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여름감자 수확량 '반토막'..최악 흉년에 속타는 농심

김윤호 2022. 7. 20. 05: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봄가뭄·장마 이어 폭염 덮쳐
평년작 생산량 대비 40% ‘뚝’
재해보험 적용안돼 시름 깊어
썩은 감자 밭 곳곳에 나뒹굴어
값 좋아도 출하량 없어 ‘한숨’
무름병 등 추가 병해 확산 우려
 

강원 춘천시 서면 홍윤기씨 감자밭에서 수확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장마와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썩어버린 채 밭에 나뒹구는 감자들.(왼쪽 위 네모 안)


강원도 여름감자 주산지인 춘천·양구 지역 감자 재배농가들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이달 본격적인 감자 수확철을 맞았지만 수확량이 지난해에 비해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산지에선 유독 심했던 봄가뭄에 이어 지난달말 장마가 찾아왔고 뒤이어 갑작스런 폭염까지 기승을 부리자 이를 버티지 못하고 감자들이 썩어버린 것을 주원인으로 꼽는다. 농가들은 감자농사를 수십년간 지어왔지만 올해같은 상황은 처음이라며 너 나 할 것 없이 한숨짓고 있다.

◆반토막 난 수확량에 타들어가는 농심=최근 여름감자 대표 산지인 강원 춘천시 서면 일대를 찾았다. 이곳의 감자 재배면적은 약 165㏊(50만평)에 달한다. 매년 3월 파종을 시작, 5월말이면 흡사 푹신한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온 사방에 감자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3.63㏊(1만1000평) 규모로 감자를 재배하는 홍윤기씨(56·신매리)는 감자밭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고개를 떨궜다. 홍씨는 “감자농사 20년에 이 정도로 성한 감자를 찾기가 어려웠던 적은 처음”이라며 “보통 6.6∼9.9㎡(2∼3평)당 20㎏ 상품 한상자가 나와야 하는데 올해는 10평에 한상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수확량이 뚝 떨어졌다”며 허탈해했다.

땡볕을 무릅쓰고 수확작업에 나선 다른 농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트랙터를 따라 열심히 감자를 주워 담고 있지만 농가의 얼굴에선 ‘수확의 기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썩은 감자가 밭 곳곳에 나뒹굴며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그는 “3.3㏊(1만평)에 감자를 심어 100t가량 수확해야 하는데 고작 12t 건졌다는 농가도 있고, 작업비조차 안 나온다며 수확 자체를 포기한 농가도 허다하다”며 “감자를 수확하고 나면 보통 후작으로 배추를 심는데 배추 종자 살 돈도 없다”고 울먹였다.

김용종 서춘천농협 조합장은 “올해 관내 감자 생산량은 평년작인 5000t 대비 40%가량 줄어든 3000t에 불과하다”며 “그나마 수확해 저장고에 넣은 감자들도 일부 부패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우리지역 감자는 고랭지감자와 달리 농작물재해보험 적용이 안돼 최소한의 소득 보전도 어려운 탓에 낙담하는 농가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상기후 ‘삼중고’, 가격 좋아도 ‘한숨’=농가들은 올해 감자 수확량이 급감한 원인으로 이상기후를 꼽았다. 봄철 충분한 비가 오지 않다가 갑자기 장맛비가 집중적으로 내렸고 뒤이어 뙤약볕이 내리쬐니 잘 자라던 감자마저 고온다습해진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썩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김정운 서춘천농협 영농지도역은 “봄철 건조한 날씨가 지속돼 농가들이 스프링클러를 돌리고 물을 퍼다 나르며 겨우 가뭄을 이겼고 작황도 나름 괜찮았다”며 “그런데 지난달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면서 편평한 감자밭은 배수가 제대로 안된 데다 폭염까지 겹쳐 결국 감자들이 망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산지 작황이 악화하자 최근 감자 시세는 도매시장 기준 20㎏ 상품 한상자당 3만원선으로 평년보다 올랐다. 그러나 시장에 내놓을 물량 자체가 모자란다는 점이 농가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홍씨는 “지금 같은 시세라면 농사지을 맛이 나겠지만 작황이 너무 따라주지 않는다”며 “이상기후가 원인인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 몰라라’ 하지 말고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서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중간 유통업자와 밭떼기(포전)거래 계약을 체결하고 감자를 재배한 농가들의 시름은 더 깊다. 감자가 상품성을 잃은 탓에 잔금을 받기 어려워져서다. 김 조합장은 “3.3㎡(1평)당 7000원에 계약하고 계약금으로 20%, 잔금으로 80%를 약속한 경우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감자가 망가져 농가와 유통업자 모두 피해를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양구군 해안면에서도 농가 피해 속출=이상기후로 인한 감자 피해는 비단 춘천만의 일이 아니다. 양구군 해안면에서 감자농사를 짓는 이원민씨(75)는 “지난달말부터 이달초까지 300㎜에 달하는 폭우가 내린 뒤 30℃가 넘는 폭염이 더해지며 손쓸 겨를도 없이 감자가 썩어가고 있다”면서 “30년 가까이 감자를 재배했지만 이런 피해는 처음이라 수확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해안면 일대 감자 재배면적은 약 280㏊. 농가들은 평년엔 1평당 8∼9㎏의 감자를 수확했으나 올해는 수확량이 1평당 1㎏ 미만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더욱이 수확기까진 아직 열흘가량 남아 씨알이 더 굵어져야 하지만 무름병 등 추가적인 병해 확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최근 서흥원 양구군수를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피해 상황을 긴급 점검했다. 서 군수는 “썩어가는 감자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농민들의 호소를 들으니 가슴 아프다”며 “피해 지원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춘천·양구=김윤호 기자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