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은 '2022년 오일쇼크'를 막으려 한국에 왔다

서영민 2022. 7.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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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경제위기가 온다면 이탈리아가 시작이다?

이탈리아가 정권 교체의 위기를 겪고 있다. 먼 나라, 그리 중요한 나라 같지 않지만 아니다. 이 위기는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표면적으론 대연정으로 탄생한 정권에서 가장 큰 정파(오성운동)가 연정 파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나, 본질적으론 러시아발 에너지 대란의 후폭풍이다.

인플레 잡으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 각국의 국채 이자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탈리아는 국가채무가 GDP의 150%에 육박한다. 지금 금융시장에서는 신흥국들이 무너질 거란 전망에 아우성이지만, 이대로 인플레가 안 잡히고, 미국 금리가 3~4%까지 오르면 유럽에선 이탈리아가 가장 첫 번째가 될 거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이탈리아가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정권에 반대하며 연정에서 떨어져 나간 오성운동의 콘테 전 총리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 제재 말고 협상하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하지 말자'고 주장해왔지만 현 총리가 반대한다. (이탈리아는 2020년 기준 전체 에너지원의 43%를 가스에 의존하고, 그 가스 가운데 43%를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상징적인 건 혹시 물러나게 될지도 모르는 '유럽의 영웅' 마리오 드라기 현 총리의 앞날이다. 드라기는 유럽중앙은행 (ECB) 총재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죽어가던 유럽을 살린 영웅이다. 역사에 남을 발언 ,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What ever it takes) 유럽을 지키겠다"라는 말을 하며 붕괴 직전의 EU를 지켜냈다. 그리고 지난해 초 그 공으로 이탈리아 총리가 됐는데, 1년 반 만에 축출될 처지가 됐다.

‘에너지 위기’발 연정 붕괴 위기를 겪는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 기우가 아니다, 독일은 에너지 배급제 준비를 한다

러시아의 압박은 더 세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일주일 전, 독일로 향하는 최대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을 완전히 잠갔다. '캐나다가 수리한다며 가져간 터빈을 러시아 제재를 이유로 반환하지 않으니, 가스를 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독일은 터빈을 돌려달라고 캐나다에 사정했고, 캐나다는 결국 이를 돌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러시아는 자비로울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또다시 '불가항력' 때문에 계약물량을 보장 못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내일(21일)로 예정된 노르트스트림1 재가동이 가능할지가 현재 유럽의 최대 관심사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독일이 비상사태 대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근간은 '에너지 사용을 누가 얼마나 감축해야 할지'에 대한 우선순위 결정이다. 2,500여 대기업으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델링을 한다.

어떤 기업이 취약한가, 어떤 기업이 공급망에서 필수적인 회사인가에 따라 에너지 할당량을 정한다. 2차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유럽은 지금 기우제를 지내야 할 판이다. 일단 봄 날씨는 운이 좋았다. 봄 날씨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난방을 덜 했다. 그래서 유럽 각국 가스 저장고가 예상보다 많이 찼다. EU는 지금 수준이라면 주요국은 11월까지 '올 겨울을 나기에 충분한 가스'를 비축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올 겨울도 춥지 않기를 바란다.

이 더운 여름에 겨울 날씨가 따뜻하길 바랄 정도로 절박한 이유. 스스로 시행하기로 한 러시아 추가 제재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5월 발표한 6차 제재안을 보면 유럽은 '6개월 내 러시아 원유 수입을 중단'하고, 연말까지는 '석유 정제제품'도 반입도 중단한다. 러시아를 압박하는 제재라지만, 이대로 시행되면 유럽이 제 발등만 찍을 가능성이 더 크다.

英 이코노미스트지 [유럽이 올 겨울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에 대비하고 있다.] 7.14


국제유가가 2~300달러까지 급등할 거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고통은 취약한 국가들의 몫이 될 확률이 높다. 유럽은 '각자도생' 혹은 '근린 궁핍화의 길 beggar-thy-neighbour'로 들어설 수 있다.

이를테면 산유국인 영국이나 노르웨이가 자국 사정을 이유로 해외 공급 물량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영국은 그런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결과는 자명하다. 이탈리아 드라기 총리가 겨우 살려놓은 EU가 정치적으로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유럽이 산산이 쪼개질 수 있다'고 표현했다.

