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8개월 전에 '각하'했던 '강제 북송' 판단 바뀐 배경은
기사내용 요약
내부규칙상 종결된 사건 또 접수하면 '각하'
'새로운 증거' 있다면 예외적으로 수사 가능
통일부 등 정부기관 입장 변화도 고려한 듯
[서울=뉴시스] 김진아 김재환 기자 = 검찰이 최근 '탈북어민 강제북송' 의혹으로 고발된 문재인정부 인사에 대한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불과 8개월 전 같은 취지의 고발건에 대해 검찰은 수사를 종결한 적이 있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찾았을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통일부가 북송 당시의 상황이 담긴 사진 등을 공개하고, 3년 전 정부의 조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입장을 발표하는 등 강제북송을 의심케 하는 정황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검찰은 새로운 증거들의 사실 여부를 먼저 따진 뒤, 문재인 정부 윗선의 혐의 입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검은 정의용·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등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고발된 사건의 항고장을 검토 중이다.
앞서 시민단체 '정의로운 통일을 생각하는 법률가 모임'과 옛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지난 2019년 11월과 12월 정 전 실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사건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2년여 동안 조사를 진행한 뒤 지난해 11월12일 각하 처분했다. 본격적으로 수사를 해 기소할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였다. 이에 시민단체가 검찰의 각하 처분에 불복해 항고장을 접수한 것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는 현재 각하된 건과 비슷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건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최근 정 전 실장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다. 일부 고발대상이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3년 전 고발건과 혐의와 피고발인이 대부분 비슷하다.
이처럼 검찰이 이미 종결된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 위해선 법적인 제약이 따른다. 검찰사건사무규칙 115조는 이미 불기소로 종결된 사건이 다시 접수되면 검찰이 각하 처분을 내리도록 규정한다. 다만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경우는 예외를 두고 있다.
즉 8개월 전 각하 판단을 내릴 당시에는 없었던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돼, 검찰이 법적인 제약을 해소하고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핵심적인 증거로는 정부기관 등의 입장 변화가 거론된다.
통일부는 지난 11일 정례브리핑에서 "탈북어민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고, 북한으로 넘겼을 경우에 받게 될 여러 피해를 생각한다면 북송은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단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뒤에는 탈북어민들의 북송 과정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사진에는 탈북어민들이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갈 당시 저항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또 통일부와 법무부는 최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북송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출입국관리법상 외국인 강제퇴거 조항을 준용했다는 문재인정부 입장에 배치되는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6일 정부 합동조사를 조기에 강제종료한 의혹으로 서훈 전 실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힘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강제북송 의혹에 관한 진상조사를 벌이면서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을 공개하는 중이다.
실제로 이번에 고발장을 접수한 NKDB 측은 8개월 전 각하된 사건과 비교해, 최근 발표된 통일부 등의 입장과 자료를 위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정리해 제출했다.
이 밖에 검찰은 고발대상이 3년 전보다 더 늘었다는 점에서 같은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수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에는 압수수색을 할 정도의 소명이 안 됐다고 봤을 수 있다"라며 "(최근) 통일부에서 제출된 자료 등을 보면 어느 정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북송에 문제가 있었다는 새로운 근거가 추가로 제출됐을 수 있다"면서 "통일부의 자료 제출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포괄적으로 증거가 확보되고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새로운 증거들에 대한 진위 확인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정 전 실장 등 문재인정부 윗선을 향해 수사를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은 최근 NKDB 측을 상대로 한 고발인 조사에서 제출한 증거를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에 근거해 제출한 증거인지, 어떤 혐의에 관한 것인지 등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탈북어민들이 밝힌 귀순의사의 진정성을 두고 논란이 있는 만큼, 검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다른 증거를 찾는 데 몰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증거의 신빙성 판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북송 과정에 관여한 실무진을 중심으로 조사가 시작돼 '윗선 규명'으로 수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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