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6년 장사에 처음"..高물가 덮친 아랫장
시장 찾은 손님도 "구매 후 영수증 보기 무서워" 깊은 한숨
폭염과 장마, 유가·원자재 등 외부 요인이 물가 상승 부추겨
가격 대비 푸짐한 양으로 인심 좋기로 소문난 전남 순천시 아랫장.
19일 오전 취재진이 찾은 아랫장 시장 식당가 골목에는 상인 주모(75)씨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 바빠야 할 시간인데도 주 씨는 "내 주머니 돈 나가는 장사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6년째 아랫장에서 국밥 장사를 해왔다는 주 씨는 이번 같은 물가 폭등은 처음이라고 한다.
돼지머리 하나에 13000원, 족발은 15000원. 도매상 과정에서 한번에 3000원씩 오른건 장사를 시작한 이래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3년 간 지속된 코로나도 겨우 버텼는데 치솟는 물가 앞에서는 이길 장사가 없었다.
주 씨는 "여름이라 국밥 먹으러 오는 손님도 줄고, 판매하던 파전은 계란과 밀가루 값 상승으로 올 여름은 장사를 접고 겨울부터 다시 시작할 계획"이라며 "두달이라도 가게를 접고 쉴까 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아랫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전집도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명태전을 만들기 위해 생선을 손질하고 있던 상인 조모(80)씨는 "15년을 장사했지만 이렇게 식재료 값이 폭등한 건 처음"이라며, 10년 만에 일부 메뉴만 가격을 올렸다고 했다.
육전과 명태살전 가격을 5000원에서 6000원으로 올리긴 했지만 고기와 야채 값 폭등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그나마도 손님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김치전 가격은 그대로 놔뒀다.
조 씨는 "예전 같으면 장날에 테이블이 부족했을텐데 지금은 겨우 한 두 테이블 찬다. 장 보는데도 돈이 많이 드니까 손님들이 거의 돈을 안 쓰고 먹고 싶은 전 한 개씩만 먹고 간다"면서 "힘만 들고 남는 건 없는 것 같다"고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4년째 장어집을 운영하는 상인 손모씨도 "시장은 싼맛에 오는데 시내권과 똑같은 가격이면 손님들이 시내에서 먹지, 누가 시장에 오겠냐"며 "있던 손님까지 줄까봐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더 적게 번다는 생각으로 장사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손님 한명 없는 가게 문 앞에서 장어 손질을 이어갔다.
물가 폭등에 장바구니를 들고 나선 시민들의 표정도 어둡긴 마찬가지였다.
여름이 제철인 꽈리고추를 고르고 있던 서모(49)씨는 "원래 100g에 350원 하던 꽈리고추가 1200원이라고 하더라"며 "야채값이 폭등해서 사기가 두렵다"며 놀란 마음을 전했다. 이어 "밥상은 차려야 하는데 구매 후 영수증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장을 보러온 박모(65)씨도 "말도 못하게 올랐다. 안 오른게 하나도 없다. 외식비도 올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지못해 장을 보러 나왔다"며 "서민들이 잘 살 수 있게 물가 안정책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호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전남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7.1%까지 가파르게 치솟았다. 외환위기였던 1998년 11월(8.2%) 이후 23년 7개월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돼지고기 17.4%, 수입쇠고기 25.2% 등 농축수산물이 전년 동월 대비 4% 상승했다. 공업제품도 경유가 51.3%, 휘발유가 31.6% 오르면서 같은 기간 11.2% 올랐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된 생활물자지수도 8.6% 뛰었다. 지역민들이 느끼는 물가 상승률은 더 높다는 의미다.
상승 요인으로는 폭염과 장마 등 날씨의 영향도 있지만 장기화되는 국제 유가·원자재 가격 등이 주로 손꼽힌다. 공급 측 요인이 급등하면서 물가 인상 효과가 파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서민 경제 안정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물가 변동을 일으키는 외부 요인이 많아 서민들의 고충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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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CBS 박사라 기자 sarai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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