■ 美 재무장관 재닛 옐런은 이 위기를 막으려 한국에 왔다

'인플레를 잡아야 한다. 금리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각국의 이자 부담 상승을 최소화해야 한다. 안그러면 유럽이 심각한 상황에 노출되고, 최악의 경우 쪼개질 수 있다. 그리고 세계 경제는 70년대식 오일쇼크의 길로 갈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한 옐런 미 재무장관

미 재무장관 재닛 옐런은 지금 이 고민을 하고 있다. 러시아 석유 가격 상한제(Cap on Russian Oil Price)를 관철 시키면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G20 회담을 계기로 먼저 일본을 방문한 뒤 한국에 들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옐런 장관의 계획이 합리성이 있다고 본다. 석유 수출 신용장에 적힌 유가 정보를 확인해서, 일정 가격 이하일 때만 수출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한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 금융사가 담당하는 보험이 없으면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현되면 두 가지 이득이 있다. 우선 유럽이 스스로 부과한 제재에 따라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을 중단하지 않아도 된다. 국제 유가가 안정된다. (재무부 관리는 WSJ에 유럽이 진짜 금수조치를 취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면 러시아가 석유 수출로 얻게 될 이익의 상당 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 러시아 제재 목적도 어느 정도는 달성할 수 있게 된다. (WSJ 7/11 : Janet Yellen Begins Asia Trip to Win Support for Cap on Russian Oil Price)

우리도 더 싸게 살 수 있으면 나빠질 게 없다. 현재 우리나라가 들여오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은 5월 기준으로 배럴당 111달러인데, 60~70달러에 살 수 있다면 당연히 두 팔 들고 환영할 것이다.

석유공사의 페트로넷 기준으로 지난 2020년 이후 원유 도입량 가운데 러시아산은 모두 77만 배럴이다. 전체 도입량 1,541만 배럴의 5% 정도다. 많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양이다.

러시아 국적의 유조선 페가스, 2022년 4월 19일 그리스 에비아 섬


문제는 현실성이다. 최대한 많은 나라가 동참을 선언해야 효력이 있다. (러시아가 ‘서방이 정하는 가격에 팔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G7이 원론에선 동의했지만, 각론에선 셈법이 복잡하다. 중국과 인도는 난색을 보인다.

우리나라도 조심스럽다. 혹시 먼저 찬성했다가 러시아가 '안 판다'고 몽니를 부리면 나만 피해 보는 것 아닌가? 우리 기업이 혹시 피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 구체적인 규정이 어떻게 되고 효과와 후폭풍은 어떨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옐런은 그래서 한국에 왔다. 합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서다.

■ G20 합의는 실패... 러시아 참석 때부터 예정된 실패

일본은 적극적 참여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지난 인도네시아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는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합의(Communique) 없이 의장성명(Chair’s Summary)만 냈다.

사실 합의 도출 실패는 예정된 사안이었다. 제재 대상인 러시아가 참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봄부터 인도네시아에 '러시아를 초청하지 마라'고 압력을 넣었다. 인도네시아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때 이미 G20 합의는 물 건너갔다.

난항이 예상된다. 대놓고 찬성하기는 꺼려하는 이 합의에 '러시아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나라'를 참석시켜야 한다.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석유 가격 상한제’ 성과 없이 끝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


■ '물가를 잡고 러시아도 잡는다' : 옐런의 '미션 임파서블'은 가능할까

우선 기억하자. 지금 인플레는 공급발 인플레다. 러시아가 시작한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곡물 가격과 금속 가격도 올랐다. '공급발 인플레이션'이 그간 재정부양책을 쓴 각국의 경제 사정과 만나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장기화되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막을 방법은 딱 하나,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다. 미국 연준이 경기를 침체시켜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이유는 여기 있다.

또 기억하자. 유가가 좀 잠잠하고 뉴욕 증시가 올라 위기감이 덜해진 듯 하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다. 위기는 진행 중이다. 특히 올 겨울, 그것도 유럽이 문제다. 예상하는 위기가 온다면 세계 경제 위기가 될 것이고, 그 시작점은 이탈리아일 가능성이 크다.

옐런뿐 아니라 바이든도 움직인다. 인권 안 지키는 사우디를 향해 '왕따 Pariah' 만들겠다 공언했으나 지금은 순방 중에 찾아가 '증산'을 부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빈살만 왕세자의 '비웃음'을 산 굴욕적인 이번 방문이 증산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물론 증산이 되어도 근본 해법은 못 된다.

바이든의 사우디 순방 당시, ‘사우디는 아직도 왕따입니까?’라는 기자 질문에 바이든은 답을 않았고, 빈 살만 왕세자는 피식 웃었다.


현재 인플레와 글로벌 경제위기를 막으려면 두 방법이 있다. 러시아 제재를 포기하거나, 지금 옐런이 제안한 합의를 만들어 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플레는 못 잡고, 그에 따라 기준금리 대폭 인상도 피할 수 없다.

비관적인 듯 하지만, 사실 옐런은 비슷한 합의를 성사시킨 바 있다. '글로벌 법인세 : 디지털세'가 옐런 작품이다. 100개 이상의 나라가 동의하면서,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원천 차단하는 글로벌 세제 협력안의 틀이 만들어지고 있다.

과연 한국에 온 옐런이 '러시아 석유 상한제'를 성사시켜 '2022년의 오일쇼크'를 막을 수 있을까?

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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