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채용"·"정치 프레임"..논란 뜯어보니
윤석열 대통령과 사적 인연이 있는 사람을 대통령실에 채용했다는, 이른바 '사적 채용' 논란이 또 벌어졌습니다.
이번에는 과거 검찰 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장 후보의 아들 주 모 씨입니다. 주 씨는 현재 대통령실 부속실에서 6급 행정요원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 대통령의 외가 친척 최모 선임행정관, 윤 대통령의 지인 사업가 황 모 씨의 아들 황모 행정관, 역시 지인으로 알려진 사업가 우 모 씨의 아들 우모 행정요원에 이어 네 번째입니다.
대통령실의 해명은 이번에도 같습니다. 과거 선거 캠프에서부터 일했었고, 능력을 검증받아 공적인 절차에 따라 대통령실에 채용됐는데 '사적 채용'이라고 규정하는 건 '프레임'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실의 이 같은 해명, 또 '사적 채용'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나씩 따져봤습니다.
■ 선거 캠프 출신을 채용하는 게 문제?
과거 청와대를 포함해, 대통령실 직원은 채용 방식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이른바 '늘공'(늘 공무원)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입니다. '늘공'은 각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직업 공무원이고, '어공'은 대통령실에 채용돼 공무원이 된 별정직을 뜻합니다.
'어공'은 크게 보면 여당과 국회의원 보좌진 등 국회 출신, 그리고 국회를 거치지 않은 선거 캠프나 인수위 출신으로 다시 나눌 수 있습니다. 현재 '사적 채용'으로 논란이 되는 인물들은 모두 후자입니다.
그럼 선거 캠프 출신을 대통령실에 채용한 게 문제일까요?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을 대통령실·청와대에 채용하는 건, 대통령실 설명대로 과거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선거 때부터 노력했고 대통령과 참모들의 의중을 잘 아는, 그래서 이른바 '합'이 맞는 사람을 채용해 일하는 건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대통령실이 '사적 채용'에 대해 해명하면서 '선거 캠프에서부터 일해온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사적 인연만으로 채용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은 다 걷어버리고, '누구의 아들'로만 되어버리는 건 안타깝다"고 했고, 다른 관계자는 "선거 캠프에서 일하는 건 (당선이 불확실한데)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무급으로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합격이 이렇게 어려운데 '캠프에서 일했다고 공무원 시켜주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더구나 선거 캠프에 개인적 인연으로 합류했다면 '아빠 찬스', '지인 찬스' 아니냐는 것입니다.
'주모 씨가 캠프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 주기환 전 광주시장 후보가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냐'는 질문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사적 채용'을 비판하는 젊은이들과, '사적 채용'은 잘못된 프레임이라는 여권의 관점이 충돌하는 게 이 지점입니다.
■ "좁은 인력 풀이 문제였을 수도"
그럼 과거에도 있었던 이런 채용 방식이, 이제 문제가 되는 건 왜일까요? 대통령실 주장처럼 '프레임'을 이용한 공격일 뿐일까요?
이를 따져보려면 문재인 정부 등 과거 청와대와 비교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채용 배경을 정리한 자료는 과거 청와대는 물론 현재 대통령실도 없습니다.
다만, '사적 채용' 논란의 시작인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의 인적 구성이, 과거 다른 대통령의 대선 캠프와는 다소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은 모두 정치권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뒤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사적 인연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국회, 정당,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과거부터 정치 활동을 도왔던, 공적 관계로 인연을 쌓았거나 공공 영역에서 검증받은 인사들이 주로 캠프에 합류했습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정치에 뛰어든 뒤 국민의힘 입당 직전까지 10여 명으로 캠프를 운영했는데 주로 개인적 인연이 있던 사람이나, 이들로부터 소개나 추천받은 사람들로 전해졌습니다. 실무자조차, 정치권을 알거나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추천을 받았다는 게 당시 캠프 관계자의 말입니다.
"초반에는 조심 조심 골라서 사람을 받았다. 아무 사람이나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아는 사람 위주로 했다. 누구를 믿겠나? 특히 돈 관리나 수행 이런 건, 오랫동안 연을 맺은 보좌진이 있었으면 맡겼을 텐데…"
현재 '사적 채용' 논란이 불거진 대부분이, 이때 회계 관리와 운전, 일정 수행 등을 담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사적 채용' 논란의 원인이, 캠프 초반의 '좁은 인력 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슬림한 대통령실'도 영향"
'사적 채용' 논란에는 윤 대통령의 공약인 '슬림한 대통령실'이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비밀이지만, 현재 대통령실 직원 숫자는 과거 청와대의 절반 이하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림하지 않는', '슬림한' 대통령실을 만들겠다는 윤 대통령의 공약에 따른 것입니다.
각 부처와의 업무 협조를 위한 파견 공무원, '늘공' 숫자는 줄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어공' 숫자가 과거보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집니다. 캠프나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상당수가 대통령실에 채용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능력이나 캠프에서의 공로가 비슷하다면, '인연'이 채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누구하고 친하냐, 누구 사람이냐, 잘 모르는 사람이 보이면 뒤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기도 한다". 대통령실 한 직원의 말입니다.
'슬림한' 대통령실을 만들면서, 국회 보좌진이나 정당 등에 있었던 사람들이 원하는 직급을 받기 어려웠던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5급 행정관급 이상의 자리는 줄었고, 캠프 인사들 중에 기존 정치권 경력이 있던 사람들은 6~9급 '행정요원'으로 잘 안 오려 했지만, 누군가의 소개로 합류했던, 관련 경력이 없던 캠프 인사들은 임용에 적극 나섰다는 것입니다.
■ "문제는 내용보다 대응 방식"
대통령실 강인선 대변인은 19일 '사적 채용' 논란에 대해 "대선 기간 묵묵히 일을 한 실무자들에게 정당한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이라며 "대선 캠프에서 희생과 봉사하고, 일을 같이 했던 실무자들이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것을 '사적 채용'이라고 하는, 이전에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틀로 호도한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통화에서 "이런 채용은 과거에도 많았다. 왜 지금 이걸 '사적 채용'이라 문제 삼는지 잘 모르겠다"며 대통령실 해명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를 돌이켜봐야 한다. 과거 지인을 대통령 해외 일정에 데려가 '지인 찬스', '비선' 얘기가 나왔고, 그때 시작된 잘못이 여기까지 이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 대표도 문제 자체보다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지적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대통령실의 설명이 맞다. 지난 정부도 알고 보면 누구의 소개거나 아들이거나 그럴 것"이라면서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채용) 압력을 넣었다'고 표현했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뽑으라고 강권했다는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박 대표는 "정치에서는 이슈 자체보다도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중요한데, 그 점에서 위기 관리, 메시지 관리가 다 실패했다"면서 "비판이 오면 비판을 즉각 반박하려고 하는데, '충분히 그렇게 볼 측면이 있지만, 다만…'이라고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사적 채용'이 아니라고 대통령실이 강변하는 것보다도, 이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느냐라는 것을 돌아봐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조태흠 기자 (jotem@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