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 누명' 벗기까지 4년, 국가배상 받을 수 있을까?

최민영 2022. 7. 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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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휴대전화 빌려준 지인이 범행
검경, 신분증도 확인 않고 엉뚱한 기소
정식재판 청구해 "지인 범행" 주장했지만,
누명 벗기까지 오랜 시간 형사 재판 시달려
<한겨레> 사연 보도 사흘 만에 진범 검거
"저같은 사람 나오지 않도록 국가와 소송"
픽사베이

검찰과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신분 확인을 소홀히 해 절도 혐의를 받았다가 <한겨레> 보도로 누명을 벗은 40대 주부 ㄱ씨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형사비용 보상금 지급 대상을 과도하게 좁게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규정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에도 나설 예정이다.

2018년 5월 지인에게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빌려줬던 ㄱ씨는 지인이 저지른 절도 범죄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사 재판에 넘겨졌다. 절도 현행범으로 잡힌 ㄱ씨 지인이 ㄱ씨 신용카드를 통해 출금하고 ㄱ씨 주민등록번호 등을 외워서 답하자, 경찰은 신분증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ㄱ씨 이름으로 조서를 작성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도 이를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ㄱ씨를 재판에 넘겼다. ㄱ씨 이름으로 진행된 지인의 절도 사건은 벌금 50만원 약식명령이 확정됐다. 집으로 날아온 벌금 고지서를 보고서야, 이런 사실을 안 ㄱ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해 2019년 11월부터 직접 재판에 나섰다. 재판 과정에서 ㄱ씨가 절도범이 아니라는 취지의 대검찰청 지문·필적 감정 결과를 받고도, 검찰은 지난 1월 공소장에 이름이 적혔을 뿐인 ㄱ씨에게 벌금 50만원을 구형했다.

이 사건이 <한겨레>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지자, 검찰은 뒤늦게 진범 검거에 나섰다. 보도 사흘만에 진범이 붙잡혔고 이후 재판에서 검찰은 벌금형 구형 뒤집고 재판부에 공소기각 판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4월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채희인 판사가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면서 4년에 걸친 ‘누명 벗기’가 비로소 끝났다.

평범한 주부인 ㄱ씨는 당초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지만, 장기간 재판 과정을 겪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ㄱ씨는 19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잘못과 그에 대한 보상이 나왔던 흔적을 남겨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ㄱ씨 쪽은 1심 판결이 확정된 뒤 지난 5월 형사비용 보상청구서를 냈다. 2년 넘게 경기 남양주시 집에서 서울 서초동 법원으로 오가며 사용한 교통비와 일실이익 등 191만원이 청구액이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51부(재판장 고연금)에서 심리 중이다. 하지만 ㄱ씨가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상청구 근거인 형사소송법 제194조의2가 ‘무죄 판결이 확정된 피고인’으로 대상을 규정해, 검찰의 공소제기 자체가 무효화된 공소기각의 경우도 포함되는지가 불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ㄱ씨는 해당 조항의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신청했다. ㄱ씨를 대리하는 손영현 변호사는 “비용보상 청구와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이 모두 기각되면 헌법소원까지 다퉈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수사기관이 너무나 기초적인 신원확인조차 게을리 해 수년간 받았던 심적 고통을 배상하라는 취지다. 이 소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에서 도움을 주기로 했다.

국가의 책임을 인정받기까지 또 다시 몇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ㄱ씨는 최근 국가를 상대로 한 다툼에서 작은 승리를 거뒀다. 지난달 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ㄱ씨의 진정을 받아들여 일선 경찰에게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각 경찰서에 이 사건 사례를 전파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ㄱ씨는 “오랜 시간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인권위 권고로 그간의 고통을 조금은 위로받은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저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 인정받는데 걸린 4년. ㄱ씨는 “저는 이 문제가 간단한 줄 알았어요. 내가 훔친 게 아니고, 이를 증명하는 증거도 너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오래 재판이 이어지니까 ‘어쩌면 절도범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앞으로 진행할 민·형사 절차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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