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날리는 탄가루에 땀 범벅..숨은 턱턱 막히고
(태백=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석탄을 캐는 탄광은 오지에 있어 찾아갈 기회가 많지 않다. 그리고 폐광이 늘어나면서 가동 중인 국내 탄광은 4개에 불과하다. 탄광 막장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늘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속옷까지 갈아입고 막장으로
수십 년 기자 생활을 하며 여러 곳을 다녔지만, 탄광 막장은 처음 들어가 봤다.
현재 국내 영업 중인 탄광 4곳 중 하나인 태백 장성광업소. 취재 의뢰 끝에 어렵게 승낙을 받았다. 지난 6월 초에 막장으로 들어가는 광부들의 안전 교육 현장을 참관하고 갱구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하 작업장이라는 특수성과 사고 소식을 여러 번 들어온 터라 광부들의 표정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막장에 들어가기 전 방문객은 작업복과 혁대, 속옷, 양말, 장갑, 수건, 장화, 방진 마스크, 헬멧, 안전등을 지급받는다. 입고 온 옷은 모두 갈아입어야 한다. 속옷과 양말까지 빌려주는 게 신기했다.
탄광에는 특성상 다른 직업에는 없는 시설이 몇 가지 있다. 막장에 들어갔다 나올 때 탄가루가 묻은 장화를 씻는 곳, 몸을 씻는 대형 샤워장과 개인 수납장, 작업복을 세탁해주는 세탁실, 막장에서 빛을 제공하는 안전등 충전실 등을 갖췄다.
'안전 제일', '무재해 운동' 등 평소 무덤덤하게 지나쳤던 표어가 비장하게 느껴지는 갱구로 들어서 500m를 걸어갔다. 코부분에 철판이 든 안전 장화가 익숙하지 않게 느껴진다. 천정에는 촘촘한 철제빔 사이에 갱목이 빈틈없이 박혀있다. 막다른 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케이지(리프트)가 있다. 해발 600m에서 목적지인 -75m까지 내려가는 데 2분가량 걸린다. 케이지 탑승구 쪽은 비교적 넓은 공간이라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케이지를 나와 막장까지 한참을 걸어가다 탄차를 타기도 했다. 여기선 빛이라곤 이마의 안전등 불빛이 전부다. 바닥에는 탄차 궤도 위를 걷는 게 편하진 않다. 곳곳에 진창이 있고 장애물도 있고 가끔 탄차도 만나야 해서 정신을 놓아선 안 된다. 탄을 캐는 막장이 가까워지자 석탄 가루 때문에 방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바닥에는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가 돌아간다. 갱목을 설치하고 갱목 사이로 광부들이 탄을 캐고 있다. 천정의 갱목이 철제빔에 견고하게 고정돼 있지 않은 것도 있어 삐져나온 석탄 덩어리를 잘 막아줄지 불안감도 든다. 석탄을 캘 때 석탄 가루가 앞을 가릴 정도로 날린다. 쓰고 있는 방진 마스크가 잘 붙어 있는지 여러 번 매만지게 된다. 밖에서 공기를 들여보내 주는 에어 쿨러 덕분에 기온 25℃가 유지돼 그나마 숨을 쉴만하다. 그래도 심한 노동을 하는 광부들은 땀에 흠뻑 젖어 여분의 작업복으로 도중에 갈아입는다고 한다.
빛도 없는 좁은 막장에서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작업하는 광부들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막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휴게실이 있다. 여기에서 광부들은 도시락을 작업 전 절반을 먹고 작업을 마친 후 나머진 절반을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막장에 들어가면 작업을 마칠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동행한 안전관리관은 광부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안전 상태를 수시로 점검한다.
견학을 마치고 다시 케이지를 타고 해발 600m로 복귀해 걸어서 갱구를 향한다. 갱구를 향하는 광부들의 발걸음이 무척 빠르다. 빨리 햇빛을 보고 싶어 그렇다고 한다. 갱구의 환한 빛이 안도감을 들게 한다. 장화 세척장에서 탄가루를 한참 씻어 낸다. 안전등을 충전소에 반납하고 세면장에 와서 거울을 보니 탄가루가 얼굴과 작업복 안의 가슴까지 시커멓게 묻어 있다. 카메라와 가방도 온통 시커멓다. 세면장에서 목욕 타올로 여러 번 문질러야 탄가루가 지워진다. 샤워 시간이 한참 걸린다. 카메라 가방도 집에 와서 세탁해야 했다.
산을 이룬 경석장과 갱목의 산실 용재소
광업소를 나와 탄광에서 나온 돌을 모아두는 경석장으로 향했다. 도중에 갱목으로 사용할 나무를 재단하는 용재소에 들렀다. 통나무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10개월 사용분이라고 한다.
급경사 산길을 따라가니 동부 경석장이 나타난다. 탄광 채굴 초기부터 쌓아둔 경석이 산을 이루고 있다. 경석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는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 짙은 녹이 잔뜩 슬어 있다.
장성 탄광에서 채굴된 석탄은 지하 컨베이어를 타고 철암역두 저탄장으로 이동한다. 팔리지 않아 쌓아둔 석탄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철암역두 선탄 시설은 일제시대부터 사용된 것도 있어 2002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난생 처음 해 본 탄광 체험은 한 장의 연탄에 담긴 노력과 희생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많이 개선된 현재 작업환경도 열악한데 과거 탄광 노동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작업했을지 짐작조차 안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가발전에 기여한 '석탄산업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o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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