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식용유, 세계 최대 여객기 ‘A380’을 띄우다
지난 3월 25일 프랑스 툴루즈의 블라냐크 공항에서 세계 최대 여객기인 A380기가 이륙했다. 이 비행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A380으로는 처음으로 100% ‘지속가능한 항공유(SAF, Sustainable Aviation Fuel)’로 날았기 때문이다. A380 제조사인 에어버스는 3시간 비행에 쓴 SAF는 식용유와 폐지방 등으로 만든 바이오 제트유라고 밝혔다.
음식쓰레기가 여객기 연료로 변신하고 있다. 전 세계 10여 기업이 음식쓰레기나 농업폐기물, 임업폐기물로 바이오 제트유를 생산하고 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드마켓을 인용해 2030년까지 바이오 제트유 시장이 157억달러(약 20조68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효, 화학 총동원해 바이오 제트유 생산
바이오 제트유가 주목받는 것은 항공산업의 발등에 떨어진 불인 탄소 저감 압력 때문이다. 항공 여행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뉴욕과 런던을 왕복 비행하면 1인당 100kg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는 셈이다. 브룬디, 니카라과 등 47국에서 한 사람이 한 해 배출하는 양보다 많다. 항공기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3.5%를 차지한다.
과학자들은 제트유를 석유 대신 음식쓰레기나 농업, 임업 폐기물로 만들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기대한다. 원료가 이미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식물 성분이기 때문에 이를 태워도 기후에 대한 영향이 적다는 것이다.
바이오 제트유는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 알더 퓨얼스(Alder Fuels)는 음식쓰레기를 원료로 쓴다. 먼저 미생물 발효로 음식쓰레기에서 휘발성 지방산(VAF)을 만든다. 가축 분뇨에서 악취를 만드는 성분이다. 지방산은 산화지르코늄 촉매 입자를 거치면서 탄화수소 사슬이 더 긴 케톤이 된다. 향기도 달콤하게 바뀐 투명한 케톤은 백금-니켈 촉매를 거치면서 수소가 결합하고 산소가 떨어지면서 제트유인 케로신이 된다. 국산 로켓 누리호의 연료가 바로 케로신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농장은 15~25년마다 나무를 벌목하고 새로 심는다. 애메티스(Aemetis)사는 매년 200만톤씩 나오는 아몬드 나무 폐기물을 톤당 20달러에 사들여 고온 공정으로 수소를 추출한다. 식물성 기름과 동물성 지방에 이 수소를 반응시켜 제트유를 만든다. 란자제트(Lanzajet)는 임업폐기물과 공장 폐가스, 도시 쓰레기 등에서 에탄올을 합성한 다음 사슬 길이를 늘이고 수소를 붙여 케로신을 만든다.
◇유럽, 바이오 제트유 사용 의무화 추진
바이오 제트유는 아직 생산량이 미미하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세계 항공산업은 3600억 리터 이상의 항공유를 소비했다. 그해 바이오 제트유 생산량은 1억 리터에 그쳤다. 바이오 제트유는 가격도 석유로 만든 케로신보다 3배나 비싸다.
최근 항공사들이 탄소 배출 저감에 나서면서 시장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 항공사인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알더 퓨얼스와 바이오 제트유 57억 리터 구매 계약을 맺었다. 유나이티드는 지난해 12월 여객기로는 처음으로 시카고~워싱턴 노선 비행을 100% 바이오 제트유로 하는 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 항공사가 맺은 계약을 합치면 내년 바이오 제트유 구매량은 210억 리터에 이른다.
일부에서는 옥수수로 만든 바이오 에탄올이 자동차 휘발유를 대체하지 못하고 수소나 배터리에 밀린 전철을 바이오 제트유가 답습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바이오 제트유 업계는 자동차와 달리 항공기는 배터리로는 장거리 비행이 어렵다는 점에서 전망이 밝다고 반박한다. 원료와 공정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어 가격도 계속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도 바이오 제트유 보급을 장려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 바이든 행정부는 2050년까지 항공유를 모두 바이오 제트유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바이오 제트유 혼입 의무 비율을 2025년 2%에서 2050년 63%까지 높이는 법안을 상정했다. 올해 최종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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