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큐브 위성’, 과학계 잇템으로 뜬다
구두 상자만 한 크기의 꼬마 위성인 큐브 위성이 우주과학 연구에서 대형 위성보다 가격 대비 논문 생산성이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우주에 작은 거인들이 뜨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대형 위성이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공백을 큐브 위성이 메울 수 있다고 기대한다.
미국 뉴햄프셔대의 할란 스펜스 교수 연구진은 지난 7일 코넬대의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무게 수kg의 큐브 위성이 수t급 대형 위성보다 달러당 논문 생산성이 4배나 높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과는 곧 국제 학술지 ‘우주기상 저널’에 실릴 예정이다.
◇달러당 논문 건수 4배 많아
큐브 위성은 기본 단위가 가로·세로·높이가 각 10㎝이다. 보통 정육면체인 기본 단위를 3~6개 연결해 발사한다. 원래 교육용으로 개발됐지만 전자공학이 발전한 덕분에 과거 상용 위성이 하던 임무까지 수행한다.
뉴햄프셔대가 2015년 발사한 우주 기상 관측용 큐브 위성인 파이어버드 2호가 대표적이다. 당초 수명을 3개월로 예상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우주에서 전자가 급증하는 지역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우주 기상 정보는 지상의 전력, 통신망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주에서 갑자기 고에너지 입자들이 쏟아지면 대규모 정전과 통신 두절 사태가 벌어진다.
스펜스 교수 연구진은 파이어버드2호를 비롯해 개발 비용이 120만~130만달러인 우주 기상 관측용 큐브 위성 5기를 프로젝트 비용이 7200만~15억달러인 미 항공우주국(NASA)의 대형 위성 5기와 비교했다. 대형 위성들은 발사 이후 논문을 매년 86편 생산했다. 큐브 위성은 연간 두 편에 그쳤다.
하지만 가격 대비 생산성은 달랐다. 발사 이후 100만달러 지출 대비 연간 논문 수는 큐브 위성이 1.6편으로 대형 위성의 0.4편을 압도했다. 예를 들어 파이어버드 2호는 연간 100만달러당 2.2편의 논문을 생산한 반면, 같은 임무를 하는 NASA의 6억달러짜리 반알렌탐사위성(VAP)은 0.1편을 생산하는 데 그쳤다.
◇우주과학의 민주화 이뤄
논문 공동 저자인 사우스웨스트 연구소의 아미르 카스피 박사는 사이언스에 “큐브 위성은 장난감이 아니다”라며 “큐브 위성은 엄밀한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진정한 과학 장비”라고 말했다. 큐브 위성의 관측 결과가 실린 학술지는 논문 인용 지수 등을 근거로 평가한 임팩트 팩터가 3.8로 대형 위성의 결과가 실린 학술지의 4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임팩트 팩터가 클수록 좋은 학술지로 평가된다.
큐브 위성의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부품 표준화로 제조 단가가 줄었기 때문이다. 무게도 적게 나가 대형 위성을 발사할 때 남는 공간에 합승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큐브 위성 덕분에 우주과학이 민주화됐다고 본다. 미국의 스타트업 플래닛 랩은 150여 대의 큐브 위성을 남북극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면 지구가 자전하면서 어느 곳이든 한 번은 위성 아래를 지나간다. 지구 전역을 위성 감시망에 두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큐브 위성을 통해 우주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방효충 KAIST 교수는 “큐브 위성은 개발에서 발사까지 비용은 대형 위성의 1000분의 1인 3억원에 불과하다”며 “후발 주자인 한국이 글로벌 우주 시장에 진출하는 데 큐브 위성이 저비용 지렛대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산 첫 우주로켓 누리호가 고도 700㎞ 궤도에 진입시킨 성능 검증 위성은 지난달 29일부터 이틀 간격으로 조선대와 KAIST, 서울대, 연세대의 큐브 위성을 스프링으로 밀어 우주에 진입시켰다. 그중 KAIST와 서울대 큐브 위성은 지상의 명령대로 작동하는 양방향 교신까지 성공했다.
KAIST는 국내 최초로 큐브 위성으로 지상 촬영과 전송을 시도할 예정이다. 서울대는 위성 위치 확인용으로 발사하는 전파가 대기에 굴절되는 현상을 이용해 큐브 위성으로 날씨와 지진해일을 예측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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