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경제수장 "필요시 외화유동성 공급".. 한국, 러 원유 가격 상한제 동참한다 [한강로 경제브리핑]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넘으며 외환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한·미 경제수장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시 유동성 공급 등 다양한 협력방안에 나설 수 있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지난해 종료된 한·미 통화스와프의 재체결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취임 후 첫 한국 방문에 나선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19일 오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미 재무장관회의를 열고 한·미 간 전략적 경제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 재무장관이 우리나라를 찾은 것은 2016년 6월 이후 6년 만이다.
두 사람은 외환시장 협력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방안 등 양국이 직면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추 부총리는 회의에서 “현재 한국의 외화유동성은 안정적인 상황이지만, 글로벌 금융시장 유동성의 급변동 등에 유의하며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철저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유사시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면밀히 재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 부총리와 옐런 장관은 이같은 점을 고려해 외환시장에 관해 양국 간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고, 외환 이슈에 대해 선제적으로 적절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추 부총리는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국은 필요시 유동성 공급 장치 등 다양한 협력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당장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지는 않지만, 향후 필요시 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을 낳는 대목이다.
◆韓,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제 동참키로
옐런 장관은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옐런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잔혹하고 불법적인 전쟁에 대해 러시아가 책임지도록 하는 노력을 논의할 것”이라며 “여기에는 러시아가 원유로부터 얻는 수익을 빼앗고 소비자 원유 가격을 낮추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논의하는 것도 포함한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한국도 가격상한제 도입 취지에 공감하며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가격상한제가 국제 유가 및 소비자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두 장관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와 기후변화 대응, 글로벌 보건 등 양국 간 협력이 필요한 이슈들을 논의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미 재무장관회의에 앞서 이날 오후 1시30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옐런 장관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미 재무장관이 한은을 방문해 한은 총재와 면담을 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2016년 제이컵 루 재무장관이 이주열 당시 총재와 비공개 면담을 가진 바 있다.
옐런 장관은 회담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한·미 양국 간의 협력을 논의하고 증진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며 “양국은 다양한 가치를 공유하고 교집합이 많은 경제 관계를 맺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관계 증진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와 옐런 장관은 이후 면담 장소로 옮겨 최근 세계 경제 및 금융시장 상황, 글로벌 정책 공조 등에 대해 약 40분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최근 달러 강세 속 원·달러 환율이 1320원을 돌파하며 1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고, 외환보유액이 급감한 만큼 외환시장 안정화 관련 문제가 안건에 올랐을 것으로 관측된다.
◆환율은 이번 주 들어 진정국면…“옐런 장관 발언 기대 등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 대비 4원 내려간 1313.4원에 마감됐다.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0.6원 오른 1318원에 개장, 장 초반에는 강보합권에서 움직였지만 오후 들어서는 매도세가 들어서면서 하락세로 전환했다. 지난주 25.7원 급등하며 1325원도 뚫었던 원·달러 환율은 이번 주 들어서는 진정국면을 보이고 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통화에서 “옐런 장관의 통화 스와프 관련 발언 기대, 유로화 반등, 미국 금리 인상 속도 제한 예상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인덱스는 한때 108.6까지 상승했다가 이날엔 107.3으로 내려섰다.
◆금융위, ‘금산분리’ 등 금융규제 원칙 재검토
금융산업이 디지털화하고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Big Blur: 경계융화가 일어나는) 현상’이 급속히 진행 중인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의 비금융사 지분 소유를 15%로 막아놓은 ‘금산분리’ 등 전통적인 금융규제 원칙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은행이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인수하거나 가상자산 업무에 진출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는 이날 열린 제1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금융규제혁신 추진방향을 보고했다. 금융위는 앞서 금융권협회를 상대로 234개 건의사항을 접수한 뒤 이를 토대로 4대 분야, 9개 주요과제, 36개 세부과제를 추렸다.
금융위는 디지털화, 빅블러 현상에 대응한 금융산업의 디지털 전환 촉진 분야의 경우 금산분리 제도 개선, 비금융정보 활용 활성화 등을 통해 금융과 비금융 사이의 서비스·데이터 융합을 촉진하기로 했다. 업무위탁, 실명확인, 보험모집 규제 등 개선을 통해 외부자원 및 디지털 신기술 활용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선정됐다.
은행이 고객 정보를 계열사 간에 공유해 고객맞춤형으로 카드·보험·증권 상품 등을 추천하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 온라인 예금·보험 중개플랫폼 등 다양한 사업 모델이 가능한 유연한 규제체계 구축도 과제로 꼽혔다. 디지털 금융 혁신을 위한 신기술 활용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 마이데이터, 오픈뱅킹, 규제샌드박스 등 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활용 기반 혁신과 가상자산, 조각투자 등 디지털 신산업의 책임 있는 성장을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금융산업이 역동적인 경제의 한 축을 이루며 발전해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규제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금융 규제 혁신의 목표는 우리 금융산업에서도 BTS와 같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은 정부의 규제개혁 정책에 맞춰 불합리한 금융감독 관행에 대한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금감원은 이날 오전 이복현 금감원장 주재로 ‘금융관행혁신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불합리한 관행 혁신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TF를 통해 금융회사의 혁신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현실에 맞지 않거나 합리성이 없는 감독·검사·제재 관련 제도들의 필요성을 재검토해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사실상 구속력이 있는 ‘그림자 규제’(보이지 않는 규제)도 살펴본 뒤 필요한 규제는 규정화하고, 환경 변화로 실익이 없어진 경우 과감히 철폐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정부의 과감한 규제개혁에 발맞춰 금융회사의 혁신사업을 더디게 하거나 업무 수행 등에 불확실성 또는 불편을 초래하는 ‘모래주머니’ 같은 불합리한 관행들을 과감히 혁신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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