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종종 자신을 고용주로 여긴다"

주하은 기자 2022. 7. 2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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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학생 세 명이 청소·경비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학생을 위해 일해야 할 노동자들이 본업을 망각한 채 피해를 줬다고 주장한다. 피해의 실체는 다소 불분명하다.
7월4일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김흥구

7월4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 빨간 조끼를 입은 청소·경비 노동자 100여 명이 모였다. 백양관 앞 도로 양쪽에 앉은 이들은 냄비를 두드리고 “진짜 사장 연세대가 책임지라”며 구호를 외쳤다. 집회를 마친 뒤에는 본관까지 행진하고 다시 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한 시간 동안 구호를 외치며 요구한 것은 세 가지였다. 현재 9390원인 시급을 440원(2022년 최저임금 인상분) 인상해줄 것, 퇴직자 3명만큼 인원을 충원해줄 것, 적절한 샤워실을 확보해줄 것이다. 이들은 이 사안을 올해 3월부터 학교에 요구해오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임금인상으로 인한 비용 지출이 과도하다며 노조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렇게 학생회관에서 백양관으로, 점심시간에서 오전 10시로 장소와 시간을 바꾸며 집회는 4개월째 이어졌다.

6월17일, 재학생 세 명이 청소·경비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이 아무개씨 등 3명은 노조의 쟁의행위로 한두 달간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총 638만원을 보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미 지난 5월9일 업무방해와 미신고 집회 주최로 노조를 경찰에 형사고소하기도 했다(업무방해의 경우 현재 고소를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사소송의 피고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 김현옥 분회장과 박승길 부분회장이다. 재학생들은 소장에서 “피고들은 학교를 위해 근무하기로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고, 학교를 위해 일하는 것은 학생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피고들은 자신들의 본업을 망각한 채 학교의 학생들에게 피해만 줬다”라고 주장했다.

이 아무개씨는 학교 커뮤니티인 ‘에브라타임’에 글을 올려 소송 배경을 다른 학생들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노조의 점심시간 쟁의행위를 녹화한 1분 길이의 영상을 올린 후 “여러분들 수업 장소 바로 앞에서 이런 수준의 소음을 발생시키는 게 합당한지 생각해보시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소리가 크진 않은 것 같다’고 반대 의견을 피력하자 ‘다른 영상도 많이 있다’며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이후 이 아무개씨는 ‘연세대 불법시위 대책위원회’라는 이름의 오픈 채팅방을 개설하고, 집회 소음에 대한 증언이나 증거를 제공해달라고 다른 학생들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한 ‘피해’의 실체는 다소 불분명하다. 〈시사IN〉이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노조가 집회를 연 시간에 대면 강의가 있었던 인물은 소송 원고 3명 중 이 아무개씨가 유일했다. 나머지 원고 두 사람은 각각 자습 과정에서 방해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한 명은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에서 비대면 수업을 듣거나 중앙도서관에서 법학적성시험(LEET) 공부를 할 때 심각하게 방해를 받았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올해 1학기 휴학생 신분이었다. 이 휴학생은 ‘수업을 방해받은 바’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집회 소음으로 인해 ‘학생회관에서 개인 공부가 어려웠다’며 손해배상을 신청했다. 이 휴학생은 자신의 손해배상액을 ‘2021년 2학기 등록금’을 기준으로 산정했는데, 지난해 등록금 353만7000원 중 피해가 발생한 32일에 해당하는 141만 4800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 청소·경비·주차 노동자의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흥구

2006년 한국외대에서도 벌어졌던 일

이 아무개씨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진행된 대면 수업에서 노조 집회 소음 때문에 교수의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아무개씨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지 여부는 미지수다. 법원은 쟁의행위에 대해 ‘헌법 제33조 제1항에 보장된 권리의 행사로서 사용자뿐 아니라 제3자도 그로 인한 손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생이 노조를 대상으로 제기한 ‘학습권 침해’ 관련 손해배상 청구가 기각된 판례도 있다. 2006년 당시 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외국어대학교지부(외대노조) 조합원들은 본관 출입문 부근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본관 건물 주변에서 꽹과리와 확성기 등을 이용해 농성을 했다. 이에 당시 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엄 아무개씨가 노조가 “과도한 소음을 발생시켜 학생들의 수업과 학습을 방해했다”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모두 엄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외대노조의 쟁의행위가 ‘제3자의 권리를 구체적·직접적으로 침해하거나 정당성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노조도 학생들의 불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간혹 찾아와 앰프 소리를 줄여달라는 학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노조는 앰프 소리를 줄이고, 앰프 방향을 중앙도서관 반대편으로 하는 등 소음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현옥 분회장은 집회 자체를 멈출 순 없다고 말한다. “솔직히 소송 들어온 게 신경 쓰이긴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학교는 우리 요구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

노조는 매년 동일한 요구사항을 주장함에도 학교에서 이를 들어주지 않아 교내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에도 노조는 2021년 최저임금 인상액인 130원만큼 시급을 인상해줄 것과 퇴직자 7명만큼 충원해줄 것을 요구했다.

박승길 부분회장은 “더 바라는 것도 없다. 최저임금 오른 만큼만 시급을 올려달라, 퇴직자 자리는 바로 채워달라. 매년 똑같은 요구를 한다. 어찌 보면 노조가 집회를 하고, 학생과 갈등이 생기도록 학교가 방치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학교는 등록금 동결과 코로나 유행에 따른 재정 악화로 이들의 시급을 올려줄 수 없다고 반박한다. 연세대 총무팀 관계자는 “연세대 내에 청소·경비 노동자가 400명이 넘는다. 440원씩 시급을 인상하면 최소 6억원 이상 비용이 더 들어간다. 지난해는 130원 수준이라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지만, 440원 인상은 무리다”라고 말했다. 학교는 노조에 200원대 시급 인상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

외대노조 파업 당시 손해배상 소송 피고이기도 했던 외대노조 고중식 지부장은 학생들에게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당부했다. “학교의 3주체는 교수, 학생, 교직원이다. 학생들이 종종 자신을 ‘고용주’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우리를 바라봐주면 좋겠다. 물론 노조가 쟁의행위를 하면 불편하겠지만, 갈등 이전에 ‘도대체 왜 그러는지’ 궁금해했으면 한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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