과 기록을 통하여 고대에도 한민족과 우리 영토영역의 사람들이 착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 시대는 바지·저고리 또는 치마·저고리로 이루어진 우리 민족 복식의 기본 구조가 완성된 시기이며, 우리 고유의 복식 문화를 기반으로 변화·발전하면서 조선 시대에 이르러 우리 복식의 전형(典型)을 확립하였다.

김홍도 풍속도화첩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선시대 복식(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1900년 4월 문관(文官) 복장규칙이 반포되어 문관들이 예복(禮服)으로 양복(洋服)을 입게 되면서부터는 수천 년간 내려오던 한복문화가 한복·양복의 혼합문화로 전환되었다.

‘한복’이란 용어는 개항(1876) 이후 서양 문물로 들어온 양복과 우리 옷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 누가 언제 처음 사용했는지는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1881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기사에서 ‘조선의(朝鮮衣)’, 1894년 일본 신문 기사의 ‘한복(韓服)’을 통해 한복이 당대에도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사회구조·민족정신을 담고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

태어난 아이에게 입히는 첫 옷인 ‘배냇저고리’는 아이의 연약한 피부에 닿기 때문에 부드럽고 자극이 적어야 해서 가능한 한 솔기를 적게 하여 지었고, 오늘날 돌복으로 많이 입는 ‘까치두루마기’는 까치설날이라고도 불리는 섣달그믐에 아이들에게 입혔으며, 때로는 설빔으로 입히기도 하였다. 두루마기에 붙이는 색동소매는 벽사(辟邪)와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혼례식에서는 ‘녹의홍상(綠衣紅裳)’이라고 하여 신부는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족두리나 화관을 쓰고 겉옷으로 활옷이나 원삼을 착용하였다.

상장례에서 망자에게 입히는 수의는 살아생전 윤달에 미리 준비하면 장수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바느질 매듭을 짓지 않았다. 이는 망자나 자식들이 화통(化通)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복생활’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한반도 내에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 ▷고구려 고분 벽화, 신라의 토우(土偶), 중국 측 사서(史書) 등 관련 유물과 기록이 확인되는 점 ▷역사·미학·디자인·패션·기술·경영(마케팅)·산업·교육 등 전방위적으로 학술연구가 왕성하고 앞으로도 학술연구 자료로서의 가능성이 큰 점 ▷가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현재에도 의례별로(명절·일생의례) 예(禮)를 갖추는 차원에서 갖춰 입는 그 근간이 지속·유지되고 있는 점 ▷현재에도 생산 주체, 연구기관, 가족 공동체 등 다양한 전승 공동체를 통하여 한복을 착용하는 등 ‘한복생활’ 관련 전통지식이 전승·유지되고 있는 점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았다.

한편, ‘한복생활’처럼 모든 국민 재외동포의 공동체 종목으로는 아리랑, 제다, 씨름, 해녀, 김치 담그기, 제염, 온돌문화, 장 담그기, 전통어로방식–어살, 활쏘기, 인삼재배와 약용문화, 막걸리 빚기, 떡 만들기, 갯벌어로 등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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