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포기·외곽 이사·불법 알바..강달러에 美유학생 쇼크[고환율의 역습]①
귀국하려 해도 치솟은 항공료에 부담스러워
유학생들, 월세 보태려 불법 아르바이트까지
전문가 "국제정세 완화돼야 환율 안정화 가능"
[이데일리 김형환 전선형 기자] 서울에 살고 있는 박모(45)씨는 얼마 전 중학생 아들에게 미국 유학을 미루자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치솟는 환율과 미국 물가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이지만 아쉬움이 컸다. 박씨 역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유학을 준비하다가 치솟은 환율 탓에 유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강(强)달러’ 현상이 박씨 부자의 유학을 모두 막은 셈이다.
2019년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김지영(가명)씨는 환율이 너무 올라 걱정이다. 매년 자녀의 생활비로 연 2회 1000만원씩 보내고 있지만, 최근에는 환율이 올라 같은 금액을 보내도 자녀의 생활비는 줄고 있다. 자녀가 미국 유학을 간 2019년에만 해도 1000만원으로 8870달러를 환전해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환율이 치솟으면서 같은 1000만원을 보내도 환전 후 자녀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7540달러에 그친다. 3년 새 자녀의 생활비가 1330달러(15%)가 준 것이다.
연일 이어지는 고물가에 달러화 역시 강세를 보이면서 학부모와 유학생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5일 하루 만에 14원 오른 1326.1원에 마감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29일(1340.7원) 이후 13년3개월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뒤 1310원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1년 사이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영·미권으로 자녀를 유학보낸 학부모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경제적 부담에 자녀를 다시 한국으로 부르고 싶지만,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자녀를 생각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아들을 미국 시애틀로 유학 보낸 이모(51)씨는 “미국 대학 등록금만 5만 달러가 훌쩍 넘는 정도로 부담스러운데 환율까지 올라가니 등록금만 1년에 500만원 이상 더 부담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유학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강구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 자녀를 진학시킨 김모(52)씨는 “아이가 그나마 등록금이 싼 주립대에 들어가서 버티고 있는 셈”며 “고등학교부터 아내랑 같이 가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최근 생활비가 너무 많이 올라 아내에게 귀국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작 귀국을 생각 중인 유학생들도 항공료 인상이 걱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박모(27)씨는 “귀국을 하려 해도 항공료가 너무 비싸 고민”이라며 “언제 환율이 떨어질지도 몰라 가급적 빨리 학기를 마치고 귀국을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 항공료는 전년 동월 대비 21.4% 올랐다.
“불법 알바까지” 자구책 찾는 유학생들
높아진 환율이 부담스러운 부모만큼 유학생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유학생들은 임대료가 싼 도시 외곽으로 이사를 가는 등 자구책을 찾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지희(가명)씨는 최근 학교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김씨는 “최근 이사한 덕분에 월 200달러 정도를 줄일 수 있게 됐다”며 “환율이 상승하면서 학기 당 지출액이 1000만원을 넘을 것 같아서 나름 긴축재정에 돌입한 것”이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불법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유학생들도 있었다. 미국 뉴욕에서 학부 과정을 수료 중인 김민수(가명)씨는 최근 불법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생 비자로는 일을 할 수 없지만, 치솟은 환율에 부모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위험부담을 감수한 셈이다. 김씨는 “지인을 통해 한영 번역이나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현금으로 입금받는 돈은 월 800달러 정도”라며 “이 돈으로 월세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으로 비교적 학비가 비싼 미국 동부보단 서부지역에 관심을 갖는 유학준비생들도 늘었다. 서울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6개월 기준으로 약 800만원 정도가 미국 동부에 비해 서부가 싸다”며 “최근 환율이 높아지며 서부지역을 찾는 유학생들이 확실히 많아졌다”고 말했다. 미 동부지역 대표 유학지인 뉴욕 맨하튼의 경우 원·달러 환율 1200원대 기준으로 5500만원 정도가 한 학기 유학비용이었는데 최근 환율이 오르며 약 500만원의 추가 비용부담이 생겼다는 게 유학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올해 9월 출국이 예정된 박모(23)씨는 “코로나19로 미뤄왔던 유학이라 환율이 좀 떨어지면 가려고 했는데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다”며 “원래는 뉴욕으로 가려고 했지만 최근 고환율 탓에 상대적으로 유학비용이 저렴한 캘리포니아로 행선지를 바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제 정세의 불안이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휴전국면에 접어들어야 환율이 안정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국제정세가 안정화돼야 환율이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리나라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잘 극복하고 연착륙한 이유로 평가받는 이유가 300억달러 규모로 체결한 한미 통화스와프 덕분이란 게 김 교수의 평가다. 김 교수는 “한미 통화스와프는 당연히 해야 하고 성사될 가능성도 높다”며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으니 한미 통화스와프 등 그에 상응한 미국 측의 도움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환 (hwan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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