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채무자는 분노, 은행은 혼란..정부 수습에도 '빚투 구제' 불씨 여전
"정부가 '빚 많을수록 탕감' 시그널 줘"
② 은행은 기준 세우느라 혼란
"누구에게 얼마나 상환 유예해야 하나"
캠코 "탕감 비율 정할 기준 마련해야"
"가상자산 투자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청년들에게 원금을 탕감한다는 내용도 없다."
"최일선과 대화가 부족했을 수 있다. 그러나 금융회사에 부실을 떠넘긴다는 말은 곤란하다. 당국이 기계적으로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업계가 차주에 따라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
18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내놓은 해명 중 일부다. 14일 '금융부문 민생안정 대책'을 발표한 후 ①"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양산한다", ②"은행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일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금융부문 민생안정 대책' 어떤 내용이 담겼나
이번 대책의 골자는 '상환 유예'에서 '상환 부담 경감'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우선 소상공인·자영업자 중 폐업·부도에 이르렀거나 상환이 어려운 경우 10월 출범 예정인 '새출발기금'이 빚을 떠안는다. 지원 규모는 30조 원. △상환기간 연장 △금리 인하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차주에겐 원금을 60~90% 탕감한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대상 자영업자 규모를 25만 명 안팎으로 추산했다. 재원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내년까지 3조6,000억 원을 출자해 마련한다.
또한 정부 정책에 따라 만기연장·상환유예를 받고 있는 48만 명(64조 원) 중 새출발기금에 편입되지 못한 경우 은행이 자율적으로 90~95% 유예하도록 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금융회사들이 대출취급의 당사자로서 1차적 책임을 지고 무분별한 회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90~95%'라는 유예 비율은 "소상공인 대출 중 통상 그 정도는 연장하고 있다는 수치에 기반했다"고 밝혔다.
신용평점이 하위 20%인 만 34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1년간 한시적으로 채무조정 특례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소득·재산 대비 채무 정도에 따라 이자는 30~50% 낮추고, 상환유예 기간 중 이자율은 3.25%로 고정한다는 내용이다.
논란 ①: '못 갚을수록 더 많이 탕감' 시그널
모럴 해저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성실한 채무자에게 이익(베네핏)을 줘야 한다'며 제도의 근본 방향성 자체를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정말 상환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조치로 과거에도 모럴 해저드 논란이 있었지만 지원해 왔다"는 김 위원장의 해명은 여전히 '못 갚을수록 더 많이 탕감받는다'라는 신호를 준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책 발표 이후 '버티면 언젠가 나라나 은행이 갚아주겠지'라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 소상공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자를 내지 말았어야 했나", "지금부터라도 연체를 하란 얘긴가", "지금 갚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다른 관계자도 "탕감해 주더라도 빚을 꾸준히 갚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원금을 최대 90%까지 경감해 준다는 부분은 상식을 과하게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청년 대책의 경우 김 위원장이 원금 탕감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이자 감면도 빚 탕감", "일도 안하고 대출 내서 주식·코인하는 사람은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라는 불편한 시선은 끊이지 않는다.
논란②: 은행들 "우리가 얼마나 감당해야 할지 가늠이 안 돼"
업계는 '업계가 판단할 몫'이라며 금융위가 남겨둔 부분(지원 대상 및 정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상자들이 △실제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갚을 의사는 있는지 현재로선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이번 대책에 '연체 중'인 대출뿐 아니라 '연체가능성이 높은' 대출도 조정 대상에 포함되면서, 그 가능성을 어떤 잣대로 판단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의 경우 2년 넘게 이자를 안 내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 이 가운데 은행이 얼마나 떠안아야 하는지 가늠이 안 된다"며 "부실 가능성이 크지 않은 차주까지 채무를 탕감해달라고 떼쓸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토로했다. 또 은행별로 기준이 명확지 않아 누구는 채무가 유예되고 누구는 유예되지 않을 경우 형평성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탕감 기준도 정해진 게 없다. 새출발기금 운용 주체인 캠코 관계자는 "은행으로부터 소상공인 채무를 매입하고 최대 90%까지 원금 감면해주는 것까지만 결정됐다"며 "탕감 기준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인하대생 사건' 피의자, 경찰이 신상공개 안 하는 이유는
- 태국 마약범 '먹잇감' 된 한국... 티백에 1만명분 밀수입
- "'우영우'는 미슐랭급 법정 드라마" … 에피소드 제공한 변호사
- "악역 하며 유명세"...박해미, 오디션 때 윤정희 때려야 했던 이유
- “여친 살해 뒤 배달 음식 먹고 영화 봐” 엽기 살인범에 중형
- 내가 버린 '참이슬' 소주병, '처음처럼'이 돼 다시 돌아올 수 있다
- "최면 실습한다고 모텔로" 두 얼굴의 프로파일러 성범죄 의혹 폭로
- 제주 해안서 숨진 돌고래 배 속에서 '2m 낚싯줄'
- '강제 북송' 영상까지 공개… 정쟁 한복판에 선 통일부
- 주저앉아 버텼지만 "야 놔봐" 끌고가… '강제 북송' 영상 공개