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산재 노동자의 고통 /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한겨레 2022. 7.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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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김용균들]살아남은 김용균들: 2022년 187명의 기록
④ 움직이지 않는 몸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청년 산업재해 문제를 다룬 <한겨레>의 ‘살아남은 김용균들’을 보며 무릎을 쳤다. 조금 더 일찍 살아남아 일터의 열악함과 부조리를 직접 말할 수 있는 산재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용균이와 같은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기사를 읽으면서 여러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미처 고민하지 못했던 또 다른 피해자의 이야기가 거기에 있었다.

살아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산재로 아들을 떠나보낸 부모로서의 아픔이 너무도 컸기에 살아남은 피해자의 고통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산재 탓에 상처 입은 몸과 마음으로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 기사를 보고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 삶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정말 미안했다. 아파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이렇게 문제를 드러내준 청년 산재 피해자들에게 감사한다.

산재 피해자의 좌절과 그 가족의 고통은 어떤 보상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턱없이 부족한 장해연금만으로 국가가 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산재는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피해자는 물론 가족 역시 일상이 산산이 깨어진다. 오랜 치료에 들어가는 돈과 정신적 트라우마는 심각한 우울증을 낳는다. 안전을 방치한 기업이 산재 피해자에게 지금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산재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빠르게 발전해 세계 10위권의 부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부의 혜택을 받는 10%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과로사하고 갑질에 희생당하며 쉬운 해고로 고통받는다. 기업인들은 하늘 아래 두려운 존재가 없어 보인다. 사회는 점점 더 약육강식이 되어가고 있지만 법은 좀처럼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기업은 산업재해에 신경을 쓰지 않아 왔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벌금만 내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을 가치 없는 소모품처럼 취급하고 이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도 영국처럼 ‘기업살인법’을 만들어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시민들이 모여 중대재해와 시민재해를 막기 위한 법을 만들자고 나섰다. 사람을 살리는 법이 필요하다고 목이 쉬어라 말했다. 그런 노력 끝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는 여론이 커졌다. 하지만 기업 등의 반대로 전체 산재 사고의 8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을 적용하는 것은 2년 유예(2024년 1월 시행)됐다. 부족한 법 때문에 용균이처럼 처참하고 억울한 죽음을 제대로 막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없이 가슴이 아팠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법마저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는 힘없는 약자라는 것이 서러웠다. 그래도 희망을 가졌다. 납작해진 법이나마 국회를 통과했기에 산재로 인한 죽음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는 바람을 품었다.

올해 1월 법이 시행되고 반년이 넘게 흘렀지만, 죽음의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6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완화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안을 내놓고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다시 기업이 수천, 수만의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게 하겠다는 말이냐고 되묻고 싶다. 사람의 목숨을 갈아 넣어 이룬 발전을, 시민의 생명을 내팽개치고 거둔 이윤을 도대체 어디에다 쓸 수 있단 말인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이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성립될 때만 처벌한다. 법 준수만 잘 하면 사업주건 경영책임자건 처벌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시행한 지 6개월밖에 안 되는 법의 취지마저 훼손하면서까지 개정하겠다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정부가 안전 예산을 아까워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기업인은 살인을 방조하더라도 감옥에 가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일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바꾸자고 나서기 전에 용균이의 비극을, 살아남은 용균이들의 고통을 한번이라도 떠올려주길 바란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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